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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후배와 친구

by 하명환

다행히도 아버지는 금방 자리를 잡으셨다. 예전 직장 후배에게 새로 시작하는 공장의 공동대표 자리와 함께 기술자문직을 제안받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아버지가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 뒤로도 아버지에게서 자주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옛날이라면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혼자 사는 인생이 부쩍 외로워지신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준다며 전화를 받아보라고 하셨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의 취미인 낚시를 자주 같이 하다가 친해진 분인 듯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가 보고 싶지도 않은가 봐?"

"네?"


그렇게 대화를 하던 도중, 친구분이 갑자기 아들이니까 한 번쯤은 아버지 얼굴 보러 와야 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당시의 아버지가 계시던 곳은 고속버스로만 4시간 이상, 도착하고 다시 시내버스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다. 내가 일을 하고 있었다면 그런 먼 거리의 이동을 고민하지도 않았겠지만, 그 당시에 허리를 크게 다쳐 직장을 쉬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렇게 차가 막히는 주말을 피해, 평일에 아버지가 알려주신 곳에 방문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회사 옆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에서 나를 맞이해 주셨다.


"뭐예요. 이건?"

"아빠, 여기서 살아."


바람이 났던 그 여성분과의 문제로 집을 구하기 어려웠던 아버지는, 회사에서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래도 안에는 에어컨이나 TV,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제품까지 알차게 들어있어, 지내는 데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아이고 형님, 여긴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너무 구석진 곳에 있어. 응? 누구?”


내가 컨테이너 안을 살펴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웃으며 들어왔다. 키는 작지만 덩치가 좋고, 웃는 얼굴이 보기 좋은 남자였다.


“아들. 우리 장남.”

“아이고, 네가 형님이 만날 자랑하던 그 아들이구만?”


난 지금까지 살면서 아버지에게 칭찬 한 번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남들에게 내 자랑을 했다는 이야기를, 그것도 남의 입에서 들으니 왠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마침 기회가 돼서 한번 와봤어요. 거리가 멀어서 자주는 못 오겠네요”

“얼마나 걸리는데?”

“오늘 새벽에 출발했는데, 점심 지나서 도착했어요.”

“어휴, 고생했네. 그래도 아버진데 자주 와서 얼굴도 보고 그래야지.”


그 말에 아버지는 크게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래야죠.”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던 나는 애매한 미소와 함께 적당히 이야기를 넘겼다.


"그러면 밥 먹어야지? 내가 사줄게."


친구분은 모처럼 왔으니 자신이 밥을 사겠다며 아버지와 나를 데리고 시내로 나갔다. 하지만 시골이라 그런지, 식당이 그리 많지는 않았고,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근처에 있던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형님이 짜장면을 참 좋아하시거든."


그 외에는 치킨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 같은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자, 친구분이 어떻게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도 모르냐며 웃었다.


친구분에게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아버지와 외식은커녕 같이 식사를 한 기억도 가물가물한 내가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딱히 기억에 남을만한 내용은 없었다. 결국 내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은 고작 그 정도였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분은 사람이 좋아 보였기에 앞으로도 아버지를 잘 부탁드린다는 뻔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후 아버지의 회사로 돌아가, 이번에는 아버지의 후배라는 분을 만났다.


“과장님,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들 와서 잠깐 식사하고 왔어.”


후배분이 아버지를 부르는 직책에 잠시 당황했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이 회사를 자기 것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편이었고, 게다가 전에 공동대표 같은 소리도 했었기에 난 아무런 의심 없이 아버지가 당연히 사장이나 이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과장이라는 직책이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 아무래도 아버지의 허세가 또 도진 모양이야.’


아버지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은 채, 후배분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 이후, 후배분은 공장을 안내해 주셨다. 아버지와 후배분 이외에도 직원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여유로운 모습에 아버지도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안내를 받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5시가 되었고, 그러자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공장 입구에 모여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자주 먹었는지 다들 익숙한 손놀림이었고,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컨테이너 박스 안에 들어가 술을 가져왔다.


나는 여전히 술을 좋아하는 그 모습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는데, 내 한숨을 들은 후배분이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에 들어가서 보실래요? 저게 전부가 아니에요.”


그 말에 궁금증이 생긴 나는 후배분을 따라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까는 보지 못했던 구석진 곳에 무려 세 짝이나 쌓여있는 술을 발견했다.


"아버지, 이게 뭐예요? 무슨 장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 근처에 마트도 없어서 살 곳도 없어서 그냥 사다만 둔 거야. 자기 전에 한 잔씩 가볍게 먹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내 질문에 아버지는 찔리는 게 있는 건지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배분은 나에게 진실을 알려주셨다.


"아니에요. 자기 전에 기본 2병은 마시고, 기분 좋으면 3병도 마신다니까요?"


아무래도 저 놈의 술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와 나는 남이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드님이 좀 말려주시면 안 되겠어요?"

“어휴, 아버지가 제 말을 듣겠어요?”


그래도 말리는 사람이라도 있었을 때는 안 먹는 척이라도 했었는데, 이제 말리는 사람도 없다 보니 고삐가 풀려버린 망아지처럼 스스로 제어도 못할 상당량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알코올중독자처럼.

술을 물처럼.


원래부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알아서 잘 마시겠지.

좋아하는 거 하겠다는데 이제 와서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걸 말리겠어?


“아버지 좀 잘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책임을 아버지의 친구에게, 아버지의 후배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나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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