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된 건 사촌형의 결혼식이었다.
나는 그날, 아버지가 당연히 그 여성분이랑 같이 올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결혼식에 혼자서 오셨다. 그래서 좀 의아했지만, 어차피 불편한 사람이었기에 안부 따위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고, 아버지도 따로 언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결혼식이 끝나고, 먼저 집으로 돌아간다고 먼저 말을 꺼내셨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이런 행사를 놓칠 리 없는데? 어디 편찮으신가?'
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별말씀을 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아버지를 결혼식장 주차장까지 마중하고 자리에 돌아왔다. 그런데 식당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그 년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안 됐을 거 아냐?”
“오빠만 불쌍한 거지 뭐…”
“저 새끼가 뭐가 불쌍해?”
나는 그 이상함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주변을 살피고 있었는데, 친가 어른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작은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나는 관심이 없는 척, 그들에게 다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였고, 다행히 친가 어른들은 내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년이..."
"그 년 때문에..."
"그 년만 아니었어도..."
그 년.
여성을 아주 속되게 부르는 말.
내용은 전체적으로 어떤 여성을 욕하고 있었다.
바로 아버지와 바람났던 여성분을 말이다.
저번에 봤을 때는 그렇게 하하 호호하면서 잘 지내는 거 같았는데, 왜 오늘은 아버지와 바람났던 여성의 욕을 이렇게 신나게 하고 있었을까?
아버지가 대기업의 공장장으로 일하고 있을 당시, 술버릇은 지방에 가서도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돈이 더 들어오는 만큼 씀씀이도 더 커지셨는데, 공장장으로 일할 정도의 능력과, 과거의 성공을 노래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지금까지 상당한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는 착각하고 아버지에게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나타났던 것이다.
바로 그 아버지와 바람난 여성말이다.
성공했던 과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지금과 비교하며 자존감을 잃어가는 아버지 앞에 나타난 그 여성은 바닥을 기고 있던 아버지의 자존감을 채워주었고, 아버지도 오래간만에 자신을 인정해 주는 여성에게 만족감을 느꼈다.
아버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여성의 예상과는 다르게, 막상 만나보니 아버지는 생각만큼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의 남자였다. 그래도 능력만큼은 괜찮았던지라, 아버지에게 과거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그 여성의 투자로 시작한 사업은 나름 잘 되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만큼 큰돈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는지, 결국 아버지가 받을 유산까지 욕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었고, 친가는 꽤 넓은 논과 밭을 가지고 있는 대지주였기에 그 판단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 여성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은 큰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이미 상당량의 논을 팔아버린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여성은 아버지가 받을 유산을 노리고 가족행사까지 참여하며 친가 식구들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이 한 가지 더 놓친 사실은 아버지가 차남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미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큰아버지 앞으로 재산을 전부 돌려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꽤 넉넉한 평수의 논을 물려받은 큰아버지와 다르게 아버지는 유산으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억울했던 그 여성이 어떻게든 받아내려고 적극적으로 가족사이에 관여했지만, 아버지에게 돌아온 것은 이미 낡고 허름한 시골집과 100평 정도의 밭이 전부였다.
결국 원한 것을 얻지 못한 그 여성은, 투자했던 공장을 빠르게 처분하여 돈을 회수한 뒤,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것이었다.
결과만 본다면 아무것도 상속받지 못했을 아버지가 그나마 시골집과 밭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된 건 나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대가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직장을 잃었고, 그 얻은 것도 없는 지저분하기만 했던 유산 싸움 때문에 친가 가족들과도 사이가 멀어져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의 지금 상황은 무조건 아버지의 잘못이었다.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찾아간 아버지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였고, 좋게 보려고 해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엇나가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 건 결국 친척 어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과거의 자신들의 모습은 기억도 나지 않는 건지, 그저 다른 사람을 물어뜯으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내 눈에 썩 유쾌한 모습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