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모신 후, 다시 아버지의 회사로 내려와 짐을 정리했다.
사실 정리할 짐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후배와의 말싸움 끝에, 컨테이너 박스를 통째로 받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옮기는 비용을 우리 쪽에서 부담해야 했지만, 아버지는 어째서인지 컨테이너 박스를 시골로 가져가겠다는 고집을 절대 꺽지 않으셨고, 대신 아버지의 포터를 회사에 두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처리를 해야 하는 것은 결국 나였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앞으로 하시는 일 잘 되길 바랄게요.”
“저만 고생했나요. 아버지 때문에 서로 고생했죠.”
아버지나 친구분의 말대로면 이 사람은 아버지를 이용하고 버리려고 한 나쁜 사람이었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피해를 봤다는 느낌은 없었기에,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중, 후배분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을지는 모르겠는데, 뭐… 사실 예상은 가긴 하거든요. 그러니까 억울해서라도 아드님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갑작스럽게 분위기를 바꾸는 후배분에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 사람, 그러니까 아버지 친구라고 오는 그 사람 있잖아요? 너무 믿지 마세요."
"믿지 말라고 건..."
"오히려 조심하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제가 아버지한테 이것저것 챙겨주는 이유는 별 거 없어요. 아버지한테 도움을 진짜 많이 받았거든요.
나는 후배분이 하는 말을 가만히 경청했다.
"아버지가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것만 빼면 꽤 성실하시고, 책임감도 강하신 분이세요. 실제로 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직원이 부족해서 마감기간 맞춘다고 며칠을 밤새며 일하시고 그러셨는데... 그때 아버지가 덕분에 문제없이 일을 해결했으니까 지금의 이 회사가 있는 거거든요.”
아버지는 가정에는 소홀했지만, 일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근데 그 친구라는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고나서부터 아버지가 좀 이상해졌거든요. 이건 저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 주변에 있는 공장 사람들이 모두 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술을 좋아한다지만 일하는 중에 술을 마신다거나, 일을 내팽개치고 놀러 나가는 분이 아니셨는데... 그날도 그러다가 결국 저렇게 돼버렸으니까...”
후배는 그렇게 아버지의 친구분에 대한 불만을 길게 이야기했고, 내용은 저번에 친구분에게 전화로 들었던 내용과 비슷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가 아버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사실을 말하고 있겠지만, 지금의 내가 알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사람 싫어하는 것도 맞고, 그래서 뒷담 하는 것도 맞는데, 그래도 신경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 사람도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급하게 모시고 나가는 지금 상황에서 후배분의 말을 좋게 들을 수는 없었기에, 대충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뒤,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 아버지의 거주문제를 해결한 뒤, 한 달에 1번, 못해도 2달에 한 번씩 아버지를 찾아뵙고 잘 살고 계시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방문할 때마다 아버지는 건강해 보이셨고, 회사에서 지낼 때보다 더 밝아진 것 같아 더 이상 큰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자고 가냐?"
"아뇨, 저 내일 일이 있어서 바로 올라가 봐야 해요."
"바쁘면 다른 날에 오던가 하지..."
아버지는 찾아갈 때마다 나에게 자고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자고 가지는 않았다. 아버지였지만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반복되는 익숙함에 또다시 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소홀해지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는 이상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마당에 닭장이 생긴 날부터였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염소를 키우면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셨었다. 그게 어릴 적부터 자신이 꿈꾸던 삶이었다고 하시던 분이었는데, 갑자기 닭을 키우겠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닭장은 완성이 되어 있었고, 닭장 안에는 닭(?)처럼 생긴 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뭔데요?”
“금계랑 은계야.”
“염소는요? 염소 키운다면서요?”
하지만 내 말을 일부러 피한 건지 아니면 듣지 못한 건지 아버지는 자신이 키우게 된 금계와 은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키우기는 쉬운데, 관상용으로 키우는 사람들도 많아서 돈이 엄청 된다고 하더라고.”
“누가 그렇데요?”
“아는 사람이 은계 농장을 하는데, 장사가 잘 된데. 그래서 닭장이랑 금계, 은계까지 해서 싸게 받아왔어.”
“...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요?”
“은계는 털이 이쁘게만 자라면 몇십만 원이나 하고 그래.”
일부러다.
일부러 내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금액을 말하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가진 돈의 5분의 1이 넘는 금액이 저 닭장과 금인지 은인지도 모르는 닭을 분양받는 데에만 사용된 것이었다.
“아니, 이런 걸 할 거면 저한테 말이라도 해주던가,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는 물어봤어요? 그 친구한테나 한 번 물어보지 그랬어요. 그러고 보니 그 친구분은 찾아온 적은 있어요? 연락은 하고?”
“몰라. 여기 온 뒤로는 따로 연락하거나 그런 적은 없어.”
아버지는 이곳으로 주소지를 옮긴 이후부터 친구분과의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진 만큼 쉽게 찾아오기는 힘들어졌을 테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순간, 아버지의 후배 분이 했던 충고가 갑작스럽게 떠올렸지만, 지금 상황과 상관이 없었기에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