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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방에는 필요 없는 물건이 한가득이었다

by 하명환

집 마당에 닭장이 생긴 이후로 아버지의 방 안에는 이상한 물건들이 늘기 시작했다.


장롱 틈새에 설치되어 있던 작은 텔레비전은 장롱 입구를 가리면서 설치된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바뀌어 있었고, 방 안에 설치된 마사지기는 가뜩이나 좁았던 방안을 더욱 좁게 만들었으며, 옛날 집이라 낮은 천장에 억지로 집어넣은 에어컨은 문을 반정도 가리고 있었다.


분명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도움이 되는 물건들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시골 집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출처도 알 수 없는 물건들이었기에 나에게는 그저 이상한 물건일 뿐이었다.


한 번은 너무 답답해서 아버지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도 있었다.


"이것들 다 어디서 난 거예요?"

“이거? 다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거야. 내가 내는 돈은 얼마 안 해.”

“어디인지는 몰라도 돈을 내긴 했다는 거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두리뭉실하게 대답할 뿐, 정확하게 어디서 구매한 물건인지는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도 물건들은 점점 늘어났다.


혼자 밥도 못해먹는 사람이 저 대용량 전기밥솥은 왜 구해왔는지 모르겠고, 좁아서 의미도 없어 보이는 로봇청소기는 돌아가는 것조차 본 적이 없었다.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쓸만한 물건들, 편하게 해 줄 물건들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물건이 많아질수록 좁은 집은 더욱 어수선해져만 갔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런 방에 불편함과 위화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아쉽게도 아버지는 평생을 공장에서 살던 사람이었다. 공장에서 더러운 바닥에 박스만 깔아도 충분히 잠에 들었던 사람이었고, 집안 청소 따위는 한 적 없는 사람이었기에 지금 집안이 얼마나 지저분한 건지 감도 안 오는 눈치였다.


결국 그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은 내 차지였다. 처음에는 간단한 청소만 하는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버지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사는 집을 청소해 주러 방문하는 서비스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제 와서 아버지와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집안 청소라도 열심히 하고 같이 밥 한 끼 먹으면 아버지에게 소홀하지 않은 아들이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시골집에서 환갑을 맞이했다.


딱히 무언가를 해드리진 않았다. 요즘 시대가 굳이 환갑을 축하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나도 이미 이혼한 아버지를 그렇게까지 챙겨드려야 하는 건지 잘 몰랐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한 달 월급정도되는 돈을 드리며 축하한다 말씀드렸고, 돈을 받은 아버지는 늙은이 취급한다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렇게 싫어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뒤로 아버지에게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사실 아버지는 이미 당뇨로 심하게 고생중이셨는데, 당뇨로 인해 한쪽 눈은 실명이 왔고, 이빨을 지탱하는 뼈도 녹아내려 틀니를 사용하고 계셨다. 거기에 더해 뇌경색으로 언제든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약을 받아와 먹고 계셨다.


아니, 먹고 있는 줄 알았다.


먹지 말라는 술, 담배, 기름진 것을 멀리하라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그저 자유로운 시골생활을 즐기던 아버지의 몸은 당연하게도 심각하게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상함을 깨달은 건, 방문한 순간 맡게 된 썩은 내 때문이었다. 마당에 키우던 닭들은 밥을 먹지 못해서 전부 죽어서 썩어 있었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마당에선 시멘트를 뚫고 풀이 발목까지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런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아버지는 조용히 이불속에 누워 간신히 숨만 붙어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는 손에 닿는 위치에 있던 술과, 내가 사놓은 간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며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고, 당연히 화장실도 갈 수 없던 탓에, 방 안에서도 마당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심한 악취가 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아버지의 치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후배가 말하지 않았던가, 바지에 실례를 하는 일이 늘었다고.


그것이야말로 치매가 오고 있다는 가장 큰 전조증상이었지만, 그저 내 편함을 위해 눈을 돌렸던 것뿐이었다. 아직 젊은 내가 치매가 온 아버지를 챙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저 피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었고, 그렇게 눈을 돌렸던 현실은 이미 코 앞에 도착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현재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해결할 방법을 떠올릴 정도로 경험이 많지도 않았다.


결국 지금까지 연락하지 않았던, 일부러 피하고 있었던 친가의 친척 어른들에게 아버지의 상황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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