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것을 잊고, 정확히는 잊은 척을 하며 나만의 생활을 이어갔다.
우선, 허리 부상으로 원래 하던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었기에 새로운 일을 찾아 적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치나 낭비를 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적어진 월급과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도 대출 없이 전세를 구할 수 있었고, 추가로 고장 없이 잘 굴러가는 경차도 중고로 구매했다.
그렇게 새로운 생활을 만족스럽게 이어가던 중, 다시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회사 후배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 지금 병원에 있어요."
최근, 아버지가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가로수를 들이받는 일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별 문제없다며 병원을 거부하다가 3일 뒤에 눈깔을 뒤집으며 기절하시고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연락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큰 문제가 없지만 한 번쯤 와주면 좋겠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하지만 회사 업무 때문에 바로 시간을 낼 수는 없었고, 1주일 뒤에야 연차를 내고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전화로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병원에 계시지 않았고, 전에 보았던 회사 옆 컨테이너 박스에서 아버지가 쉬고 계신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렇지도 않은데 괜히 일만 크게 벌려서 말이야! 바쁘다면서 너는 또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지금 상태를 물으니 오히려 화를 내는 아버지는 그 뒤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다. 내가 보기에도 평소처럼 술이라도 한 잔 하신 건지, 스스로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말씀대로 겉으로는 큰 문제는 없어 보였기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다음날 회사 출근을 위해 저녁만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 뒤에 아버지의 후배에게도 인사를 하러 갔는데, 그는 굉장히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요즘 많이 안 좋은 거 알아요?”
후배 분은 아버지가 최근, 술을 매일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알코올중독이 심각해진 상태이며, 그게 회사 업무까지 지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일도 내팽개치고 친구와 놀러 나가기 일쑤고, 사고가 난 그날도 일을 내팽개치고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난 사고였으며, 심지어 사고가 난 그날도 음주운전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음주운전을 했을 수도 있다는 말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비틀거리는 아버지가 자동차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방금 아버지와 이야기할 때 취한 것처럼 느껴졌던 나는 급하게 달려가 아버지의 자동차 키를 뺐었다.
“뭐 하는 거야?!”
“아버지 취했잖아요. 운전하면 안 돼요.”
“안 취했어! 안 취했다니까? 술도 안 마셨는데 무슨 소리야.”
아버지는 끝까지 자신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며 부정했지만, 말투나 행동은 누가 봐도 술 취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미 익숙하다는 듯이 아버지를 컨테이너박스에 돌려보내는 후배 분의 모습을 보자, 아버지의 사고가 음주운전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하루이틀 만에 나온 것이 아닌,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된 경험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 퇴원한 것도 아니에요, 병원에서 쫓겨난 거예요”
아버지를 보내고 돌아온 후배 분은 지금까지 있던 일을 이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술을 못 마시게 되자, 행동은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간호사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팔에 꽂혀있는 링거 바늘을 뽑는 일까지 발생했고, 그 외에도 병원 내에서 할 수 있는 진상 짓은 전부 하다가 결국 조기퇴원이라는 명목으로 쫓겨난 게, 지금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지 않는 이유였다.
“아버지가 저희 회사에 해준 게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계속해서 챙겨드리는 건 저도 많이 힘들어요. 직원들한테도 불만이 많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고요. 앞으로 1년 정도면 기술도 어느 정도 다 전수될 것 같으니까 그때가 되면 오셔서 아버지 좀 모셔갈 수 있을까요? 퇴직금은 넉넉하게 챙겨드릴 거예요”
후배 분은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은퇴를 언급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이제 필요가 없어진 아버지를 데려가라는 소리처럼 들려, 허리 부상으로 하던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된 나를 보는 것 같아 조금 불편했지만, 그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1년 정도면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었고, 모셔가는 거야 하루 정도 연차를 사용하면 되니,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왜 아버지의 은퇴를 나에게 이야기하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이후에 아버지와 후배 분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집에 가려고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번에는 아버지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후배새끼가 완전 개새끼인 거 알아? 아버지를 그렇게 이용해서, 단물만 쏙 뽑아먹고 너희 아버지 버리려고 그러는 거라니까?”
친구분은 아버지가 불쌍한 사람이라며, 아버지가 회사 일을 대충 하게 된 건 후배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본인 일도 아니면서 뭐가 그렇게 억울했는지 거의 30분 동안 후배 분의 욕을 한 뒤에야 만족하며 전화를 끊었고, 그 말은 듣고 있던 나도 ‘후배가 나쁜 놈이었네’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부분은 생각보다 심하게 썩어있었고, 계속해서 곪아가고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 1달 뒤, 아버지의 후배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또다시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가능하면 빨리 모셔갔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때는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그거 알고 있어요? 아버지 똥오줌을 못 가려요. 치매증상이라고요.”
아직 아버지는 60도 되지 않은 나이였는데도 후배 분은 아버지가 치매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부터 그런 낌새가 있긴 했지만, 사고 직후부터 더욱 그런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변화를 눈치챈 후배는 아버지를 빠르게 내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부분을 직접적으로 말하면 내가 어떤 반응을 할지 몰라, 최대한 숨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증상은 빠르게 나빠지기 시작했고, 감당하기 어려워진 회사는 나에게 사실대로 말하며 아버지를 빨리 데려가라고 말한 것이다.
“저 새끼가 내가 다 챙겨줬더니 사람을 병신 취급이나 하고 말이야.”
“진짜 바지에 똥 싸고 그러시는 거예요?”
“한 번도 안 그랬다니까? 다 저 새끼가 거짓말하는 거야!”
아버지는 대화 내내 화를 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바지에 실수하는 것을 내가 직접 본 적도 없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아버지의 말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책임지기 싫어서,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1주일 간격으로 아버지를 빨리 데려가라는 후배의 독촉 전화가 이어졌고, 어쩔 수 없이 1주일에 1번씩은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던 나는 결국 지쳐버려 사전에 약속한 1년 치의 월급까지 받는 것을 대가로 후배 분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회사에 계신 아버지를 모시고 나오기로 결정했지만, 나는 아직 아버지를 책임지고 싶지 않았기에, 아버지에게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지 물어보며 최종결정을 떠넘겼다.
“아버지, 어떻게 하고 싶어요?”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다고 해도, 나는 이혼한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기에 아버지를 집으로 모실 수는 없었다.
“아빠는 예전부터 60살에 은퇴해서, 할머니 집에 살면서 밭에서 염소나 키우며 살고 싶었다.”
“그래요. 여기서 계속 구박받으면서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 같네요.”
하지만 다행히도 아버지는 유산으로 받은 집으로 들어가 생활한다고 말했고, 그렇게 아버지는 왕복 10시간이나 걸리던 곳에서 왕복 6시간밖에 안 걸리는 시골집에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