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의 첫 여행기
나는 물방울이다.
생명체들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인간들은 나를 '물', '비', '강', 그리고 '바다'라 부르며
나를 다른 물질들과 구별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단순한 이름 이상의 존재다.
나의 집은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대양이다.
나는 수많은 물방울 형제들과 함께 어울려 바다를 이루고, 유유히 흐른다.
나는 바람을 타고 파도를 일으키며 자유를 만끽하고,
거센 파도가 되어 바위에 부딪혀 물보라로 흩어진다.
부서질 때마다 나는 더욱 생명력 넘치게 다시 태어난다.
오랫동안 여행을 떠났던 형제들이 바다로 돌아와,
험난하고 신기했던 여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전히 대양 속에 머물고 있는 물방울들은
곧 떠나게 될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며 설레어한다.
나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해진다.
"과연 어떤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빛이 바다 위를 감싼다.
반짝이는 빛알갱이들은 물속으로 스며들며,
우리를 새로운 여정으로 초대한다.
한 빛알갱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따뜻한 손길에 이끌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손을 잡았다.
내 몸은 빛과 함께 점점 따스하게 데워졌다.
나의 몸은 작은 물방울들로 부서지고,
그 물방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점점 가벼워졌다.
나는 공기를 타고 천천히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에 다다르자, 빛알갱이는 떨어져 나갔다.
기온이 내려가며 나는 다시 작은 물방울들과 합쳐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다양한 모양으로 변신하며
공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녔다.
하늘에서 느낀 자유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로웠다.
구름이 되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또 다른 세상,
구불구불 이어진 강, 첩첩이 쌓인 산,
그리고 이름모를 생명들로 가득한 세상이 보였다.
"와! 정말 아름답다. 저곳에 가보고 싶어."
내 속마음이 들렸는지, 옆의 물방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곧 가게 될 거야. 우리가 함께 모이면서 점점 무거워지고 있거든."
기온이 점점 더 떨어졌다.
내 몸도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모두가 외쳤다.
"낙하 시작!"
수많은 물방울들의 수직 하강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구름의 포근한 품에서 뛰쳐나와, 우리는 땅을 향해 힘차게 돌진했다.
공기의 저항을 뚫으며 빙글빙글 회전하고,
서로 뭉쳤다가 부서지며, 자유낙하의 기쁨을 만끽했다.
떨어지는 몸은 그저 내맡겨진 채로
강렬한 자유낙하의 쾌감을 느꼈다.
우리는 잎사귀 끝에 톡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지붕 위를 미끄러지며 또르륵 흘러내리기도 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알록달록한 우산 위를 또르르 구르기도,
우산 없이 달리는 사람들의 머리카락 위에 톡톡 부딪히기도 했다.
바람은 나를 한라산의 깊은 숲으로 데려갔다.
빽빽한 나무 사이를 순식간에 지나,
나는 돌 위에 피어난 이끼 위로 톡 하고 안착했다.
이끼는 잎을 활짝 열어 나를 반겼다.
나는 작은 물방울들로 흩어지며 이끼의 잎과 줄기를 적셨고,
이끼의 잎과 줄기의 작음 틈새로 스며들어, 세포 속까지 채워주었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물방울들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이끼는 새 물방울들을 흡수하며 기쁨에 찬 듯 빛났다.
그러나 이끼의 세포가 더 이상 물을 담을 수 없게 되자,
나는 다시 이끼 잎과 줄기 사이로 새어 나와 바위를 타고 땅으로 흘러내렸다.
천천히 땅속으로 스며들며 나는 암석 사이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길을 따라 흐르다 보니, 나와 같은 물방울들이 모여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화산암층의 틈과 구멍 속에서 우리는 지하수대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나는 물줄기를 따라 함께 흘러가기로 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내가 물었다.
“우리는 바다로 흘러갈 거야.
하지만 일부는 인간들의 식수와 농업용수로 끌려가기도 해.”
“그런데 요즘, 우리 지하수에 이상한 물질들이 섞여 들고 있대.”
“정말? 그게 뭔데?”
“인간들이 키우는 가축의 분뇨와, 과수원에 뿌리는 농약과 화학비료 같은 것들이야.”
나는 슬퍼졌다.
“그럼, 깨끗했던 우리가 오염되는 거잖아.”
“맞아. 인간들이 문제야.”
우리 모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서 가자. 오염물질을 만날지 모르니.”
우리는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어두운 지하에서 흐르고 흘러, 드디어 바다로 통하는 길목에 다다랐다.
“바다다!” 모두들 환호하며 바다로 몸을 던졌다.
나도 그들과 함께 퐁당,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는 대양의 품속에서 나의 형제들과 다시 모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끝없이 순환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나는 하늘로 피어오르고, 대지를 적시며, 다시 땅속으로 스며든다.
그 여정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변하며 세상과 하나가 된다.
나는 비록 작은 물방울일 뿐이지만,
수많은 '나'들이 모여 구름을 만들고, 비가 되어 내리며,
강이 되어 흐르고, 바다가 되어 세상을 품는다.
숲과 생명을 적시고, 모든 생명을 키우며
이 세계에 기적을 이루어낸다.
나는 작은 존재다. 그러나 결코 작지 않다.
나 없이는 이 세상이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겠다.
영광스러운 첫 여정을 마치고,
나는 다시 대양 속에서 형제들과 함께 흐르며 다가올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나는 물방울이다.
나는 생명을 품고, 세상을 연결하며,
늘 새로운 곳을 향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