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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를 맞을 용기가 있나요?

해방감

by kaei

당신은 비를 맞고 뛰어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있어요.

중학교 때였던 거 같아요.

하굣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어요.

그날 무엇 때문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울했어요.

그 무렵 늘 우울감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나를 온통 먹구름 속에 가두는 기분이었거든요.

볕이 안 드는 날이 많은 날 속에서 지냈던 시절이죠.

그날은 비를 피할 마음도 일지 않아

장대 같은 비를 그대로 온몸으로 받아줬죠.

굵은 물줄기가 내 몸을 쿡쿡 찌르고

정수리 위로 쏟아지는 물줄기에

오히려 마음의 먹구름이 걷히며 볕이 드는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빗속을 뛰어 집까지 달렸죠.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빛 따위

그 순간만큼은 달리는 나에게 따갑지 않았거든요.

해방감이라고 할지, 자유로움이라고 할지

그때 나만 존재하는 기분이었거든요.


30대 초반의 어느 하루

나는 발리의 해안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바닷가에 뛰어들었어요.

바다에 몸을 맡기고 실컷 물놀이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어요.

몸에 끈적거리던 소금기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나는 하늘에서 내린 물로 샤워를 한셈이죠.

빗속에서 신나게 춤을 췄던 기억이 나요.

가끔 영화에 나올법한 장면, 그 장면 맞아요..

빗속에서 연인과 신나게 뛰고 소리 지르고 춤추는.

자유와 해방감을 끌어올릴 법한 장면을 마음껏 상상해 보면 돼요.


비를 맞으면 왜 자유로움, 해방감을 느낄까요?

비를 맞으면 안 돼라는, '안 돼'에서 벗어난 기분 때문일까요?

쏟아지는 비가 메마른 가슴을 뚫고 여리고 순수한 내면까지 적셔주어서일까요?

모든 세속의 걱정과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정화의식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까요?


마냥 순수하고 걱정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주는 그 순간에 나는 분명 행복했어요.

당신도 비를 맞아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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