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처럼 저녁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새로 생긴 매장이 눈에 띄어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새로 오픈한 매장은 꼭 한 번씩 들러 구경해 본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와 강아지가 있는 펫샵이었다. ‘귀여워.. 귀엽다..’ 하며 둘러보는데 태어난 지 100일도 안되어 보이는 작디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눈길을 끌었다. 맨 밑층 작은 유리 안에 갇혀서 가만히 나를 뚫어져라 보는데 ‘키워야겠다.’ 싶었다.
그냥 알 수 있었다. 돈을 지불하고 추운 겨울날 감기라도 걸릴까 서둘러 집에 와서 포근한 침대 위에 앉히니 그릉그르릉 대는 소리가 어찌나 귀엽던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이 있구나... 생각했다.
3일쯤 흘렀나 잘 자고 있는지 조심스레 다가갔더니 몸을 떨며 발작하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공포감에 너무 무서웠고 내 몸도 덜덜 같이 떨고 있었다.
24시 동물 병원을 찾아보고 택시를 불러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자초지종 설명을 하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한참 뒤에야 수의사 선생님을 마주하는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뇌전증입니다. 아마... 한 달도 못 살 것 같습니다.”
고작 태어난 지 세 달 된 생명인데,
남은 생명이 한 달이라니...
“치료해 주세요. 필요한 건 모두 다 해주세요.”
“치료해도 완치가 없습니다. 우선 필요한 조치는 모두 하였고, 동의하신다면 하루 정도 입원하여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입원을 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오빠 손가락 하나가 잘렸을 때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피 묻은 잘린 손가락을 손수건에 싸서 우는 아이를 들처업고 응급실로 달려가던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제발 낫게 해주세요 뭐든 할게요 제발...’
완치가 없는 병이라고 해도 치료가 어렵다고 해도 돈이 많이 든다고 해도 치료받을 수 있다면 혹시라도 나을 수만 있다면...
아주 작은 희망에 모든 걸 쏟아붓기로 했다.
다음 날 마음 단단히 먹고 퇴원시키러 다시 병원으로 갔다. 수의사 선생님이 말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
“치료받겠습니다.”
3일 간격으로 약을 타러 검사하러 병원에 갔다.
갈 때마다 돌아오는 건 늘 똑같은 말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그럼 나는 씩씩하게 대답한다.
“한 주만 더요 선생님.”
다음 주에 갈 때도 다다음 주에 갈 때도 다음 달에 갈 때도 한 주만 더, 한 달만 더, 1년만 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한 번도 원하는 걸 이루어보지 못한 나는 더욱 간절히 빌었다.
아주 작은 희망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매일 천천히 커졌고 아주 조금씩 점점 호전되어갔다.
그리고 오늘은 네가 태어난 지 6년째 되는 날이다.
5살이 되어야 받아볼 수 있는 건강검진도 받았고,
3kg 되는 게 목표였는데 지금은 4kg 되어 통통하고 귀여운 볼살을 처음 만져봤다.
“이제 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가 15년 수의사 생활을 했는데요. 정말 처음입니다. 솔직히 믿어지지 않아요. 보호자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 앞으로 만나지 말아요.”
“네. 우리 이제 만나지 말아요.”
언젠가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면 내 곁을 떠나가겠지만 마지막에 그 마지막까지 너의 옆에는 항상 내가 있어. 그러니 무서워하지 마 우린 계속 함께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