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엄지 Jun 30. 2024

나의 바다


내가 열 살 때 아빠가 할 말이 있다며 오빠랑 나를 불러 앉혔다. 바다가 있는 할머니가 살던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될 거라는 말이었다. 그곳은 정말 바다만 덩그러니 있는 시골이었고, 할머니가 주무시다 돌아가신 곳이었기에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가기 싫어요! 여기가 좋아요”라고 우린 동시에 대답했다. 싫다고 대답할 줄 알았던 듯 아빠는 “컴퓨터 사줄게”라고 했고 가져본 적 없는 컴퓨터를 사준다는 말에 우린 입꼬리를 올리며 “좋아요”라고 냉큼 대답했다.


이사는 아주 빠르게 준비되었다. 일주일 만에 모든 준비가 끝났고 정들었던 다정한 친구들과 눈물의 이별을 한 뒤 그렇게 떠나왔다. 이사하고 새로운 학교에 등교했을 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절반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에 조금 실망했다. 선생님이 처음으로 전학생이 왔다며 반갑게 나를 소개해 주었고 나는 수줍게 “안녕, 잘 부탁해”라고 인사를 건넸다. 아주 차가운 박수가 되돌아왔다.


처음 보는 눈빛들이었다.

자기들만의 공간에 누군가 들어온다는 게 굉장히 불편한듯한,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고 말 걸어주지 않았으며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보란 듯이 왕따를 당했고 그렇게 몇 개월을 버티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용기 내어 엄마한테 말했다.


“나... 친구 한 명도 없어요. 왕따 당하고 있어요.

친구들이 나한테 자기들 숙제를 시켜요.

너무 무서워서 학교 가기 싫어요.”

엄마는 내 어깨를 한번 토닥이곤 말했다.

“다 괜찮아질 거야”

이렇게 말하곤 거실 창문을 열어 파도치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엄마가 미웠다. ‘엄마는 나를 왜 낳았지?’

‘내 마음 위로도 안 해주는 게 무슨 엄마야?’

그날부터 매일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런데 매일 엄마도 커졌다.

엄마의 슬픔이 매일 계속 커져갔다. 슬픔이 모여서 한 알이 되고 두 알이 되고, 하루 종일 바다만 바라보다 저녁때가 되면, 꾹 닫혀있던 입은 약 먹을 때만 벌려졌다. 모아둔 슬픔을 한입에 삼켜 잠들었고 눈뜨면 다시 한 알, 두 알 계속해서 모았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이 되었다.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거실 창문 앞에 머물러있었다.



엄마 나 4학년 됐어요. 이제 고학년이라고요.

조금 커진 내가 온 마음을 다해서 엄마를 위로해 주고 싶어요. 힘이 되어 주고 싶어요.

옆에 앉아 바다를 같이 바라봐 줄게요. 조금 나아지면 바다가 아니라 나를 바라봐 주세요.

엄마는 나의 바다예요. 그러니 다 괜찮아질 거예요.



수, 일 연재
이전 03화 입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