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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엄지 Jul 21. 2024

두 명의 아빠


술을 끊기로 약속한 아빠는 그 말을 지켜나갔다.

퇴근 후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실에서 내내 야구와 축구를 보았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컴퓨터를 켜 고스톱 게임을 하며 밤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 같은 저녁을 보내며 조금씩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다음날 밤, 어디서 용기가 났을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빠를 보며 작게 말했다.

“고스톱... 저도 알려주세요.”

담배를 물고 있던 입이 놀란 듯 벌어졌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아빠는 거실로 나와 작은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서랍을 뒤적거렸다.


“이게 1월 이게 2월 이렇게 그림이 맞으면 먹을 수 있어. 이걸 모으면 점수가 나는 거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한지, 알려주면서 중간중간 고함을 치기도 했지만 좋았다. 뭔가를 같이 하는 게 그저 좋았다. 샤워를 마친 엄마는 내 옆에 앉아 천천히 다시 설명해 주었고 그제야 게임 방식이 쉽게 이해되었다.


“승부는 정정당당해야 한다. 봐주고 져주는 거 없다.”

이 게임의 제일 중요한 약속이었다. 점수 계산이 아직 어려워 한 판당 500원 내기로 정하였고, 모아둔 육천 원을 전부 잃었다. 정정당당하게 깔끔히 졌다. 가진 돈이 없으니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었다.


그때 방 안에서 잠자코 있던 막냇동생이 통통하고 귀여운 돼지 저금통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같이 웃었다.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웃었다.



눈물겹도록 행복한 밤이었다.

꿈인가 싶을 정도로 간절히 바라왔던 밤이었다.

내가 기억하게 될 두 번째 아빠와의 첫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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