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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엄지 Jul 17. 2024

먹고 싶다.


과자 빵 초콜릿 아이스크림 치킨 피자 다 먹고 싶다.

내 머릿속엔 먹을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배부른 걸 모르는 사람처럼 끝도 없이 먹어 치웠다. ‘성장기니까 다 키로 가겠지.’는 개뿔.

몸무게 68kg 찍는 건 아주 쉬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등교 후 매점에서 큰 사발 라면 하나와 햄버거 한 개를 먹고 후식으로 요구르트 한 줄을 먹었다. 점심시간엔 입버릇처럼 “많이 주세요~” 말했고, 저녁엔 과자와 치킨 피자를 입에 달고 살았다.

먹어도 먹어도 이상하게 뒤돌아서면 허기가 졌다.

내가 먹은 것들은 나를 옆으로만 자라나게 했다.


어느 날 저녁,

어쩐 일인지 아빠가 일찍 집에 왔다. 우리에게 저녁을 먹었는지 묻지도 않고선 치킨과 피자를 시켜주었다. 먹었어도 먹을 거지만. “치킨 왔다. 다들 나와” 소리에 일제히 식탁에 동그랗게 앉았다. 갓 튀긴 치킨 냄새 꼬수운 치즈 향이 가득한 피자를 보고 침을 꿀떡 삼켰다.


“먹기 전에 아빠가 한마디만 할게.”

삼킨 침이 체할 거 같았다. “네.” 대답하고 습관처럼 고개를 숙였는데 아빠가 하는 말에 저절로 고개가 들렸다.


“오늘부터 술 끊을 거야.”

처음 듣는 말이었다. 입 밖으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동안 흘렀고,

“이제 먹자.” 말에 피자 한 조각을 입에 구겨 넣었다.

참 달고도 맛있는 피자였다. 배부르게 먹고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편안하고 느긋하게 양치질을 했다.

고요함이 시작된 첫날밤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늘 막차를 타고 돌아갔는데,

어쩐지 집에 빨리 가고 싶어졌다. 땡 마치자마자 집에 가는 버스에 냉큼 올랐다. ‘뭐 하지? 아 뭐부터 하지?’ 나만의 저녁시간이 생겼다는 설렘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을 읽고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보고 잠들기 전엔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일기로 썼다. 귀가 아프지 않은 조용한 밤,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 차분한 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걸 실컷 하며 시간을 보내도 아직 밤이 남아있었다. 머릿속에 가득했던 음식 대신 오늘 읽었던 책 한 줄, 오늘 봤던 영화 속 대사 한마디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앞으로 수없이 다가올 나의 밤을

맛있고 배부르게 먹어치울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배고프지 않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밤이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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