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나의 사랑스러운 보금자리 20평 5층짜리 아파트에서 큰아이를 낳았다.
딸아이와 나는 아늑하고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딸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때 나는 또 부동산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고를 반복했다.
곧 둘째 아이가 태어날텐데 20평 아파트는 좁기도 하고, 또 시내쪽으로 한발 더 들여놓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주거에 관한 계획은 철저하게 나혼자만의 일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아버지를 잃은 나의 남편은, 남편으로써 그리고 아버지로써 해야 할일을 잘 모르는 듯 했다.
첫번째 집을 살때보다 더 큰 금액이 나의 손안에서 왔다갔다 해야 하는 현실이 부담스럽기도 했던 나는, 남편과 의논이라도 할라치면 지금도 충분한데 뭐하러 이사를 갈려고 하느냐는 핀잔을 주었다.
성인이 될때까지 가난을 벗어나는 방법을 한번도 배우지 못한 남편은, 부자들은 다 편법으로 돈을 벌었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운이 나빠 가난할 뿐이라는 아주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더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고 싶어졌다.
만삭의 몸으로 딸아이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요즘 흔히 말하는 임장을 다녔던 것이다.
임장을 다니다가 힘들면 딸아이를 데리고 KFC로 가서 이것저것 먹으면서 휴식을 하고 노트에 정리를 했다.
그때는 커피를 마실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없었고 편하지가 않았으므로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때까지 애용하던 공간이었다.
지금도 두 아이들은 엄마인 나와 함께 갔던 KFC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드디어 34평형의 새아파트를 선택했다.
심사숙고 끝에 내가 가진 금액이랑 아이들 학군이랑 남편의 직주근접까지 고려하여 결정한 집이었다.
남편에게 이러한 내용을 알렸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그 사이에 모아놓은 돈으로 이사를 가면 된다고 설명을 했다.
남편의 직장동료도 그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하더라며 이번에는 별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왜 자꾸 집을 사냐고 아무데나 살면 될것을 참으로 별나다며 내게 핀잔을 주었다.
가난을 몸으로 뒤집어쓰고 살았던 당신이 어떻게 자식이 집을 넓혀가는 것을 반대할수 있단 말인가.
욕심내지 말고 분수대로 살아라는 뜻이었던 것 같았는데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부자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부동산 계획을 세웠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은 환경에서 좀 더 넓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아이들에게 마련해 주고 싶었고,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지방에 살다보니 집값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어려움 없이 계획대로 갈수 있었다.
또한 살던 집을 팔아서 새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기에 집을 매도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나는 일단 짐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집청소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집값을 시세보다 약간 낮게 내 놓았다.
쉽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나는 적당한 시기에 집을 매도할 수 있었다.
드디어 20평에서 34평으로 이사를 했다.
5층짜리 엘리베이트가 없는 아파트에서 18층짜리 엘리베이트가 있는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거실에서 앉아 있으면 강이 보이고, 신문을 넓게 펼쳐놓고 읽으면서 커피를 마실수 있었다.
낑낑대며 짐을 양손으로 들고 올 필요도 없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작은 아이는 5살이었다.
나는 부동산 계획과 더불어 단절된 나의 경력을 부활시킬 준비를 했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 두었던 이유는 내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일생에 한번만 주어지는 기회를 돈을 벌자고 던질수는 없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열심히 하다보면 분명 나의 삶은 달라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