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기 너무 어렵다.
지방에서는 집을 사는데 있어, 수도권과 비교해 다면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부담하지는 않는다.
내가 집을 사고 또 팔면서 옮겨가는 이유는 쾌적한 삶을 누리고자 함이었고, 또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산을 소유하라' 갑자기 소유하고 싶어졌다.
내가 아니라 나의 두 아이들이 자라게 되면 마중물이 될만한 그런 집을 사고 싶어졌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 즉 1972년 쯤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 중에 오지 산골에 부임하신 선생님께서 전기가 들어오게 되면 전기가 밥을 한다고 했다.
밥솥에 쌀을 안치고 뚜껑을 닫고 전기선을 꽂아 놓으면 밥이 다 되어 있다고 했다.
전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나는 선생님의 괴이한 말을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무에 불을 지펴서 그 열로 인해 쌀이 밥이 되는건 알겠는데, 전기는 뜨거운 물건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도대체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9년이 지난 중학교 3학년 12월 31일 저녁 8시에 우리 마을에도 전기란 물건이 왔다.
호롱불을 켜놓고 숙제를 하고, 밤외출 시 관솔(송진을 머금은 나무로 주로 소나무)에 불을 붙여 어두운 길을 밝히거나 석유를 넣은 호야등을 들고 다니면서 급한 볼일을 보곤 했다.
그런데 막상 전기를 만나고 보니 뜨거운 물건도 아니고 나무처럼 눈에 보이는 물건도 아니었다.
그저 검은선을 타고 눈에 보이지 않게 흐르는 희안한 물건일 뿐이었지만, 너무 밝고 환한 마음에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지금은 시대가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흐름과, 나의 어린 두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흐름은 지금과는 달리 더 빨리 변화의 물결에 휘말리게 될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의 두 아이들을 위한 부동산 준비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의식주의 하나로서 본인이 살 집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물가가 조금씩 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플레이션을 타고 넘을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금부터의 부동산 계획은 지방이 아니라 서울이다.
먼 일이긴 하지만 두 아이들이 지방으로 취직을 하게 되면 별 문제 없이 집을 구할 수 있지만, 서울에 취직을 하게 될 경우를 예상해서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부동산 관련 정보가 넘치는 시대가 아니었다.
나는 주로 신문을 통해서 대부분의 정보를 얻었는데 어느날인가 'ㅂㄷ' 이라는 곳에 신도시가 생긴다고 했다.
지도를 보니 강남과도 가깝고 어찌해보면 될것 같았지만 겁이 났다.
계약금과 중도금 여러차례 그리고 잔금까지 준비할 자신이 없었다.
은행 대출에 관하여서는 무지했고, 곧바로 실입주를 해야만 하는 걸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당시 서울 대치동 사무실로 파견 근무를 가 있는 남편에게 의논을 하였고, 이참에 그쪽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지만 역시 예상대로 그는 나의 야무진 계획을 세치혀로 박살을 내 버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데 상대가 어떻게 나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또 다시 신문에 온 마음과 내 두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낸 것은, 집을 산다고 해서 곧바로 들어가 실거주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세를 안고 집을 사서 후일 필요할 때 전세금을 빼주고 나의 아이들이 입주하면 되는 것이다.
전세금 빼고 나머지 돈을 준비하는 것은 신도시 새 아파트 입주보다 쉽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나는 또 다시 지도를 펴고 눈알이 빠지도록 살폈다.
내가 가진 돈과 사람들이 선호하는 생활여건을 가진 동네를 살펴야 하니까.
찾았다.
13평 구축 'ㅈㅅ' 주공아파트 매매가 1억 4천 오백만원으로, 보증금 빼고 나머지 금액은 준비할 수 있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까 취직할때 까지 열심히 돈을 모으면 보증금을 빼 줄수 있을 것 같았고, 아니면 아이들에게 직접 보증금을 빼서 들어가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지금부터는 남편을 설득해야 한다.
어렵겠지만 한번 해보도록 하고 나 스스로에게 '화이팅' 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