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어려움
'ㅈㅅ' 주공아파트를 사고 싶었다.
전세를 안고 사서 계속 관리하고 있다가, 내 아이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면 그때 입주하면 될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 당시는 KTX가 없는 관계로 서울로 드나들기가 부담스러웠다.
마침 서울사무소에 파견근무 가 있는 남편에게 'ㅈㅅ'주공아파트를 보고 오라고 했다.
이런 저런 계획을 쭈욱 설명하고 의견을 물었더니, 오래된 작은 아파트를 비싸게 주고 사는 바보가 어디있냐고 핀잔을 주었다.
물론 가보지도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ㄱㅊ'주공아파트도 알아보았다.
청담동의 작은 빌라도 알아보았다.
'ㄱㅍ' 주공아파트도 탐이 났다.
'ㅂㄷ'신도시에 분양하는 아파트는 강남과도 가깝고 새아파트에 커뮤니티도 화려한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요즘처럼 많은 정보수집도 어려웠던지라 핑계같지만 지방에서 더 이상 적극적으로 알아보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남편이 펄쩍펄쩍 뛰며 반대를 했다.
돈이 지난번 보다 더 많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라 부부가 어느 정도의 의논이 되어야지 아무리 그래도 나 혼자 독단적으로 할 용기도 없었다.
나도 점점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이 서울로 대학을 간다는 보장도 없는데 여기서 아파트 사는 일을 그만 둬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우연히 나의 경력단절이 풀렸다.
어느 대학에서 시간강사 요청이 들어왔다.
그때부터 이상하리만큼 인근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물 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정신없이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하루 종일 강의를 해도 힘든 줄 몰랐다.
밤 늦도록 강의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주말에도 강의준비를 하느라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우리집은 34평형으로 방이 3개였다.
안방과 딸의 방 그리고 아들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일을 하다보니 갑자기 나의 서재가 필요했다.
식탁위에 가득 쌓인 책들과 유인물들이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나는 또 길을 나섰다.
나의 서재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리라.
어렵지 않게 나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48평형의 새아파트에 두 아이들 방과 안방, 서재, 그리고 드레스룸까지 갖춘 내가 원하는 집이 번듯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약을 하고 이사를 했다.
나의 서재를 가지고 나니 배가 불렀는지, 서울에 점 찍어둔 아파트는 내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어느 날 큰 아이가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었고 그때서야 '아차, 아파트' 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이 터져라 강의를 해서 번 돈은, 내가 찜해둔 아파트의 가격에 비해 새발의 피였다.
너무 많이 상승해 버린 아파트의 가격은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