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치어의 바다 - 3
백사막이 빛바랜 사막이라면, 흑사막은 반쯤 타다 만 그을음이다. 우뚝 우뚝 솟은 바위산들과 검은흙, 황토가 번진 사막은 온통 황량하다.
원래의 여정이었다면 원하는 어디든 차를 세워 실컷 사막을 구경했을 참이다. 하지만 사막여우가 신발을 훔쳐가는 바람에 맨발인 매튜는 지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한낮의 태양에 달궈진 모래 위를 맨발로 다녔다간 화상 입기 딱이다.
해서, 우린 사막을 일찍 벗어나기로 했다. 사실 흑사막은 크리스털 사막이나 백사막만큼 매력적이진 않았으므로 딱히 아쉽진 않았다. 대낮부터 삭막한 풍경 속에 오래 있고 싶은 사람은 우리 중엔 없었으니까.
출발할 때 들렀던 초입의 마을로 향하다가 야생 수박밭을 발견하고 잠시 차를 세웠다. 길쭉한 칼을 들고 밭으로 들어간 아메르는 곧 수박 몇 통을 뚝뚝 잘라 들고 왔다.
나와 해원 언니는 차에서 내려 아메르가 쪼개 주는 수박을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차에 남은 매튜에게도 계속 날라다 줬다. 도대체 황무지의 어디에서 물을 끌어다 자라는 건지 야생 수박은 즙이 가득하고 달콤했다. 과육이 혀끝에서 부스러져 녹아 사라진다.
우린 남은 수박은 지프의 짐칸에 싣고 그곳을 떠났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아메르가 사는 집이었다.
수줍음 많은 아내와 한 명의 딸, 어린 세 아들이 우릴 맞아주었다. 아메르의 큰 딸은 우리를 향해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빛냈다. 두 일란성쌍둥이 아들들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갓난아기는 엄마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메르가 수박과 캠핑 도구를 집 안으로 옮기는 동안, 우린 차를 얻어 마시며 아메르의 딸과 함께 안방에서 놀았다. 두 쌍둥이가 깨어나 달려들며 장난을 쳤다.
아메르의 집을 나와 매튜의 응급(…) 슬리퍼를 살 만한 곳에 들른 후, 출발지에 도착했다. 아메르와 헤어져 카이로 시내로 우릴 태워갈 차량이 도착했을 때, 나와 언니는 적잖은 이집트 파운드를 갹출하여 아메르에게 내밀었다. 그는 적절한 예의와 위엄으로 우리에게 인사한 뒤,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 점마저도 아메르다웠다.
우린 중간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에서 영국에서 유학 중이며 이집트에는 휴가 차 왔다는 파키스탄 청년들과 친해져 카이로로 돌아오는 내내 수다를 떨었다.
투르고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는 다하브행 급행버스를 예약한 뒤 ‘술탄’ 호스텔로 돌아와 맥주를 실컷 마셨다. 일본인인 숙소의 여주인(숙소 주인인 남편은 이집트인으로, 이 여성은 결혼하며 이슬람교로 개종했다)이 만들어 준 간단한 샐러드와 라면이 안주였다.
이 날 저녁, 숙소 주인의 여동생인 아비어와 6시간이 넘는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종교였다. 이슬람교도인 그녀는 세상 밖으로 나아가고 싶은 자신의 욕망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꺼리는 종교문화 사이에서 치열하게 갈등하고 있었다. 그녀가 종교를 저버릴 수 없는 까닭은 의식 깊은 곳에 박힌 모태신앙 때문인 듯했다.
아비어는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나라에선 가톨릭이나 불교가 개인의 선택으로 좌우될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불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자꾸 대화가 헛돌았다.
그녀는 불교엔 신이 없으며, 깨달음과 해탈이 개인을 초월적, 즉 신적인 위치까지 높일 수 있다는 교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사실 나도 불교 교리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을 뿐이어서 어쩌면 내 설명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선천적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색을 설명한다면 이와 비슷한 기분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뿐만 아니라 종교의 자유라는 개념도 없어서 이를 설명하는 데에도 꽤 애를 먹었다. 끝내 성공하지도 못했다. 하기야 아비어의 세계에서 종교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그녀의 갈등은 애당초 성립이 안 됐겠지.
다하브로 떠나기 전, 나와 해원 언니는 나의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고심했다. 해원 언니는 다하브의 다음 여정지가 고민이고, 나는 어떤 루트를 통해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가 고민이다. 해원 언니를 만나 귀향 욕구가 시들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집트 다음을 떠올리면 여전히 막막하다.
“그럼 이집트에서 귀국하려고?”
“모르겠어. 어쨌든 집에서 멀어지는 여행은 그만하고, 이젠 집으로 가까워지는 여행을 하고 싶어. 하지만 어떤 루트를 타야 할지 모르겠네. 너무 멀리 와버렸나 싶다.”
“멀긴 하지. 이집트는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양쪽에 걸쳐 있긴 해도 아프리카 대륙에 속하는 영토가 압도적으로 크니까.”
“그렇지.”
“그럼 빨리 비행기 편을 알아보는 편이 좋지 않아?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저렴하다며.”
“그렇긴 한데……”
저절로 말끝이 흐려진다. 어째서 이렇게 뒤가 개운치 않은 느낌일까? 나는 좀 더 고민하다가 에라이- 하고 생각하길 때려치웠다.
“일단 다하브에 가서 생각해볼래. 앞으로 어떻게, 어디로 갈 것인지는.”
나를 보던 해원 언니가 미소 짓는다. 꼭 누군가의 어깨를 다독이는 듯한 미소다.
“재인이 널 보면 내가 참 기분이 좋아.”
“언니가? 왜.”
내가 뭘 했다고? 어리둥절해서 그녀를 본다. 그녀가 말한다.
“널 보면 내가 다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 세상에 널 옭아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 네 마음에 귀 기울이고 움직이는 데 망설임이 없잖아.”
순간 뭐라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자유롭다니? 오해다.
네팔 도보여행 실패 이전이었다면 이런 말을 듣고 마냥 우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그간 비대한 자아가 만든 얼토당토않은 허상, 내가 의지가 강하며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착각에 내내 빠져있었음을.
그래서 나는 방향을 잃은 채, 한없는 어둠을 더듬고 있다. 분명 다시 어느 길 위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조짐 혹은 예감을 기다리며.
난 말했다.
“나 그런 사람 아니야. 그냥 사소한 결정들을 빨리 내리는 편이라서 언뜻 그렇게 보이나 봐.”
해원 언니가 날 가만히 본다.
“속은 엉망이야. 전에 이야기했지만, 난 네팔 여행 도중에 길을 잃어버렸어. 진짜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돼버렸다고. 그래도 하나 위안이 되는 게 있어.”
언니가 “뭔데?” 라며 묻는다.
“헤매는 건 배우는 과정이고, 배움은 성장이며, 사람은 평생 자란다는 거. 전 같았음 어디 지하철역 광고판 같은 데서 보고 코웃음 쳤을 이런 문구를 지금 내 입으로 읊는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여하간 그렇다는 거.”
해원 언니는 내 말을 잠시 생각하더니, 곧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어디서 비슷한 이야길 들었는데 사람은 성장을 멈추는 순간 죽어가기 시작한다더라.”
“응.”
“그럼 너는 생생히 살아있는 거네.”
다하브행 짐을 싸면서 나는 생생히 살아있는 거라던 언니의 말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배낭에 담지 않은 노트북을 본다.
어차피 나를 둘러싼 세계는 항상 모호하고 불안했다. 부모님 그늘 속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에도 온전히 안정적이고 확실한 세계는 없었다. 그 세계를 살아가며 나에게 늘 나침반이자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것은 역시 쓰기Writing였다.
쓰는 행위만은 오롯한 나의 의지로, 내가 결정하여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내 안에서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내 존재가 흔들리는 이 순간마저 쓰지 않는 나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 쓰는 행위가 어떤 형태로 완성되건 간에.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한동안 술렁이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진다.
일단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차차 생각하자. 내게는 확실하고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 그리고 나는 언니의 말대로 생생히 살아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계속 움직이다 보면 분명 어딘가에는 이르게 되겠지.
다치지 않도록 파우치에 넣고 옷가지로 감싼 노트북을 소중히 배낭에 넣는다. 내가 표류하는 곳 어디든 늘 이 친구가 함께 할 것이다. 비로소 도착한 목적지의 마지막 계단을 차곡차곡 오르며, 긴 여행에서의 일들을 돌이키는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