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치어의 바다 - 5
태윤은 내 바로 옆 창가 침대를 골랐다. 해원 언니의 침대는 그와 마주 보는 자리다. 볕에 골고루 잘 그을린 그는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는 더 적다. 삼백안에 옆으로 긴 눈매 때문인지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우리 저녁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저녁을 먹으러 나갈 즈음, 낯 가리는 해원 언니를 대신해 내가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태윤은 망설임 없이 그러마고 답했다. 사실 거절을 예상했던 나는 그가 순순히 나서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새로이 도전한 식당에서는 볶음밥, 맥주를 주문했다. 해원 언니와 태윤은 생선 요리를 골랐다. 태윤이 멜론 향으로 주문한 물담배, 시샤가 나오자 은은한 향기가 퍼진다. 시샤를 신기하게 보던 해원 언니는 담배 연기가 이렇게 향긋하다니 믿을 수 없다며 감탄한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스물여섯이요.”
“나랑 동갑이구나! 우리 편하게 말 놓자.”
“그러지 뭐.”
이번 여행에서 동갑내기 한국인 남자를 만난 건 처음이라 갑자기 반갑다. 해원 언니도 옆에서 “동갑 친구라니, 좋겠네.” 라며 거든다.
“아까 보니까 스쿠버 다이빙 배우는 것 같더라?”
“응.”
“진짜?! 나도 배울 건데. 어때? 무섭지 않아?”
“별로요.”
“이 숙소 강사님한테 배우고 있는 거지? 잘 가르쳐주셔?”
“그럭저럭요. 일단 저렴하니까……”
해원 언니는 본인이 하려는 스쿠버 다이빙 이야기가 나오자 잔뜩 열이 올라 태윤에게 쉼 없이 말을 붙인다. 저 언니는 가만 보면 낯을 가린다면서도 영 안 가리는 것 같다.
나는 둘이 대화하도록 둔 채, 쿠션에 느긋이 몸을 기댄 채 태윤의 시샤를 피워보았다. 인도에서도 그렇고 여행 중에 호기심에 몇 번 해본 적이 있긴 하다. 잘은 모르지만 향이 아무리 좋아도 잎담배보다 훨씬 독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금세 몸이 나른해진다.
느긋한 저녁이다. 밤이 스며들자 해변 가로등이 하나둘 켜진다. 유난히 화려한 색감의 거리는 밤이 되니 더욱 선명해진다. 파도는 밤바람에 거칠게 부딪히며 도란도란한 옆의 말소리를 덥석덥석 집어삼킨다. 나는 바람과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며 눈을 감는다.
“좋다……”
좋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온다.
해원 언니는 이튿날 아침부터 바로 스쿠버 다이빙 강습을 시작했다. 전날 태윤과 같이 있던 중년의 마른 한국인 남자가 강사로 이름은 케빈이라고 했다.
도미토리 숙박객도 한 명 더 늘었다. 그 역시도 스쿠버 다이빙 강사인데, 프로는 아니고 케빈의 어시스던트란다. 런던에서 연극영화과 유학 중이던 그는 휴가차 여행을 나왔고, 그러다 도착한 다하브에서만 1년 넘게 머물고 있는 중이다.
이름은 김민석. 키는 작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근육질의 한국인이다.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는 옷이 하와이안 트렁크 팬츠 한 장뿐인 데다, 피부가 온통 구릿빛이라 딱 타잔이다.
해원 언니와 태윤은 하루에 2번 강습을 받는다. 이른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그동안 나는 시리얼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산책을 나가 원 없이 걷는다. 그러다가 꽂히는 곳 어디든 앉아 바다를 본다. 그러면 눈부신 바다 끝에서 황톳빛이 어른댄다. 사우디아라비아다.
다하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보인다. 무슬림이 아닌 자는 밟을 수 없다는 땅.
델리에서 알렉산드리아로 넘어갈 때 사우디아라비아 킹 칼리드 국제공항에서 두어 시간 체류한 일이 있다. 공항 대기 의자에 앉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공항도 버젓이 사우디 영토 위에 서있는데, 단지 ‘공항은 무국적 지대’이기 때문에 이곳은 되고 이곳 바깥은 안 되는 게 참 재밌다고.
어쨌든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고, 당장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바다다. 물놀이는 좋아하지만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에 튜브나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간 적은 없다. 지금 내게는 둘 중 무엇도 없으며, 정식 수영은 배운 적이 없어서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아직은 바다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하브의 바다는 딱 봐도 깊다. 애초에 스노클링, 스킨 스쿠버, 스쿠버 다이빙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산호바다를 눈앞에 두고 구경만 할 순 없다. 정말이지 튜브만 있어도 진작 들어갔을 텐데…… 그러나 이곳에서 튜브를 타고 노는 건 어린애들뿐인 듯하다.
결국 오늘도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객실에는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와 있던 해원 언니가 초췌한 몰골로 젖은 머리를 말리는 중이었다.
밤이 되자 어디선가 맥주를 잔뜩 공수해 온 타잔은 옆 숙소의 한국인 신혼부부를 끌어들여 라면을 끓이게 하더니 나중에는 화투판까지 벌였다. 화투를 칠 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나는 끼지 않고 계속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해원 언니가 노트북으로 이메일을 쓰다가 물었다.
“재인이는 오늘 바다 들어가 봤어?”
“아니.”
“왜? 무척 아름답던데.”
“수영할 줄 몰라서.”
“에엥?!”
방에 있던 사람들 동시에 외친다. 그 바람에 더 기분이 상했다.
“그게 그렇게 이구동성으로 놀랄 일이야?”
타잔이 어이없어하며 묻는다.
“수영도 못하는데 여긴 왜 왔어?”
“바다를 꼭 수영으로만 즐기나? 보기만 해도 좋잖아요.”
“여기까지 와서 바다 한번 안 들어가면 너무 아깝죠.”
“물 밖에서 느긋이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지.”
막 화투패 한 장을 내려놓던 주영 씨 부부가 저희들끼리 주고받는다.
“수영은 왜 안 배웠어?” 해원 언니가 묻는다.
“운동 싫어하고, 굳이 필요를 못 느껴서?”
언니는 물끄러미 날 보다 고개를 살레살레 젓는다.
“의외다. 그렇게 안 보였어. 운동 좋아할 것 같거든.”
그게 제일 큰 오해다. 대화를 듣던 타잔이 말한다.
“그럼 이 참에 스쿠버 다이빙 한번 배워보는 건 어때? 그건 수영을 대단히 잘하지 않아도 돼.”
“딱히 관심 없어요.”
“아, 그래.”
타잔은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는다. 그때 여태 조용히 있던 태윤이 입을 연다.
“스노클링은?”
“스노클링?”
“핀(오리발)이랑 스노클, 구명조끼까지 전부 종일 대여해도 한화 2천 원 밖에 안 해.”
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런 게 있음 진작 말하지!”
태윤이 심드렁히 “안 물어봤잖아.”라고 대꾸한다.
날이 밝자마자 씻지도 않은 채 리셉션 룸으로 달려갔다. 리셉션을 지키던 오너의 동생이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난 받는 둥 마는 둥 냅다 말했다.
“스노클링 장비요!”
“예?”
“스노클링 장비 빌려줘요.”
“아, 예.”
얼떨떨해하던 그는 스쿠버 다이빙 장비가 가득 진열된 사무실로 날 안내했다. 스노클링 장비는 문 바로 옆 목재판에 즐비하게 걸려 있다.
“이 중에서 맞는 장비 가져다 쓰면 됩니다. 돈은 반납할 때 내거나, 아니면 숙소 비용 계산할 때 합산해서 지불해도 되고요.”
“네, 네.”
“근데……”
매니저가 묘한 눈길로 날 훑어보며 말끝을 흐린다. “왜요?” 되묻자 그가 설마, 하는 투로 묻는다.
“그 옷 그대로 입고 수영하러 갈 건가요?”
“?”
나는 차림을 훑어보았다. 긴팔 흰색 상의 위에 네팔에서 산 현란한 색감의 미니원피스 탑을 걸쳤다. 하의는 한국에서 가져온 진녹색(실은 형광 녹색에 가깝다) 레깅스와 트레이닝 핫팬츠를 입었다. 핫팬츠는 미니원피스보다 짧아서 그냥 봤을 땐 요란한 미니 원피스에 녹색 스타킹을 신은 정도로 보일 것이다.
“수영복이 없어서요.”
“그렇다고…… 짧은 옷이라도 입지 그래요.”
“짧은 건 안 돼요. 피부가 햇빛에 약해서 화상을 입거든요.”
매니저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리셉션으로 돌아갔다. 나는 스노클을 이것저것 써본 뒤 맞는 걸 고르고, 발 사이즈에 맞는 오리발, 구명조끼를 챙겨 숙소를 나섰다.
스노클을 목에 걸고 오리발을 옆구리에 낀 채 신나서 걸어가는 나를 사람들이 흘끗거린다. 입고 있는 옷부터 어지간히 요란하니 저런 시선도 이해는 간다. 그래도 화상 입고 고생하는 것보단 낫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 지리산 계곡에서 종일 땡볕에 놀았다가 화상을 입고 3박 4일을 편히 자지 못한 일은 지금도 트라우마다. 게다가 3박 4일로 끝나지도 않았다. 남은 방학 내내 양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지냈으며, 처음에는 밤마다 흘러나오는 진물을 닦고 소독하느라 어지간히 고역이었다. 그 난리는 결국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부 전체가 한 껍질 벗겨지고서야 끝났다.
태윤이가 가르쳐 준 ‘스노클링 스팟’은 등대 근처다. 등대는 바다로 멀리 뻗은 산호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고 했다. 등대까지 이어지는 해변은 덱 체어에 몸을 누인 채 일광욕을 즐기거나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원하는 위치에 도착한 나는 슬리퍼를 벗고 오리발을 꿰어 신었다. 구명조끼를 몸에 맞게 조절한 다음, 뒤뚱뒤뚱 뒤로 걸어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차고 보드랍다.
바닥에는 큼지막한 돌들이 많아 오리발을 신고 걷기 어렵다. 나는 수위가 정강이 정도로 올라왔을 때 멈춰 서서 스노클을 썼다. 스노클링용 수경의 스노클은 처음 물어보는 거라 이물감이 들고 이상하다.
그때 1~2m쯤 떨어진 거리에서 부글부글 공기 방울이 올라오더니 스쿠버 다이버들이 줄지어 솟아오른다. 물밖로 나가는 그들을 잠시 보다가 엎드리듯 물속에 몸을 담갔다.
햇빛이 관통한 바닷속은 온통 환하다. 구명조끼 덕분에 몸은 간단히 뜬다. 오랜만의 물놀이다. 근육에 바짝 힘이 들어간다. 나는 최대한 힘을 빼려고 노력하며 두 다리를 움직여 본다. 핀의 효력은 실로 놀랍다. 살짝만 움직여도, 파도 따윈 아랑곳하지 않으며 몸이 쑥쑥 앞으로 나아간다.
해저의 경사가 금세 가팔라진다. 엇, 하는 사이 키를 훌쩍 넘는 높이까지 들어와 버렸다.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태에서 이 정도 깊이까지 오기는 처음이다. 요람에 든 듯한 안락함과 까닥 잘못하면 곧장 익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출렁인다. 그건 정말이지, 이상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마음이다.
완만한 경사면이 뚝 끊기며 절벽이 나타난다. 갑자기 깊어진 수심에도 당황하지 않은 것은 눈앞의 기적 같은 풍경 덕분이다.
절벽 표면 가득 만개한 산호 주위를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열대어들이 노닌다. 물속을 관통한 햇살은 물고기 떼의 비늘에 반사되어 어지럽게 반짝인다.
움푹 팬 해저면마다 듬뿍 깔린 금색 모래 위로 조개며 소라며 게 따위가 사부작사부작 주변을 배회한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광경이다. 픽사 장편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 초반부에 등장한 열대어 마을이 딱 저랬다.
수심 6m 정도 되는 지점까지 와있는 데도, 공포는 잊힌 지 오래다. 환상적인 바닷속 풍경을 홀린 듯 보는 내 옆으로 스킨 다이버 한 명이 인어처럼 잠수하여 바닥을 향해 헤엄쳐 간다. 그리고는 제 얼굴만 한 소라를 하나 주워 유유히 떠오른다.
나는 조금 전 그녀가 다녀간 자리로 가본다. 태양빛이 먹구름 사이를 헤치며 파고드는 풍경처럼 그곳은 유난히 밝고 환하다. 검푸른 세계를 비집은 비밀스러운 틈이다. 산호도, 물고기도 그 자리를 지날 때면 색이 유독 선명해진다.
한참이나 산호의 세계를 구경하며 바다를 둥둥 떠다녔다. 그러다가 흰동가리 커플을 발견하고는 두 녀석 뒤를 졸졸 따라 바닷속 구경을 다녔다. 시폰 커튼처럼 하늘하늘 나부끼는 말미잘도 구경하고, 말미잘 숲에 사는 다른 물고기들도 구경했다.
게 중에는 떼를 지어 헤엄치는 작은 녀석들도, 태평하게 홀로 다니는 우람한 놈도, 사이좋게 두엇씩 짝지어 다니는 녀석들도 있다. 나는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나도 산호초 마을 주민이라도 된 양 여겨질 만큼.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몸을 돌려 얕은 곳으로 헤엄쳐 갔다. 내일 또 들르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런 신비롭고 환상적인 풍경을 하루 만에 모조리 소비해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뭍으로 나와 핀을 슬리퍼로 바꾸어 신고 숙소로 돌아갔다. 도착해서 시계를 확인하니 숙소를 떠난 후로 4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세상에. 별로 오래 있던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을 도중에 건너뛰기라도 한 걸까?
“바다에 다녀왔어?”
이제 막 객실로 들어오는 해원 언니가 물을 뚝뚝 흘리며 묻는다. 표정을 보니 강습이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응.”
“어땠어?”
나는 흐흐, 웃으며 대답한다.
“내일도 모레도 갈 거야.”
해원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래. 누구라도 좋다는 사람이 있으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