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치어의 바다 - 6
입수에 성공한 날부터 나는 매일 바다에 들어간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이렇게 나아가는 수심은 더욱 깊어진다. 물 위에 둥둥 떠있으면 꼭 하늘을 나는 것 같다. 풍요로운 수중 세계가 내 밑에 있다. 그래서 나는 자꾸 어디로든 날아가고 싶어 진다. 어디로든.
나흘째가 되자, 스노클과 핀만 착용한 채 자유롭게 잠수하는 스킨 다이버들이 부러워진다. 나도 마음껏 저 밑에 닿아보고 싶다.
닷새째 날 아침. 숙소에 새로운 손님이 등장했다. 홍콩에서 온 그녀의 이름은 메이린. 어느 무역회사의 비서로, 일주일 휴가를 받아 이집트 내륙을 관광하다가 다하브의 소문을 듣고 빡센 일정에 한 곳을 더 추가했단다. 바다에 다녀온 나는 도미토리룸에 들어서다 하이톤의 영어로 재잘재잘 떠드는 그녀를 발견했다.
“여기가 그렇게 좋은 스노클링 스팟이라면서요? 어디가 좋아요?”
“등대 인근이 좋죠. 오늘 스노클링 하러 가려고요?”
메이린이 결연히 고개를 끄덕인다.
“가야죠. 시간이 오늘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안 무서워요?”
“수영 못해요?”
“할 줄 알아요.”
“그럼 됐네. 꼭 해봐요. 그러려고 여기까지 없는 시간 쪼개서 온 왔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막상 물에 들어간 메이린은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의욕은 충만하건만, 가슴 높이 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 애들 노는 얕은 물가만 오락가락하며 안절부절못한다. 보고 있는 애먼 내 속이 터진다.
“아니, 수영할 줄 안다면서요?”
“하지만 무서워요. 수영장과는 다르잖아요.”
“구명조끼도 입었는데?”
“발이 바닥에 안 닿으면 무서워요.”
무슨 돌림노래 대화도 아니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메이린. 이 수위에서는 아무리 들여다봐야 모래랑 사람 다리 말곤 볼 게 없어요. 산호초랑 열대어, 이런 거 보려고 무리해서 왔잖아요. 내일이면 당장 홍콩행 비행기 타야 한다며. 안 보고 가면 엄청 후회할 걸. 진짜 아름답단 말이에요오. ”
“그치만 진짜 겁난단 말이에요오.”
메이린이 자그마한 머리를 마구 젓는다. 말을 섞을수록 답이 없다.
“그럼 그냥 나갈래요?”
“그건……”
미련이 또 딱 버려지진 않나 보다. 메이린이 우물쭈물 말끝을 흐리는데, 가까운 덱 체어에 앉아있던 중년의 서양 여성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건넨다.
“친구분 말대로 한번 들어가 봐요. 겁낼 것 없어요. 무서움도 다 잊어버릴 만큼 근사하거든.”
그녀의 등에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던 남자도 거든다.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용기 내어 가 볼 가치가 있죠.”
그러나 메이린은 여전히 불안한 눈으로 먼바다를 보기만 할 뿐, 선뜻 결심하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합시다. 내가 손을 잡아줄 테니까 메이린은 그대로 옆에서 따라오는 거예요. 둘이서 가면 덜 무섭겠죠? 그리고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거나, 멋진 풍경이 보이면 내가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줘서 신호를 보낼게요. 그전까지는 밑은 보지 말고 나한테만 집중해서 따라와요. 어때요?”
메이린의 눈이 반짝인다.
“정말? 진짜 그렇게 해줄 수 있겠어요?”
“네.”
적어도 여기서 그녀가 망설임을 끝내길(끝내지 못할 것 같다) 마냥 기다리기보다야 나을 것 같다.
메이린이 내 손을 마주 잡는다. 나는 그녀가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도록 손을 꼭 붙잡고 빠르게 헤엄쳤다. 물결이 살갗을 스치며 쑥쑥 밀려난다. 메이린이 수영을 배웠다는 말은 사실인 듯, 생각보다 안정감 있게 나와 보조를 맞춘다.
산호 절벽에 도착하기까지 우린 죽은 산호가 뒹구는 모래밭을 지났다. 나는 검은 절벽을 향해 나아갔다. 차가운 해류가 팔다리를 휘감는다. 저 검은 절벽을 넘어가면 내가 며칠 째 출근도장을 찍고 있는 산호 절벽이다.
절벽을 돌자, 비스듬히 짓쳐드는 햇빛 사이로 산호초가 등장한다. 나는 잡고 있던 메이린의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산호초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곧 내 손을 꽉 쥐어오는 힘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니 메이린은 산호 절벽과 그 사이를 오가는 열대어들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그 기분 알지,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깊이에 적응된 메이린은 조금씩 스스로 몸을 움직여 근처로 다가온 물고기들을 유심히 보기도 했다. 나는 다시 그녀를 데리고 내가 좋아하는 ‘열대어 산호마을’로 데려갔다.
산호마을에 도착한 메이린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가 짠물을 왕창 먹었다. 메이린이 황급히 물 위로 올라가고, 나 역시도 수면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갑자기 물을 먹은 그녀가 크게 놀랐을 줄 알았는데, 짠물을 뱉다가 날 보는 눈빛이 그야말로 번쩍번쩍하다.
“괜찮아요?”
“멋져요! 정말, 아, 퉷, 아무튼 말로 다 표현을 못하겠어!”
“거 봐요. 무서운 것도 다 가시죠?”
“아직은 무서워요. 하지만 재인이 손을 잡아줘서 잘 버티고 있는 거예요.”
슬슬 손을 놓고 원하던 곳으로 가려던 나는 하는 수 없이 조금 더 메이린을 데리고 다녔다. 그렇게 1시간쯤 산호마을 인근을 헤엄치다가 잠시 쉬려고 해변으로 돌아갔다.
뭍으로 나온 메이린은 거사에 성공한 사람처럼 의기양양한 얼굴로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처음 말을 걸었던 서양인 커플에게 맡겨둔 배낭을 찾아왔다. 배낭 안에서 카메라를 꺼내 든 메이린은 꼭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얼떨결에 서양인 커플까지 끼어 한참 포즈를 취하고 난 후에야, 메이린은 우릴 놔주었다.
메이린이 먼저 숙소로 돌아가고 나서야 혼자 바다를 즐길 여유가 생겼다. 조금만 누워있다 들어갈 생각으로 덱 체어에 뻗어있는데, 옆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던 이집트인 노인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가 말했다.
“구명조끼를 벗어요.”
“……네?”
뜬금없이 무슨 말일까? 노인이 말을 잇는다.
“구명조끼는 벗어도 될 거요. 며칠 째 그쪽이 바다에 드나드는 걸 우연히 봤소. 가만 보니 구명조끼를 안 입어도 될 것 같던데 매번 입고 들어가더구먼. 거추장스럽지 않소? 내일부터는 벗고 한번 시도해봐요.”
“……그러다 물에 빠지면요?”
나를 바던 노인이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며 무심히 대꾸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를 믿는 것뿐이오.”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툭툭 옷을 털며 일어나더니 자리를 떴다. 나는 멀어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다가 옆에 놔두었던 스노클링 장비를 들고 일어섰다. 저런 말까지 들었는데 구명조끼를 입은 채 다시 물로 들어가기는 어쩐지 자존심이 상한다.
스스로를 믿는 것뿐이오.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노인의 마지막 말이 뇌리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