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조각들 끌어모으기
2월부터 매일 감사일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단한 걸 써야 할 것 만 같은 생각에 감사한 일 세 가지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감사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날도 물론 있었다.
그런 날들은 아침의 시작부터 다운되어 있어 하루가 회색빛으로 지나갔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아빠께서 (완전 초기이긴 하지만) 암 판정을 받고 항암을 시작하셨다. 평생을 환자들을 위해 자기 자신은 돌보지 못하셨는데 결국 누적되어 탈이 나셨나 보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거의 유일하게 상당히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긍정적으로 사고하시기보다는 좋게 말하면 현실적이고 냉정히 말하면 부정적이신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일찍 알게 되어
다행이지 뭐, 이 또한 현실이니 받아들여야지, 힘내련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의사로서 최적의 성격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허황된 희망을 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맞는 대처법을 제안하시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아빠는 인기 있는 의사라 늘 환자가 제일 많으시다!) 그리고 질환이 본인의 일이 됐을 때도 자책하거나 다른 데서 원인을 찾기보다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의연하게 받아들이시고 주치의의 말에 따르신다. 본인이 환자들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늘 얘기하신 것처럼 의사 말을 잘 듣고 계신다.
이렇다 보니 새삼스레 너무 당연해서 고마워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일들이 사실은 제일 감사해야 하는 일들임을 깨달았다. 오늘 아침 예쁜 햇살로 하루를 시작해서 감사합니다, 저를 믿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따뜻한 라테 한잔에 감사합니다...
사소한 것들까지 전부 감사일기를 쓰다 보니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내 일상에도 이렇게나 감사할 일들이 많구나 새삼 깨닫게 되고 역시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각하게 되니 매 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본인의 병은 병대로 관리하며 오늘도 아빠는 진료를 보신다.
아빠를 보며 나도 힘을 내야지. 아빠보다 30년은 더 젊은 내가 못할 일은 없다.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주위에서 빛의 조각을 끌어 모아, 나의 색으로 물들이자.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