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 후기

고통을 인간의 경험으로 이해한다는 것

by 얼그레이

영화를 좋아한다면, 사람을 이해하는 걸 좋아하면 이 영화를 꼭 보세요!


그치만 스포를 보지 마세요... 아무것도 모르고 봐야 함.


감독의 의도가 아무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는 걸 추천한다고 합니다 !




영화가 끝나고 너무너무 좋았다-라는 말이 나왔다.


몇 주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딱 시험 끝나고 아빠를 모임 장소에 데려다주고 뭔가 나 혼자 time을 즐기고 싶었는데 ... 딱 영화가 그 시간에 하는 곳이 있었다. 독립영화?라 그런지 상영관 수도 적고, 시간대도 많지 않아서 저녁에 하는 곳을 찾기 쉽지가 않았는데 동네에서 좀 멀리 가서 즐기고 왔다.




연출과 스토리 모두 너무 마음에 들었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생각을 많이 해본 주제인데, 그걸 너무 무겁지 않게 주인이라는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풀어내서 더 좋았다. 저번에 본 전시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에서도 트라우마에 대해 다룬 작품에서 많이 생각을 하던 부분이 있는데 그 작품도 생각이 났다.



타인의 고통을 ‘사건’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경험’으로 이해한다는 것.


우리 사회는 트라우마에 대해서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는다. 그런데 트라우마 그 자체도 자체지만 그걸로 인한 낙인과 그에 대한 해석이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한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니, 너는 트라우마가 있다, 이런 성격도 그 사건 때문 아니야?" 등등 주인이가 학교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말들.


어떤 사건의 피해자보다는 그냥 나 자신으로 봐주었으면 하는 건데. 그래서 주인이가 말하기를 더 주저했을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사건의 피해자라고 말하면 나는 그냥 나인데 주변 사람들은 그 한 조각을 극대화해서 그게 마치 나의 전부처럼 생각하고, 뭔가 큰 피해로 고통받는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할 테니까. 그치만 그건 하나의 사고 같은 거지, 주인을 구성하는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주인이가 노래방에서 여느 고등학생과 다름없이 춤추는 장면이 다가왔다.


누군가의 상처에 대해 타인이 감히 그것에 대해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


괜찮은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리고 괜찮다고 믿지만 때로는 그 traumatic한 경험이 가끔씩 it hits you hard. 세차 장면이 연출이 너무 좋기도 했는데 그 장면에서 나도 울었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때로는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을까? 화가 나고 억울한 마음이 공존하는 주인이. 그걸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쏟아내는 그 모습과 그 묘사를 세차장에서.


나는 밖에 밤에 비가 올 때 차 안에 있는 걸 좋아한다. 오늘 영화 보러 가는 길에도 비가 많이 왔는데 내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뭔가 밖에는 비바람이 센데 차라는 강한 보호막이 나를 보호해주는 거 같아서? 아늑하기도 하고.


차 안은 참 묘한 공간이다. 단둘이 차 안에 있으면 더 가까운 얘기를 할 수 있는 느낌? 그래서 주인이가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자신의 진짜 감정을 그렇게 쏟아내지 않았을까. 세차라는 게 정화인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감독이 의도한 significance가 있을 거 같은데... 정신과에서 방어기제 배운 것 중에 acting out이 생각나는데 마음 속의 갈등이 그렇게 터져나와야 진정한 카타르시스인가 싶기도 하고. 잘은 모르겠지만 여러가지 의미가 떠오른다. 이런 다양한 해석과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하는 게 영화의 매력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런 잘 만든 thought provoking 영화들이 좋다. 영화관에 가서 볼 가치가 있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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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사랑이라는 주제도 인상 깊었다.




주인이의 장래희망은 사랑이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주인이와 얘기를 나누는 걸 보면서 나도 학교 선생님 했으면 직업 만족도가 높았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일.


가족들의 모습도 하나하나 마음에 와닿았다. 저마다 상처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고 저마다의 속사정이 있다. 주인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산 속으로 들어가버린 아빠. 남몰래 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엄마. 편지들을 누나가 받지 못하게 몰래 숨기는 남동생 해인이.


그렇지만 절망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회복하고 연대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해인이의 마술쇼에 아무도 못 왔지만, 집에서 특별 마술쇼를 다시 준비하고. 엄마는 텀블러에 담던 술을 버리고, 아빠는 주인이에게 문자를 보내고. 동생이 숨긴 편지들을 발견했을 때 못본 척 다시 매트리스 사이로 쑤셔넣고 동생에게 헤드락을 거는 주인이.


봉사활동 그룹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끼리 울고 웃으며 연대한다. 물론 이 사람들이 상담을 받으며 각자의 트라우마를 해결하면 정말 이상적으로 좋겠지만... 각자 나름의 coping mechanism이 있는 것이다. 종교든, 봉사활동이든, support group이든, 운동이든. 뭐가 맞고 틀리다기보다는 결국 자기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술/약/담배처럼 몸에 해로운 게 아니라면 저마다의 회복 방식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진짜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도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물론 그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되지는 않지만, 어디 몸에 상처가 났다고 우리 삶이 그것만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는 것처럼.




동생이 보여준 마술


관객은 각자 자신의 고민이나 걱정을 적어낸다. 투명한 빈 통에 저마다의 크고작은 걱정거리를 적어낸 종이들이 수북히 쌓인다. 해인이는 그 종이들이 사라지는 마술을 했고 관객은 빈 통을 보며 박수친다. 하지만 그 종이가 가득 담긴 통은 새로운 빈 통에 의해 replace되었을 뿐이고. 해인이는 걱정이 담긴 종이들이 바닥에 아직도 존재함을 알고있다. 너무 완벽한 연출에 감탄했다.


해인이는 한 9살 쯤 된 장난꾸러기 꼬마처럼 보이지만 많은 걸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치토스 과자를 야금야금 먹으먼서 어떤 중요해보이는듯한 우편을 읽는다. 그리고 누나가 못 읽게 꽁꽁 숨긴다. 편지를 썼다가 찢어서 또 마술로 없애버린다.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어떤 일을 그려내는 게 참 흥미로운 예술적 장치인 것 같다. 나는 해인이라는 인물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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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 목에 멍


이건 조금 헷갈렸다. 그 학생회장의 여동생 목에 자꾸 멍이 들었는데, 그 오빠는 CCTV를 보여달라고 주인이 엄마,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항의한다. 그런데 사실 그 목에 든 멍은 아마 주인이가 아이에게 "이렇게 해도 안아파?" 물어보다가 생긴 멍이었던 것 같다. 그 어린여자애가 자꾸 안 아프다고 하고 괜찮다고 하니까 주인이가 아플 땐 아프다고 얘기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그 여자애한테 그랬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 어린 여자애가 꾀병을 부리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뭔가 아프다고 하면 어른들이 자기에게 그나마 관심을 가져주니까 일부러 자기가 의도해서 다치거나 그런 건 아닐까 의심도 했다. 근데 이건 아닌거 같고


얘가 계속 안 아프다고 괜찮다고 하는데 사실 괜찮지 않은 걸 괜찮지 않다고 표현하는 법을 주인이가 알려주는 거 아니었을까? 어쩌면 아플 때 아프다고 주인이가 얘기하지 못하고 참아서 그랬던 걸 수도 있고,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이게 empowerment 아닐까.


그런데 주인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과하게 배려하듯이 대할 때 '나 이제 괜찮아'라고 한다.


주인이가 받는 쪽지에서도 어떤 게 진짜 너인지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회복하는 사람들은 괜찮기도 하고 때로는 안 괜찮기도 하다. 사람의 기분이 좋을 때가 있고 안 좋을 때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닌 것처럼.





저번에 정신과 배울 때 알코올 중독, 특히 여성에서는 알코올 중독 그 자체 문제보다도 그 기저에 술을 먹는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그걸 다뤄야 한다고 배웠다.


의학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이번에 재활 시험 끝나고 동기언니랑 전공의 주 80시간이 사실 7로 나누면 하루에 11시간인 얘기를 듣고 충격받은 대화를 했는데... 나는 그걸 한번도 7로 나눠볼 생각을 안해봤다...그냥 막연한 80시간이라고 생각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사의 길을 걷고싶은 이유가 명확해야 공부를 지속할 수 있는 거 같다.




사실 예전에는 내가 아이들을 좋아해서 "소아"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 아니면 소아과? 예전에는 정신과를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연극 <에쿠우스>를 예전에 보러갔었는데 그때 내가 과연 이런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소아"정신과"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몸과 장기가 돌아가는 것보다도 그냥 나는 사람에 대해 흥미가 있고 각 사람을 이해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다. 그래서 사실 예전에 전공을 human development 심리학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못 바꾸고 여기까지 왔지만... (?) 이렇게까지 온 데도 다 어떤 뜻이 있겠지 싶다.


사람들의 상처, 연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더 정신과 의사가 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적으로 잘 cope해서 해결이 되는 문제도 있지만 그게 잘 안 될 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할 때.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결국 의사를 찾게 될텐데 그럴 때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돕는 의사가 되고싶다.


neuroplasiticity가 중요하다고 이번에 재활의학 에서 배웠는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게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증거라서 그렇다고 한다. 여기에 또 살짝 감동받음...ㅠㅠ





사람은 약해서 쉽게 상처받기도 하지만 다쳐도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라는 말이 있듯이 주인이가 그걸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라 더 마음이 갔다.


책 <가치있는 삶>에서 트라우마는 그 사람 내면의 가장 깊은 belief를 만든다고 한다

and that’s what makes each of us unique individuals. 그래서 우리 각자가 우리 세계의 주인이 되는 이야기.


주인이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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