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서 괜찮았던
각종 업무 인수인계와 회사 시스템을 익히다 보니 정신없이 3주가 흘렀다.
내가 서포트해야 하는 프로젝트는 대형 G브랜드와 소형 S, F브랜드, 이렇게 세 가지였다.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 회사가 각 브랜드에 어떤 마케팅 방안을 제안했는지,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그리고 현재는 어떤 단계에 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3주 동안 제안서, 기획서, 보고서를 읽고 또 읽으며 히스토리 파악에 집중했다.
광고 회사에서는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이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광고주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이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복병이 하나 있었는데, F브랜드는 외국계 기업이어서 메일이 전부 영문으로 되어 있었고, 그동안 나눴던 대화들을 전부 번역해야 했다. 광고주의 성향을 이해하긴커녕, 기본적인 소통조차 쉽지 않았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느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겠구나.
To do list
각 브랜드 히스토리 파악하기
광고 용어 공부하기(CPC, CPA 등등..)
GA 툴 공부하기
리포트 작성법 익히기
공폴(공유 폴더) 위치 파악하기
SB(스토리보드) 작성법 익히기
광고주 메일 내역 확인하기
영어 공부하기
...
하루가 지날 때마다 내 To do list는 차곡차곡 채워져 갔다.
광고 용어 하나 아는 것 없이 시작한 회사 생활은 정말 쉽지 않았다. 종일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귀를 스쳐 지나가면서 1분 1초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매니저님 이거 내일 COB까지 해주시고..”
“리포트 수치 보시면 여기 CPC가 잘못된..”
“먼슬리 리포트에 PV, UV 잘 적어주셔야.."
이게 무슨 말인지 그땐 정말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업무 지시를 내릴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되물었고,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져 속으로는 백 번도 넘게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험이 없으면 모르는 게 당연한 건데 말이다.
“아직 처음이라 잘 모를 수 있어요.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요."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지는 업무에 정신이 나가려고 할 때쯤 이 이 한마디가 자꾸만 나를 붙잡았다.
어느새 내 자리는 노랗게 물들어 갔다.
모르면 무조건 메모, 알아도 메모, 그냥 메모.
우리 팀은 팀장1, 과장2, 대리2, 주임2, 매니저2 이렇게 총 9명이다. 다른 팀에 비해 인원이 많아 반으로 나눠서 A셀, B셀로 구분된다. 나는 A셀에 소속되어 업무를 서포트했다.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광고 용어를 하나하나 알려주시고, 신입사원도 진심으로 존중해 주시던 조 과장님, 언니처럼 친근하게 다가와 주시고 항상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시던 내 첫 사수 박 대리님, 틈틈이 비즈니스의 기본기를 알려주시고 항상 같이 밥 먹자고 해주시던 우리 팀 분위기 메이커 김 주임님.
작지만 괜찮은 회사에 잘 들어온 것 같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바로 이분들이었다. A셀 사람들과 함께하면 밥 먹는 시간이 즐겁고 외근 나가는 날이 설렜다.
직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인복이 있는 편도 아니었고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회사와 팀에 대한 좋은 감정이 생기고 더 다양한 업무를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후로도 인수인계는 계속되었고, 나에게도 자잘한 업무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