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나 정치인들이 법을 마구잡이로 만드는 일이 많습니다. 크게 두 세 가지 사례만 보겠습니다.
지난 2022년, 국토교통부는 자동차보험제도를 ‘개선’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가해자들의 사고 책임을 대폭 강화한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이 그것입니다. 마약, 약물, 음주, 무면허, 뺑소니 사고 시 운전자가 의무보험 한도 내에서 피해자에게 지급된 보험금 전액을 '사고부담금'으로 내도록 했습니다. “사고 시 피해 규모도 크기 때문에 운전자의 경제적 책임을 강화해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국토교통부 주장이었지만, 이 제도는 몇 가지 점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첫째. 보험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렸습니다. 보험제도는 말 그대로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상해에 대비하고, 재산 및 배상책임 손해를 담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개인이 대부분 부담해야 한다면 보험제도의 존재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렇게 별 소용도 없는 의무보험제도를 운전자에게 강제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행정폭력입니다.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이 안 되는 보험을 도대체 왜 가입해야 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습니다.
둘째. 사실상의 연좌제(緣坐制)가 됩니다. 사고에 따른 책임은 기본적으로 본인으로 제한돼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예를 들어 사고를 낸 운전자가 배우자와 자식을 둔 가장(家長)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가장이 사고를 내서 수억 원의 무지막지한 보상비를 부담해야 할 경우, 보통의 평범한 서민 가정은 대부분 파산합니다. 운전자의 경제적 책임을 강화해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결과가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의 파산과 가족해체로 이어진다면 곤란합니다.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은 결과적으로 사실상 ‘가족해체 조장법’이자 연좌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비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여 그 처자식까지 죽이는 법은 없습니다. 야만입니다.
셋째. 무전파산(無錢破産), 유전무방(有錢無妨)이 됩니다. 만약 보험사의 구상권 청구로 5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사고유발 운전자 가족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재산은 서울에 보증금 5억짜리 전셋집뿐입니다. 그럼 그 집의 전세보증금을 빼지 않는 한 사고부담금을 낼 방법은 없습니다. 곧바로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됩니다. 가정이 망하는 것입니다. 전셋집도 없는 보통의 서민 가정은 어떻게 될까요. 반면 재산이 수백억, 수천억인 운전자가 있다고 칩시다. 자신의 가족에게 경제적 고통이 생기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돈이 없는 가해 운전자의 가족만 자신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인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과거 정부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인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를 낸 직접 당사자도 아닌 회사의 영업행위 자체를 정지시키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회사의 대표가 감방 가고 회사가 영업정지를 당하면 일을 할 수 없어 결국 직원 해고로 이어집니다. 직원이 해고당하면 그 가족이 파산합니다. 사고를 줄이고 기업주를 처벌하려던 것이 죄 없는 종사자와 그 가족을 처벌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형벌권은 절대 함부로 남용하면 안 됩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만큼 가해자는 물론 그 가족도 당해보라는 것은 상식을 가진 민주국가에선 가당치 않습니다.
과거 정부가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인 부동산관련 세금제도, 중대재해처벌법, ‘민식이법’, ‘아청법’ 등 대부분의 정책, 입법행위가 이렇게 처벌을 강화하고, 벌과금을 높이는 식이었습니다. 인권 운운하며 살인자의 인권까지 생각해 사형집행마저 반대하는 진영의 행위라고 하기엔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정부건 국회건 이렇게 마구잡이식으로 형벌을 앞세우는 것은 근본을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국토부의 주장과 논리대로라면 사형제를 통해 흉악범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던가요? 처벌로 세상과 사람의 행위가 다스려진다는 생각은 단세포적입니다. 근본을 치유하지 않고 과중한 형벌만 앞세운다면 또 다른 병폐만 낳을 뿐입니다. 세상은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의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