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1학년 때, 두 살 아래 동생이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온 가족이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무력감에 빠져 있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반듯한 댓돌 위에 종이배 같은 동생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반가움보다는 무서움이 더 컸던 나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친구집으로 도망갔습니다. 동생 신발을 몰래 가져가 신던 이종사촌 동생이 아무도 없던 우리 집에 와서 잠을 잤던 모양입니다. 그때 자그맣게 놓여 있던 동생의 신발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지나 아직도 내 가슴 속에 동동 떠다니고 있습니다.
음주로 인해 녹초가 된 몸으로 귀가한 날이었습니다. 죽은 동생의 신발처럼 작은 종이배 같은 아내의 신발이 새삼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냥 ‘귀엽네.’ 하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습니다. 새벽에 잠을 깨 이른 출근을 하며 식구들 신발을 새삼 살펴봅니다. 작고 귀여운 아내의 신발이 ‘항공모함’ 같은 아이들 신발 사이에 초라하게 놓여 있습니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하나 둘 신발들도 늘어났습니다. 네모난 색종이로 만든 종이배 같이 작고 앙증맞은 아이들 신발은 항상 어미와 아비의 신발 사이에 요리조리 누워 포근히 안겨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새 아이들 신발 크기는 나보다도 훨씬 커져 있습니다. 세월은 종이배를 항공모함으로 바꾸고, 크고 우람하던 나의 배와, 아내의 작지만 야무지던 배는 어느새 초라한 모습으로 낡아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더 흐른 뒤 아내와 나의 신발은 바퀴로 바뀔지도 모릅니다. 휠체어라 불리는 그 신발은 더 이상 신거나 벗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쾌속정처럼 달아나는 시간의 속도 앞에 현관의 풍경들도 그렇게 무심하게 변해갑니다. 어둠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오늘은 아내에게 멋진 구두를 사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