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 두 가지 큰일은 결혼과 장례입니다. 한마을에 사는 씨족 간에 결혼을 축하하고 사망을 애도하는 경사(慶事)와 조사(弔事)는 씨족공동체, 마을공동체의 오래된 문화입니다. 여기에 약간의 축의금(祝儀金)과 조의금(弔意金)을 주고받습니다. 공동체의 상호부조(相互扶助) 의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군대서 휴가 나온 친구나 친한 직장동료 밥값도 각자 따로 계산하는 세상입니다. 경조사 문화도 갈수록 많이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경조사(慶弔事)와 관련해 몰염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본(本)보다, 돈을 주고받는 말(末)을 앞세우는 이들이 그들입니다. 잘나가는 세도가(勢道家)에서는 경조사에 수많은 사람을 불러모아 가세(家勢)나 권력을 자랑하는 행사로 여깁니다. 이권을 바라며 눈도장을 찍으러 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산 사람, 죽은 사람을 기화로 허세를 부리고, 돈을 모으고, 사람을 모으고, 패거리를 모읍니다. 어디 그들뿐인가요. 범부(凡夫)들도 허세 부리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허례에 불과한 과도한 화환전시 따위도 볼썽사납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염치를 알던 시절에는, 부득이하여 못 가게 되면 아는 사람 편에 알음알음 축의금, 조의금을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가 유행한 이후부터는 ‘마음 전하는 곳’이란 이름을 가진 계좌번호만 등장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떤 젊은이의 결혼과, 어떤 노인의 죽음에 그냥 계좌로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까요. 참으로 무지막지한 풍경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각오로, 자기가 살아오면서 지출한 경조사비만큼 회수하려는 마음이야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봐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나 자식의 혼사, 부모의 사망을 팔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나, 별로 연락도 안 하고 지내는 사람들에게까지 과도하게 청첩장을 돌리고 부고를 알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수치심이라곤 없는 행태입니다.
은퇴를 앞둔 어떤 나이 지긋한 이는 4년 남짓 국회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자식 혼사를 급히 치렀습니다. 상임위 소관 산하기관에 일일이 청첩장 뿌리느라, 해당 의원실 직원이 총동원됐었다고 합니다. 퇴직을 몇 개월 앞두고선 다시 마지막 한몫을 챙기기 위해 둘째를 급하게 결혼시켰습니다. 다시 온 산하기관에 청첩장을 뿌려 결혼식장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고 합니다. 듣기만 해도 그 파렴치함에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어떤 정치인, 관료, 기관단체장들은 나라에서 나오는 돈(판공비 등)으로 수많은 곳에 축의금, 조의금을 뿌린 후 자기 자식, 부모 경조사에 다시 돌려받습니다. 경조사비 내는 사람은 세금 내는 국민인데 그 돈을 자신이 사실상 착복하는 셈입니다. 이건 그냥 세금 도둑질이 아닌가요. 위 두 유형은 사실상 범죄행위로 봐도 무방하겠습나다.
이렇게 파렴치한 사람들은 사방에 널렸습니다. 어떤 경찰 고위공무원은 국회에 있는 잘 아는 보좌진을 통해 수많은 의원실로 자기 자식 혼사를 알리는 팩스를 보냈었습니다. 그 본인도 문제지만, 자청해서 그 팩스를 대신 보냈다는 보좌진이 평소에 어떤 자세로 업무에 임하는지를 가히 짐작하게 하는, 참으로 겁 없고 황당한 행태입니다. 어디 공직자뿐인가요. 언론인도 못지않습니다. 자신의 결혼, 부모상, 처부모상, 자기 자식 돌잔치 등등에 마구잡이로 문자나 청첩장을 돌립니다. 친한 사이도 아닌데도 그냥 보냅니다. 아예 의원 앞으로 직접 보냅니다. 받아든 의원은 그걸 무시하자니 불편하고 께름칙합니다. 이런 짓을 사실상 ‘강요에 의한 갈취(喝取)행위’라고 한다면 지나친가요.
얼마 전에는 수년간 얼굴도 못 본 어떤 기자가 자기 장모상이라며 문자로 보내왔습니다. 조용히 지웠습니다. 잊지 말라는 듯 하루 뒤 또 보내옵니다. 불쾌했습니다. 얼굴 딱 한 번 보고 수년간 연락 없던 사람, 아예 기억에 없는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경조사를 알려옵니다. ‘마음 전하실 곳’이란 이름을 단 계좌번호와 함께. 살다 보면 참 별의별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조사 소식을 문자와 카톡 따위의 방식으로 보내옵니다. 그들은 무슨 마음으로 스스럼없이 그런 행위를 할까 한 번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물론 귀감(龜鑑)이 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이는 딸의 혼사를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족끼리 몰래 치른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습니다. 또 어떤 이는 지인들은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의원에게도 알리지 않고 부모상을 몰래 치뤘습니다. 밥 한 그릇도 공짜로 얻어먹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경사건 조사건 가족과 친지들끼리 조용히 치르는 것이 좋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마구 알리고, 별로 친하지도 않거니와 자신은 상대의 경조사를 챙기지도 않았으면서도 자신의 경조사만 마구잡이식으로 알리는 행위는 지나칩니다. 경조사 문화에 대해서도 개인의 염치와 양심이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만 합니다. ‘마음 전할 곳’이라면, 그야말로 축하하고 애도하는 마음만 받아야지요. 그 ‘마음’ 마저도, 모르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요구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게 예의와 염치를 아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