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변할수록 더 똑같은 것이다’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습니다. 정치적 논의의 경우 최대한 단순하게 압축해서 실현가능한 과제에만 집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수시로 선거제도 개편을 이야기했지만, 여야 모두 ‘다가오는 선거’만 생각했지, ‘다가오는 세대’를 먼저 생각했는지 의문입니다.
제도와 관련한 일방의 유·불리를 떠나 근본적인 문제를 좀 지적하고자 합니다.
먼저, 절차상의 문제입니다. 물론 결정의 주체는 국회이지만, 한마디로 심판이 아닌 선수끼리만 룰을 정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정치개혁특위에서 제안된 내용에 대해 국민은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국회만 북 치고 장구 치는 셈입니다. 공론조사를 실시한다고 하나, 앞뒤가 잘못된 것입니다.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한 적은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방탄 국회에 몰두하는 바람에 시기(2023년4월10일)를 놓친 경우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제도를 계속 논의해야겠지만, 지금 하려는 선거제도 개편이 과연 국민이 원하는 ‘정치개혁’에 얼마나 부응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정치개혁은 뒷전이고, 각 정당의 의석수 유불리만 계산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국민적 비난은 여전합니다. 선거제도 개편의 당위성과 정당성에 대한 사전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제도개선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의원정수나 비례대표 논의는, 장단점에 대한 정밀한 사전분석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의원정수를 늘리거나 줄이면, 과연 우리 정치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사전분석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사전분석과 평가는 부족합니다. 나아가 의원정수나 비례대표 확대에 대한 거센 국민적 반감에 대한 대응도 허술합니다. 단순히 ‘국민이 반대하니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논리적, 철학적 빈곤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의원정수와 비례대표가 확대되면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국민에게 알리려는 노력 자체가 부실합니다. 게다가 현재 운용되는 비례대표제도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역시 개혁의 외피를 둘렀으나, 실제로는 위성정당 난립과 소수당 몰락만 초래했습니다. 어떤 안으로 결정되더라도 정치개혁과는 무관하다고 보는 것이 국민의 차가운 시선입니다. 승자독식 문제 역시 단순한 게 아닙니다. 유권자의 투표가 사표(死票)가 되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으나, 이것은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입니다. 현재 대통령제 역시 단 한표라도 더 얻으면 대부분의 인사권 독점 등 승자독식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승자독식, 사표 문제, 표의 등가성 문제 등을 제기하려면, 대통령제 폐지 및 의원내각제 도입 문제와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국회의원 선거만 예를 드는 것은, 제도 개편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 정치에서 시급한 과제는 선거제도 개편이 아니라, 강력한 정치개혁이라고 봐야 마땅합니다. 지금 우리 국회는 선거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와 관행을 깡그리 무시하는 정치인들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공천제도를 개혁할 <정당법>, 후원금 모금제도와 관련된 <정치자금법>,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되, 정당 운영의 자율성을 강화할 <공직선거법>, 국회의원 수당제도를 혁신할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한 개혁이 시급합니다. 이와 함께,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다양한 특권을 과감하게 폐지 또는 축소하는 방안을 먼저 수립하는 것이 민심에 부합하는 국회의 의무일 것입니다.
어떤 제도이건 장단점이 있습니다. 현재는 시간에 쫓겨 땜질식 처방을 하기보다는, 여야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잡한 계산이나 이해관계를 앞세우기보다는, 꼭 해야 할 부분에만 집중해서 선택적으로 해결하려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하겠습니다.
해마다 선거는 계속되고, 해마다 소득없는 다툼만 주고받는 정치는 더이상 미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