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만을 놓고 그 사람 전체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만큼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얼굴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사람을 자세히 살피려고 노력하지만 나 역시 그런 부류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언론이나 방송에 등장하는 사건 속 인물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편인데, 하나같이 해당 뉴스와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주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그렇게 '절묘한 일치‘라며 탄성을 지르는 데에는, 사건이 주는 선입견이 주된 원인일 것입니다. 즉 사건을 먼저 보고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사건의 이미지가 얼굴위에 겹쳐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생긴 대로 논다'거나 ‘생긴 것과는 다르다 논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일까요 아니면 노는 대로 생겨가는 것일까요? 사람의 관상을 보는 사람들은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간다.”고 주장합니다. 운명론적인 사고입니다. 특히 많은 기업주들은 직원을 채용할 때면 일부러 관상을 보는 사람을 불러 면접관의 자리에 앉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본 히다찌(Hitachi, Ltd.) 계열사 ‘닛세이 산업’은 관상학 데이터베이스까지 만들어 놓고 사원채용과 부서 배치에 적극 이용했다고 하는데, 그 회사가 망하지 않고 잘 나가는 걸 보면 맞추는 확률이 꽤나 높은 모양입니다. 정치인들 중에도 상당수가 보좌진을 뽑을 때나 중요한 사람과 인연을 맺기 전에 관상을 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의 얼굴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얼굴이 변하고 몸이 변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주역(周易)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얼굴 인상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알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성질을 따라서 얼굴 생김새가 형성되는 까닭”이라고 주장합니다. 성질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얼굴은 성질을 닮아가는 것이니 자신의 마음을 쉼 없이 가꾸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꼴값하네.”란 말도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꼴값 한다’ 말은 일반적으로 욕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가만히 그 말을 뜯어보면 '꼴'이란 건 생김새나 모양, 얼굴을 뜻하는 말이고 '값'이라는 건 말 그대로 그 값어치를 뜻하는 말이니, 즉 '생긴 값', '얼굴 값'을 제대로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 '좋은‘ 말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말을 나누거나, 사귀어 보면 “생긴 거랑 틀리게 논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링컨이 말한 것처럼 40세까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진 사람은 이처럼 본래의 용모 이외의 분위기나 인품이 드러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래전 외모가 꼭 ‘조폭’같은(깍두기 머리에 어깨가 떠억 벌어지고 눈이 부리부리한) 사람과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데, 첨엔 반드시 ‘그쪽’ 계통과 관련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누고 자주 만나다 보니 이사람 만큼 순박한 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자신 스스로도 “외모 때문에 상당히 오해를 산다.”고 하는데, 사실 그의 진면목과 외모는 아무리 연관성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얼굴대로 사는 것인지, 아니면 얼굴을 만들어 가며 사는 것인지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얼굴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데, 순전히 얼굴 생긴 대로 살아가야 한다면 인간으로서 너무도 억울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관상을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얼굴에 칼을 대는 즐거움으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어쨌건 순전히 타고난 용모 때문에 득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의 모습이 늘 불쾌한 건 사실이지만 얼굴 생긴 대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운명은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운명 개척론자들의 주장처럼, ‘자신의 얼굴은 자기가 만들어 간다.’는 입장에 적극 찬성합니다. 실제로 아무리 미남 미녀라도 항상 찡그린 표정을 짓는 사람은 마음도 어둡고 비관적인 경우를 많이 봐왔습니다. 실제로, 슬플 때 웃는 표정을 지으면 슬픔이 경감되고, 쾌활하게 웃으면 즐거운 기분이 배가 됩니다. 특히 웃음은 마음만이 아니라 신체적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낙관적인 기분과 활발한 신진대사를 유발하는 웃음이 자연치유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파스칼(Blaise Pascal)이 “마음을 평화롭게 가져라. 그러면 그대의 표정도 평화롭고 자애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다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상호비방과 폭로를 일삼는 정치인들, 그리고 부정과 비리혐의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본래 그런 얼굴을 지닌 채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껏 살아온 삶이 그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꼴도 보기 싫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혐오의 얼굴로만 등장하는 우리들의 타락한 특권층의 모습에서, 일그러진 그들의 삶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도 그렇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합니다. 물론 그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진솔한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긴 ‘느낌이 좋은 얼굴’이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얼굴이요, 이런 얼굴이야말로 대개의 소시민들이 우리 특권층의 얼굴에서 느끼고 싶은 얼굴일 것입니다. 그런 얼굴을 기대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런 기다림이라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