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by 권태윤

아내는 부지런하고 걸음이 빠릅니다.

집안에서도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이리저리 걸어다닙니다.

산도 얼마나 잘 타는지 나보다 등산하는 속도가 배 이상 빠릅니다.

한 10년 전부터는 산에 같이 안 갑니다.

마누라 따라가다간 내가 먼저 지쳐 쓰러지기 때문입니다.

산을 가는 그녀의 목적은 운동 그리고 우울감 해소입니다.

나는 혼자 생각하기 위해 산에 갑니다. 서로 너무 다릅니다.


지난 주말엔 내가 먼저 산에 갔습니다.

하산길에 반대편에서 열심히 걸어오고 있는 아내를 봤습니다.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본체만체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순간 서운해서 뭔가 말을 하려다 말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기분이 나빴습니다.

언짢은 기분으로 집에 오니 웬걸 새우가 들어간 맛있는 호박전을 굽고 있습니다.


되짚어 생각해봐도 산에서 본 그 여자가 꼭 아내가 맞단 생각이 듭니다.

특유의 표정, 햇볕을 가리는 곤색 모자, 눈에 익은 바지, 등산화..

하다 못해 뒤에 둘러맨 5천원짜리인가 만원짜리 검정색 가방과 거기에 붙은 장식도 똑 같았는데...


아들에게 캔맥주를 사 오라고 해서 호박전과 맛있게 먹으며 곰곰 생각하니 참으로 요상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눈까지 머는 모양입니다.

이러다 더 나이 들면 남의 집을 내 집으로 알고 들어갔다가 철창에 갇히는 신세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어제가 입추였지만, 날씨는 여전히 열기를 뿜고 있습니다.

사람이나 계절이나 다들 제정신을 놓고 사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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