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값에 대한 단상

by 권태윤

언젠가 길을 걷다 전신주에 "예쁜이를 찾아 달라"는 전단지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또 아이를 잃어버렸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에 들여다 본 거기에는 눈이 온통 털로 가려진 강아지 한 마리가 혀를 쑥 내밀고 있었습니다. 흑백으로 인쇄된 사진이었지만 털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주인으로부터 꽤나 귀한 대접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애타게 찾습니다. 우리 예쁜이는 저희 가족과 마찬가지입니다. 찾아주시는 분께는 5백만 원을 후사 하겠습니다"란 글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입체로 쓰여 있었습니다.


이 전단지를 보니 문득 오래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님 생각이 났습니다. 유괴범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어느 땐가 외할머닌 누군가로부터 "늙고 병든 노인네들 길거리에 나다니면 유괴범들이 잡아다가 외딴 섬으로 끌고 가 기름을 짜버린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후로 외할머닌 승합차만 보면 겁에 질려 길섶으로 몸을 숨겼고, 낯선 사람이 마을에 나타나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문을 나서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개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보면서 왜 갑자가 당시 두려움에 떨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자식들로부터 버려지고,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공격당하는 우리네 노인들의 모습과, 개를 잃었다고 애타하는 주인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짐승을 잃어버려도 저리 애타게 찾는데, 정작 자신들의 부모를 무시하고 홀대하며 내다버리는 사람들은 또 어떤 얼굴을 한 사람들인지 궁금합니다.


잃어버린 노부모를 찾기는커녕 일부러 낯선 곳에다 버려두고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람을 짐승보다 귀하게 생각하긴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버림을 받아도, 자식은 영원한 사랑의 존재라며 차마 어디 가서 "자식에게 버림 받았소"라고 호소하지 못하고 "제발 같이 살자고 자식 놈들이 매달리는데 내가 불편해서 나왔다"고 변명하거나, 자신을 버린 자식에게 차마 돌아갈 생각을 못하고 그 깊은 상처를 가슴에 품고 치매에 걸린 노인행세를 하기도 합니다.


애완동물도 사랑하고 아끼다 보면 그만큼 살가운 정이 들것이고 잃어버리면 상실감도 그만큼 클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낳아준 부모를 잃어버려도 찾을 생각을 않는 사람, 게다가 일부러 버리기까지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지 답답합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마는 정녕 짐승을 아끼는 딱 그만큼 만이라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들은 잃어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장면이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내가 과연 존엄성을 가진 인간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도시에서 생활하다보면. "이 나라가 과연 나를 사람취급이나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까지 들 때가 많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면 이건 아예 짐짝 취급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아무리 냉방기를 틀어놓았다지만 열기가 넘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숨쉬기조차 답답할 때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짐짝처럼 짓이겨져 실려 가는 나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소리는 무지막지한 욕설로 들립니다. 차라리 비용이 좀더 들더라도, 시간이 좀더 걸리더라도 승용차를 타고 느긋하게 음악을 들으며 출근하고 싶지만, 시간에 쫒기는 도시근로자들의 입장에서 그것 역시 야무진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불평은 사람대접을 받고 싶다는 말일 것입니다.


점심시간에 근무지 주변 식당엘 들어가도 온통 만원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밥을 먹으며 문밖에서 줄을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보면 먹는 것이 어디로 들어가는지조차 헷갈릴 지경입니다. 이건 한마디로 살기 위해 허겁지겁 먹이를 해치우는 짐승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나는 정말 사람인가' 하는 생각과, '사람인 나를 이따위로 대접하는가' 하는 마음에 속이 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걸어 다니라고 만든 인도에도 사람들이 걸어갈 공간조차 비좁을 정도로 차들이 넘칩니다. 사람인 내가 왜 저 하찮은 기계 때문에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해야 하는지 울화통이 치밀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빨리 달리라고 만들어놓은 고속도로는 무작정 진입을 허용한 탓에 툭하면 정체입니다. 돈을 내고 고속도로를 이용하지만 사람생각 않는 도로행정 때문에 몇 시간이고 차 속에 갇혀 속을 끓이는 경우도 너무 잦습니다. 그래놓고도 규정된 시간 안에 통과하지 않으면 이용료의 몇 배를 더 물어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차도에서도 인도에서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사람을 표로 생각하고, 경제인은 노동자를 맘 내키면 언제든 버려버리면 되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사례를 많이 봅니다. 우리는 과연 사람대접을 받고 있는 것인가요. 여러분은 과연 사람대접을 받고 있는가요? 정부는 혹 나를 세금을 갖다 바치는 노예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녀 많이 낳으라는 정부의 주장도 세금 더 걷을 수 있도록 머릿수를 늘리기 위한 것은 아닐까요?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이리 체이고 저리 체이고……. 이건 정말 사람이 당할 짓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대접을 받을 자격과, 짐짝이기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장의 표나 잠시의 소모품이 아닌 인간의 격에 맞는 대접을 받고 싶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는 진정 사람대접을 받는 세상에서 살아가길 원할 것입니다. 시골로 내려가 살면 된다는 명쾌한 해결책도 실천으로 옮기기엔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은 사회나 제도, 지역이나 국가가 나를 사람대접 해주도록 기다리다가는 죽고 난 뒤라야 가능할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내 스스로 노력하는 방법밖엔 없는데,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모으는 것과, 타인을 내가 사람대접 해주는 것이 그 방법일 것입니다. 스스로 돈을 모으는 것이야 각자의 능력이 다르니 순전히 본인의 노력에 맡길 수밖에 없겠지만, 타인을 사람대접 하는 일은 지금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정부는 모든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제도를 위한 제도, 정책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사람을 최우선으로 하면 될 것이고, 일반 개개인은 주변 사람들을 이용대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 다정하게 대접하고 서로 돕는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갈수록 첨단화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기계에 의해 지배를 받는 세상이 올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사람을 하찮게 여기는데 따른 사회악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일이나 오늘의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일은 모두다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 나간다면 가능해질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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