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다단계

by 권태윤

우리는 흔히 세상이 그래도 이 정도나마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위한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아주 오래전 모 방송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칭찬하기'란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삶'들을 보며 함께 감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란 영화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습니다. 원제는 ‘Pay It Forward’ 인데 영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로 새로운 방식의 인간관계인 '사랑나누기'를 의미합니다. 즉, 누구에겐가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고 이를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도록 하면 언젠가 온 세상 사람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Pay Back(보답)과 비슷한 말로 '먼저 베풀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미 레더(Mimi Leder)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트레버 맥킨니 역은 할리 조엘 오스먼트(Haley Joel Osment)가, 트레버의 어머니 알린 맥킨니 역은 <왓 위민 원트>에서 열연한 헬렌 헌트(Helen Hunt)가 맡았습니다. 사회 선생님 유진 시모넷 역은 케빈 스페이시(Kevin Spacey)가 맡아 각각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중학교 사회선생님인 유진 시모넷의 생활에는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셔츠, 연필 같은 주변 물건에서부터 어떨 때는 주변의 사람들까지. 하지만 이런 정렬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또다시 상처받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알린 맥킨니는 남편 없이 아들 트레버를 키우며 살아갑니다. 그녀는 밤낮으로 두 곳의 직장에 다니면서 힘들게 살지만 아들을 사랑하며 그를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부모와의 의절, 실패한 결혼생활 그리고 알코올 중독까지, 그녀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로 자꾸만 지쳐갑니다. 아들에게는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녀가 바쁘게 생활하는 동안 대화의 벽도 생기고 아들과는 점점 멀어집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유진은 학생들에게 일년 동안 수행할 숙제를 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오라는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숙제는 숙제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트레버는 진심으로 이 숙제를 받아들이고 '사랑나누기'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와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기 시작합니다.


하나가 셋이 되고 셋이 아홉이 되는 기막힌 다단계 사랑 실천법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트레버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부랑자 제리를 집에 데려옵니다. 제리를 보고 기겁을 한 트레버의 엄마 알린은 시모넷을 찾아가 아이에게 이상한 과제를 시켰다고 따지게 됩니다.


한편 트레버는 자신의 다단계 사랑 실천법을 적용할 대상에 시모넷과 알린을 포함시킵니다. 트레버 덕분에 마음을 열고 조금씩 다가가는 시모넷과 알린. 트레버는 그런 두 사람을 보는 게 마냥 기쁩니다. 더구나 두 사람 모두 트레버의 사랑나누기에 동참할 것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트레버의 순수한 생각만큼 세상사는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불완전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그의 용기와 노력은 번번이 좌절되고 맙니다.


그러나 라스베가스의 변두리에서 시작된 이 전무후무한 세상 바꾸기는 LA에까지 퍼지게 됩니다. 12살짜리 소년이 생각해 낸 사랑 나누기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기 직전, 평소 학생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던 한 친구를 돕는 일을 자신의 사랑나누기 과제로 삼고 그것을 실천하려던 트레버는 한 학생의 칼에 의해 죽고 맙니다.


이 영화는 <피스 메이커>, <딥 임팩트> 등 액션 영화를 선보였던 미미 레더가 연출한 드라마로, 평탄할 것 없는 삶을 살아온 주인공들이 오히려 남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중심에 서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우선 그 아이디어의 신선함 때문입니다. '무언가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해주되, 도움을 받은 사람은 다른 세 사람에게 똑같은 조건의 도움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이를 '도움 주기'니 '사랑 나누기'로 표현했는데, 정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입니다.


상대를 칭찬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돕는 것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은 정적입니다. 솔직히 생산적인 면에서 따져본다면 파급효과가 그렇게 크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반면, 도움주기는 영화 속의 주장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숫자를 늘려줍니다.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크나큰 변화를 가져오고 마침내 세상을 밝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일깨워 준 영화였습니다.


우리의 정치인이나 경제인, 아니 모든 사람들이 '사랑 나누기', '도움 주기'에 동참할 수 있다면 이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 사람이 살 맛 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뒤늦게 다시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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