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의 가족, 친인척 채용에 대한 의문

by 권태윤

국회의원들의 가족 및 친・인척 채용과 관련한 비난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라진 모습이 된 지 꽤나 오래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무조건적인 비난은 옳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 충분한 능력이 있으면 가족, 친인척이라고 해서 채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진(晋)나라 때 중모(中牟)라는 지방의 현령 자리가 비었습니다.

평공(平公)이 중신 조무(趙武)에게 “중모는 우리 진나라의 팔과 다리처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도읍인 한단(邯鄲)처럼 중요한 곳이다. 그곳에 누구를 현령으로 배치하면 좋겠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조무는 평소 자신과 정치적 소신이나 철학이 달라 견원지간처럼 지내는 형백자(邢伯子)라는 관리를 추천했습니다. 왕이 의아해 재차 “형백자는 그대와는 원수처럼 지내는 사인인 것으로 아는데 왜 하필 형백자인가?” 라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조무가 답하길 “ 비록 그가 소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는 하나 진나라의 가장 중요한 거점도시를 방어하는 데는 형백자 만큼 지용(智勇)을 겸비한 자는 없습니다. 소신은 국가의 중요정책에는 공과 사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를 천거하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평공이 다시 국가의 재무를 맡는 재무대신은 누가 좋겠느냐고 묻자, 조무는 자신의 아들을 추천했습니다. 평공이 “그대는 공사가 분명하거늘 어찌 자식을 천거한다는 말인가?”고 의아해 하자 “비록 불구대천의 원수라 할지라도 그 직책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면 천거하는 것이 정치의 원칙이며, 비록 조정과 세간이 비판과 비난을 퍼붓더라도 능력이 탁월하다면 내 자식이라도 그 자리에 쓰는 것이 인사의 원칙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 좌하편(外儲說 左下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조무가 평공에게 천거해 중요한 소임을 맡긴 사람들이 46명에 이르렀으나, 단 한사람도 왕과 조무를 배신하지 않고 조무가 은퇴한 후에는 그를 스승처럼 따르고 자문을 구했으며 그가 죽자 자식들보다 더 애통해하며 조문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인재를 쓸 때 ‘밖으로는 원수도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자식도 가리지 않는다’는 ‘외거불피구, 내거불피친(外擧不避仇, 內擧不避親)’ 라는 조무의 정치철학은 ‘옳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역시 진나라 시절 기해(祁奚・기황양)라는 재상이 늙어 스스로 사직을 표명할 때 왕인 진도공(晉悼公)이 남양현령의 후임을 부탁했습니다. 이때 기해는 원수나 다름없는 정적 ‘해호(解狐)’를 추천했습나다.


왕이 “해호는 그대와 정적으로 늘 조정 내에서 다투고 싸우던 인물이 아닌가?”라고 묻자 “비록 그가 소신과 정적이라고는 하나 국가의 중요한 요충지인 남양을 다스리는 데는 그만한 적임자가 없습니다.”라고 그를 천거해 남양현관으로 부임시켰습니다.


해호 역시 은퇴할 때 그와 정적이었던 인사를 왕에게 재상으로 천거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해호가 자신을 용서한 것으로 간주하고 해호의 집을 찾아가 경의를 표하며 고개를 숙이자 해호는 “내가 너를 천거한 것은 적임자라고 믿은 공적인 일이지만 네가 사적으로는 나의 정적임은 분명하다. 나는 공과 사를 구분한 것 뿐이며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너를 용서치 않고 있다!”라며 활시위를 겨냥한 채 냉정하게 내쫓았다고 합니다.


고금역대 십팔사략(古今歷代 十八史略) 중 사기(史記)의 진세가(晉世家)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씀에 있어 ‘관계’를 따질 것이 아니라, 철저히 ‘능력’을 따져야 하고, 그렇다면 가족이니 친인척이니 하는 것이 능력만 있다면 무슨 문제겠는가 싶습니다.


기회의 공평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자질을 공평하게 따지는 것도 공정의 영역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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