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단상(斷想)

by 권태윤

어떤 지인은 부동산을 사고팔아 불과 2년 만에 50억 원 가량의 자산을 늘렸습니다. 소위 목 좋은 곳에 집을 사 그만큼의 이득을 챙긴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 재주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만 그렇게 부를 쌓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그만큼의 고통을 받으며 점점 더 내집의 꿈을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재산형성이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착취가 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절반 이상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몰리니 수요공급에 따라 당연히 집값도 오릅니다. 집값이 오른다고 정부는 수시로 방망이를 듭니다. 너무 자주 방망이를 드니 내성이 생겨 눈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토지가 국가의 소유인 중국에서조차 부동산 투기가 활개를 칩니다. 인간의 탐욕에는 본래 브레이크가 없고, 그 탐욕 때문에 성장해 왔습니다.


기성세대가 쌓는 탐욕의 벽은 갈수록 견고해집니다. 젊은이들은 절망과 좌절감에 아우성칩니다.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기만 해서는 결코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절망. 내 소득 규모에 맞는 대출을 받아서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욕망까지도 투기로 몰아세우는 정권에 대한 분노. 그럼에도 더 거세지는 기성세대의 탐욕만 들끓는 나라. 희망의 싹은 어디서도 엿보이지 않습니다.


이웃의 희망을 빼앗아 차린 기성세대의 식탁은 풍요롭습니다. 그들의 자식들도 땀 흘리지 않고 풍요의 식탁을 물려받습니다. 반면, 현재의 고통으로 인해 희망을 빼앗긴 이의 식탁은 비루힙니다. 그들의 자식들은 피땀을 흘려도 빈곤한 식탁을 물려받습니다. 승자와 패자의 대물림은 분열, 유혈혁명의 씨앗으로 자랍니다.


지구상 그 어떤 동물도 여러 채의 보금자리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그 보금자리로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인간만이 오직 집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집이 좋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계속 남아있는 한, 집을 통한 돈벌이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집값이 떨어지길 바라는 집 없는 사람과, 집값이 계속 오르기를 바라는 집 있는 사람의 사이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 균형점을 찾아 궁극의 대안을 제시하는 정부가 지혜로운 정부입니다. 가진 자의 탐욕과, 갖지 못한 자의 갈증을 조화롭게 하는 일, 그것은 가진 자를 때려잡는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고, 못 가진 자를 위로한다고 가능한 게 아닙니다. 가진 자가 많이 가지려 안달하는 욕망은 인정해주면서, 못 가진 자가 집 없이 떠돌지는 않도록 만들어 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안전한 둥지’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좋은 둥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새끼도 낳고, 제대로 키울 수 있습니다. ‘나만의 둥지’를 가질 수 있고, ‘더 좋은 둥지’를 가질 수 있는 꿈을 꿀 수 없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가진 자에게만 너무 신경을 써서 집착하지 말고, 못 가진 자에게 집중해봐야 합니라. 해법은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릅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방법은, 수도 없는 ‘실험(난도질)’이 아니라, 잘 드는 칼로 행한 단 한 번의 칼질이었습니다.


좋은 둥지'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본능이며 보호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좋은 둥지' 를 '충분하게' 공급하지 않는 집값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연어가 밥먹고 할 일이 없어 그 먼 길을 목숨 걸고 회귀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좋은 산란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 가서 알을 낳으라고 물줄기를 강제로 끊어버리면, 강가의 동물들도 굶주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결국 연어는 바다에서 죽어갈 것이고 그 누구도 연어를 다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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