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羞恥心), 정치인이 가져야 할 기본감정

by 권태윤

성리학의 철학적 개념 중에 ‘사단칠정(四端七情)’이 있습니다. 그중 4단은 도덕적 감정입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갖춰야 할 마음의 길잡이입니다. 이 중에서도 자기의 옳지 못함을 항상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고 경계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정치인에게 있어 특히 중요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재목이 갖춰야 할 덕목이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두 가지는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수신(修身) 그리고 수치심(羞恥心)입니다. 굳이 일국의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 다시 단 한 가지만 고른다면, ‘수치심을 갖고 있는 것’ 또는 ‘수치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신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수치심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꺼운 얼굴(面厚), 시커먼 마음(心黑)을 외려 강조한 이종오(李宗五)의 <후흑학(厚黑學)>이나, “군주가 정치 세계에서 윤리적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군주론(君主論, II Principe)>도 있지만, 이런 윤리적 무감각과 위장술은 전쟁과 살육이 난무하던 ‘어둠의 시대’에나 먹힐 사악한 주술입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도록 하는 힘,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도록 하는 바탕이 됩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은 ‘수치스럽다’, ‘치욕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나쁜 것을 보고 들으면 수시로 눈을 닦고 귀를 씻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부류도 있습니다. 비록 인두겁을 쓰고 있으나 야수(野獸)의 마음을 가진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자들 입니다.


그래서일까. 유교문화권이던 동양에서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와 관련된 단어가 유독 많습니다. 쇠로 만든 낯가죽을 하고 다닌다는 뜻의 철면피(鐵面皮),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의미의 후안무치(厚顔無恥), 염치를 모르고 뻔뻔스럽다는 파렴치(破廉恥) 따위가 그런 말들입니다. 태연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죄를 짓고도 태연함을 가장하는 단계를 넘어 아예 죄의식 자체가 없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부끄러움이라곤 없는 ‘야수(野獸)의 심장’을 가진 자들입니다.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뻔뻔스러운 자, 숱한 사람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해놓고도 뉘우침이 없는 자, 심리학에서는 이런 부류의 자들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군자(君子)라 칭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늘 수신(修身)을 강조합니다.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으려는 노력이 모여 사람다운 사람을 만듭니다. 그런데 수신이 부족한 자는 아무리 입을 나불거려도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인품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유학의 대표 경전인 4서(書)와 3경(經)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대학(大學)>에, 수신(修身)이 제일 앞에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사에 등장하는 전제군주, 북한에나 남아 있는 반인권적 우두머리가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민주국가라면, 수치심을 가진, 사람다운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합니다. 몇 푼의 현금이 주는 달콤함과, 정제되지 않은 언어의 통쾌함에 눈이 멀면 나라에 무도(無道)한 지옥도가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쉼 없이 돌아보고 반성하며, 그런 반성의 토대 위에서 오늘을 살고, 내일의 꿈을 말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머리를 온전히 유지해야만, 운명은 비로소 그런 사람을 우리의 지도자로 앞에 우뚝 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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