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의, 가우디에 의한, 가우디를 위한 여행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나름 융통성 없는 모범생으로 살다 보니 여행책자에서 추천해 준 루트가 당연히 가장 좋겠거니 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름지기 '가우디의, 가우디에 의한, 가우디를 위한' 여행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가우디의 건물들을 찾아다니느라 아까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가우디의 건축물 중 가장 유명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2007년 당시에도 100년 넘는 시간 동안 계속 공사 중이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까 지금까지도 건설 중이라고 한다.
140년 넘게 완공을 못 한 것이 어찌 보면 이해가 안 가는데 직접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까사밀라, 까사바트요 같은 건축물을 포함하여 가우디의 건축에는 '네모 반듯'은 없고 곡선에, 물결 모양에, 뾰족한 형태까지 진짜 너무 복잡하다.
겉만 그러면 그나마 만들 만할 텐데 심지어 내부도 그에 못지않다.
그런 설계를 그대로 구현해 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가우디가 최악의 건축가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몇 개의 건축물과 구엘공원까지 해서 바르셀로나 여행의 상당 부분은 가우디를 위해 할애되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 부분이 많이 아쉽다.
가우디가 물론 훌륭한 건축가고 그의 건축물이 바르셀로나의 위대한 유산인 건 알겠으나 짧은 일정이라면 그것에 올인하는 것은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가우디의 팬이 아니라면 또는 건축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이외의 나머지 건축물들을 다 쫓아가서 볼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사실 깔끔함에 대한 강박이 있는 나로서는 '네모 반듯'한 단정한 건물이 더 좋다.
솔직히 가우디의 건축물은 내 취향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좋았던 것은 오히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몬주익 언덕에서 본 풍경이었다.
분수쇼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해질녘 그 언덕에서 바라본 시내의 풍경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더 좋았던 것 하나는 바르셀로나항의 자유로운 공기였다.
맨바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 바닥에 그대로 누워 하늘을 보는 사람들...
그 자유로움이 참 좋았다.
그리고 왕의 광장에서 본 무명 악사들의 연주도 인상적이었고 그 사진은 볼 때마다 감동적이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스페인을 여행한다면 오히려 그런 곳들을 더 찾아다니고 싶다.
시장통도 좋고 그냥 시내 거리도 좋고 이름 모를 골목길도 좋을 것 같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 속 자유로운 풍경들을 더 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