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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새 Apr 21. 2022

또 요청이다, 두렵다

가짜 프리랜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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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요청이 들어왔다. 두렵다. 난 내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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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후려치는 단가에 적응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경력이나 연결된 업체가 충분하지 않으면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경력과 커넥션을 쌓는 게 중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에게 많은 업체와 연결고리가 생기고, 일감이 점점 많아지는 순간이 오면, 꼭 업체들에 앞으로 본인이 단가를 올릴거라고 정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매번 최저 단가로 뼈빠지게 일하고도 손에 쥐는 게 거의 없는 본인을 보게 될 겁니다."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어떤 브런치 글의 내용은 대강 그러했다. 프리랜서로 오랜 기간을 보낸 사람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족들을 충분히 먹여살리면서도, 본인이 일의 템포를 조절하며 가족과의 여유시간을 즐기고 있는 한 프리랜서 고참의 글이었다. 저 글을, 막 프리랜서라는 길을 가봐야겠다고 결심한 시기에 보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앞쪽 문장('후려치는 단가')보다는 시기적절하게 급여 인상 요청을 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뒤쪽 문장에, 그리고 바쁠 때도 있지만 자유롭게 사는 저자의 삶에 매료되었다.


저 글을 보던 당시부터 나는 내가 스스로 창작하며 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인투식스를 기본으로 하는 정규직 일자리들이 성에 차지 않았다. 나인투식스 일을 잠시 했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일과 병행할 힘과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인투식스여도 나를 쏟아가며 해보고 싶은 일자리가 몇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를 뽑아가지 않았다. 경력도 없고 제대로 준비된 것도 없으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우선은 열심히 공부하기로 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프리랜서 일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위에서 본 저자의 글도 생각나, 혼자 장밋빛 미래도 그려봤다. 공부하는 것들을 쓸 수 있는 일이 잡히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도 벌고, 경력도 되고, 시간도 내가 조율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얄궂게도 코로나가 지구에 상륙하기 직전에 그런 결심들을 했다. 중국에서 코로나라는 병이 나타났다는 뉴스가 간간히 들려오던 1월, 서울에 상경했고, 한국에도 코로나 확진자 몇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돌던 2월, 서울의 새 집에 입주했다.



그렇게, 서울에 살기로 결심한 전후부터 서울에 올라온지 3년차 되는 지금까지 여러 번의 '프리랜서 일'이라는 것을 겪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받아보기도 했다. 그 일이 좋아서, 같이 하는 사람이 좋아서 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것들과 결을 완전히 달리 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도 경험이 되겠거니, 싶었다. 처음에는 설레기까지 했다. 내가 다양한 것을 해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이를 테면 축제 기획도 해본 프로그래머, 녹취도 풀 줄 아는 번역가.


하지만 결국 공인된 자격이나 경력이 없었으니, 구해지는 일들은 주로 '무늬만' 프리랜서 일인 것들이 많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러므로 싼 일. 알바와 다를바가 없었다. 대부분이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고 했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임금이 어딜가나 계속되자 조금씩 힘이 빠졌다.


게다가 애써 일이 지속되다가도, 코로나로 인해 회사의 업무가 멈추거나 구조조정이 필요하면, 먼저 가지치기를 당해야 했다. 2년 간의 코로나 시기 동안 코로나가 심각하다는 뉴스가 우리 세상을 뒤덮으면 내 생활이 출렁였다.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회사 입장에서 재정 위기가 오면 바깥으로 돌리던 일을 회사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난 항상 회사 바깥에만 존재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아침 운동을 나가면 마주치던 회사원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회사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일감을 어떻게 구하고, 앞으로 어디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외주로 맡겨지는 일들은 기한이 촉박한 경우가 꽤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애초부터 외주로 빼던 일이 아니라면, 회사 내부에서 도저히 처리가 안 되니 외주로 나온 일일 것이다.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당장 다음주에 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판에, 내 생활을 지킨답시고 일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쩔 때는 회사에서 내가 당연히 해줄 거라고 미리 판단하고 나에게 일을 보내기도 했다. 불가피하게 며칠의 내 생활패턴을 포기했다. 그렇게 일들에 치이고 있자면 내가 그 시간에 하고 싶었던 일들이 눈에 밟혀 눈앞이 흐려졌다.


그런 주제에 완벽주의 성격은 어디 또 가지 않아서 별 거 아닌 일에 대해 과하게 책임감을 느꼈다. 혹여나 오타가 없었을지, 혹여나 회사에 누가 되지는 않을지 과도하게 생각해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었다. 그러기를 덜어내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런 성격 덕분에 일을 맡겼던 곳에서는 대개 고마워했지만, 고마움만으로 시간당 급여가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부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다음 일을 할 때 돈을 더 달라고 하기도 뭐했다. 그렇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 다음 일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최저임금으로 맡기는 편이 나을 터였다.


가계부는 꼭 썼다. 일상에서 돈을 아끼기에 가계부만한 것이 없었다. 연말이 다가오면 1년 총 정산을 했다. 서울나기가 있었던 지난 두 년도 모두 간신히 마이너스를 면했다. 잘 아껴쓴 자신에게 자랑스러웠지만, 동시에 지원금이 없었다면 어떡했을까, 생각하면 쓴웃음만 나온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어 시작한 프리랜서 생활이 3년차에 접어들었다. 서울나기도 3년차, 코로나도 3년차다. 이제 곧 마스크까지 벗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방감, 설레임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찾아온다. 이제 앞으로는 코로나 지원금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가 풀려 사람들을 만날 것이므로, 외식으로 인한 지출이 좀 더 늘어날 것이다. 난 이제서야 세상에 나를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내가 하는 일은 여전히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다. 급여도, 수많은 나같은 프리랜서와 알바생들이 받고 있는 급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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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간만에 익숙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새로운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배우는 것들 모두에 충실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싶지만, 이번에 나를 찾아온 일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 일일까. 항상 새로 주어지는 일은 무섭다. 이곳에는 퇴근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마감일과 그에 상응하는 금액이 있을 뿐이다. 초기에 일을 파악하기까지 있을 스트레스도 예상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돈을 버는 건 언제 가능해질까. 그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몇 시간을 보낸다. 점점 익숙해지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은 고민의 시간들.


한 친구가 일감이 있을 수도 있다 해서 메일주소를 적어 보내는데, 업무용 메일주소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걱정들이 내 마음 앞을 가려서 마음이 길을 못 찾는가보다 했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 이 길을 선택했는데, 결국 돈은 벌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희생해야 하는, 제의의 시간들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온다. 이번 제의에 희생될 불쌍한 양은 무엇이더냐? 이번에는 스페인어라는 양을 바치겠사옵니다. 그래, 그런데 그 양은 저번에도 바쳤던 양이 아니더냐? 정성껏 제의를 할 테니 부디 어려운 질문으로 저까지 찌르지는 말아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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