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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새 Apr 14. 2022

한나 아렌트 #1 - 변화하는 삶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 - 엘렌 C. 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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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생 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처음 알게 된 사람. '악의 평범성'을 처음 이야기했다고 들었던 사람.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이 주는 까칠까칠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직접 그녀의 텍스트를 읽어보진 않았다.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며, 너무 글을 쓴 지 오래되어 글쓰기에 관한 책을 빌려야겠다 생각했다. 도서관에 가서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골랐다. 그러다가 5권을 모두 글쓰기 책만 고르는 것은 너무 정공법인 것 같아서, 한 권 정도는 좀 다른 책이어도 괜찮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책장을 뒤지다 '어두운 시대의 삶'이라는 제목이 너무 좋아, 빌렸다(읽다 보니 한나 아렌트의 저서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서 가져온 제목 같았다). 평전이었다. 7년 전부터 위인전/평전을 읽고 싶어했던 나에게 좋은 기회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1


아렌트와 하이데거의 관계,

하이데거의 친나치 행위와 아렌트의 용서,

블뤼허의 외도,

매리 매카시가 했던 히틀러에 대한 농담,

매카시와 아렌트의 관계,


우리 사회는 이런 것들을 담을 수 있는 사회일까.

담는다면 어떻게 담아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후 본인에게 쏟아진 비난과 "악의적이었고 역겹기까지 한 내용"(『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 엘렌 C. 헬러, 48p)으로 가득찬 우편물에 어떻게 마주했는가.

어떤 두려움과 어떻게 함께했는가.



하이데거와 함께했던 삶

바른하겐과 함께하는 삶

블뤼허와 함께하는 삶




2


아렌트는 높은 도덕적 기준과 이상, 그리고 사회적·정치적 낙관주의가 지배했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아마 앞으로 다시는 보기 어려울)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 엘렌 C. 헬러, 64p)



바른하겐을 대리하여 사는 삶을 통해 아렌트는 비로소 정신적으로 수줍음이 많고 미성숙했던 시기(마치 꿈을 꾸거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버림받은 느낌이나 모호한 아픔에 사로잡혀 지내던)를 벗어나 사회적·정치적으로 격정적인 삶을 살기 시작하게 된다. 그녀가 유대인들의 삶을 "벼락부자"(사회적으로 열등한 부류로 강요당한 나머지 귀족이나 거물, 혹은 유명인이 됨으로써 이를 보상받으려 하는 사람들)과 "의식 있는 부랑아"(자신들의 정체성이 갖는 장점을 확신하며 깨어 있는 국외자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로 나누어 설명해서 유명해진 것도 바른하겐의 편지와 일기들을 읽은 뒤였다. 사실 이런 구분법은 모든 시대와 문화를 통틀어 적용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아렌트의 바른하겐 연구는 1833년에 이 유대인 여인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역사란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녀는 이렇게 선언했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에서 탈출한 도망자, 그게 바로 나다 ...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 때문에 한평생 부끄러웠고, 내 삶이 비참하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들을 내 인생에서 지웠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같은 책, 107p)



"나는 지적 세계의 거주자였다." 그녀는 뒤에 이렇게 회상했다. "그곳에 사는 지식인들에게 어용화(나치에 대한 자발적인 협조)는 일종의 규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 나는 그런 생각이 팽배한 독일을 떠났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 나는 그(지적) 세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가고 싶었다."

실제로 그 뒤 수년 동안 그녀는 파리와 뉴욕에서 학자보다는 화가와 작가들, 그리고 정치적인 활동가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그녀는 시온주의자 조직을 비롯한 유대인 단체와 유대인 관련 프로젝트들을 도와주는 실천적인 일들을 하는 데 자신의 시간을 바쳤다. (같은 책, 112p)



그(블뤼허)는 친구 집 소파에서 잠을 자면서 하루하루 날품을 팔아 생계를 해결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중퇴가 최종 학력이었지만 그는 어려운 책들을 탐욕스럽게 읽어댔고, 그 결과 독일 철학 사조들과 예술사는 물론이고 정치사와 전쟁사까지 독학으로 익힐 수 있었다. (같은 책, 126p)



"(대규모) 만장일치는 합의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광신과 히스테리의 표현과 다름이 없다." (같은 책, 159p)



"용서받지 못하거나"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일의 결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간의 행위 능력은 "만회할 길이 막힌 단 하나의 행동에 국한될 것"이며, "우리는 자기가 걸린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주문을 모르는 가여운 마법사의 제자처럼 영원히 과거의 결과물의 희생자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같은 책, 175p)



"당신이 이 세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당신을 이곳에 있게 해준 사람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가 자신의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괴물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의 발언은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조급하게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었다고 당시 강의에 참석했던 한 학생은 기억했다. 블뤼허는 결국 1970년 10월 31일, 급성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같은 책, 194p)



그녀는 하이데거에게 블뤼허의 죽음에 관해 편지를 썼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때때로 두 사람 사이에서 하나의 세상이 생겨나서 자란다. 그러고는 그들만의 조국이 된다. 어떤 경우 그것은 그들이 기꺼이 인정하는 유일한 조국이 되기도 한다.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 하지만 상대방이 사라지면 그 즉시 소멸되는 이 작은 세계 ... 나는 그곳에 가만히 앉아 생각한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책, 1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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