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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경 Aug 27. 2020

그냥 일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2020-08-27 목요일 팔월의 끝자락에서


코로나의 여파로 2학기 병행강의가 예정되었던 수업도 전부 온라인으로 변경되었고, 2주 간은 대면강의를 해야 하는 예체능 계열 역시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1학기에만 영향을 미치고 점차 사그라들 것 같았던 코로나는 아마 내 예상보다도 훨씬 긴 시간 동안 우리 삶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8월 마지막 주, 준비하던 시험을 모두 끝낸 나는 그간의 힘들었던 것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피로가 찾아왔다. 결국 1학기 근로를 일주일 정도 앞둬놓고 조기 퇴사(라는 이름의 도망)를 하여 기숙사에서 본가로 왔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였는지, 요가를 하면서였는지 마음의 건강을 풍선에 빗댄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마음의 긴장과 피로 같은 것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으면 거기에 바늘 구멍을 내 바람을 조금 빼주는 것. 그런 이완 과정이 필요하다고. 내 나름 쉼없이 달려왔던 몇 년 간,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트라우마가 집에 있는 동안 끝없이 나를 괴롭혔고 결국 오랫동안 하지 못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예전 게시글에 "사과받고 싶다."고 쓴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글이 내가 써서 올린 글 중 가장 솔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들은 엄마는 변명을 하다가, 회피하다가, 결국 나에게 했던 폭언과 폭력이 화풀이였음을 인정했다. '화풀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나는 잠시의 분노 뒤에 맥이 풀리고, 허망했고, 공허함을 느꼈다.




나의 고통은 단순히 누군가의 화풀이였다


여지껏 나는 어렸을 적 내가 들었던 폭력적인 말이나 당했던 폭력적인 행동의 원인이 나에게 있을 거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잘못해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당한 게 아니라, 그저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 아이에게 강요한 일말의 화풀이였다는 것을 깨닫자 그간 나의 고통 받았던 시간이 무엇이었나 허탈했다. 또 내가 받은 상처들을 무엇으로 메꿔야하나 싶었고, 그럴 용기가 들지 않아 좌절스러웠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


짧다면 짧은 생이었지만 그간 너무 오랜 시간을 과거에 얽매어 살았다. '미안했다.'는 한마디, '화풀이'였다는 진심을 조금 더 일찍 들었더라면 나는 그때를 용서하려고 노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치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목표를 세워서 무엇을 이루면, 예컨대 이제 곧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어떻게든 독립을 한다면 이후의 내 삶은 무엇으로 채워지는 걸까?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것일까?


나는 선의 힘을 믿는다. 결국 악이 선을 이긴다거나, 착한 사람은 손해보고 산다는 말로 악을 정당화하는 것도 싫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정상을 차지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있는 그 자리에서 풍경을 우러러 보는 것, 그리고 그 풍경에서 아름다움과 의미, 행복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 


어떤 날에는 친구의 대화나 누군가의 말보다도 위로가 되는 시가 있다.



슈톨렌

―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창비, 2020)


"건강을  조심하라기에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먹였는데

밖에 나가서 그렇게 죽어 올 줄 어떻게 알았겠니"


너는 빵*을 먹으며 죽음을 이야기한다

입가에 잔뜩 설탕을 묻히고

맛있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하며


사실은 압정 같은 기억, 찔리면 찔끔 피가 나는

그러나 아픈 기억이라고 해서 아프게만 말할 필요는 없다

퍼즐 한조각만큼의 무게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퍼즐 조각을 수천수만개 가졌더라도


얼마든지 겨울을 사랑할 수 있다

너는 장갑도 없이 뛰쳐나가 신이 나서 눈사람을 만든다

손이 벌겋게 얼고 사람의 형상이 완성된 뒤에야 깨닫는다

네 그리움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하려다가

있는 힘껏 돌을 던지고 돌아오는 마음이 있다


아니야 나는 기다림을 사랑해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마당을 사랑해

밥 달라고 찾아와 서성이는 하얀 고양이들을

혼자이기엔 너무 큰 집에서

병든 개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펑펑 울고 난 뒤엔 빵을 잘라 먹으면 되는 것

슬픔의 양에 비하면 빵은 아직 충분하다는 것


너의 입가엔 언제나 설탕이 묻어 있다

아닌 척 시치미를 떼도 내게는 눈물 자국이 보인다

물크러진 시간은 잼으로 만들면 된다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기억을 졸이면 얼마든 달콤해질 수 있다


* 슈톨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매주 한조각씩 잘라 먹는 기다림의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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