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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폴로지에 관하여

reflection on Quatremerere de Quincy

by ji

현재와 파리의 건축가 Quatremère de Quincy가 Type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던 1780년대 사이에는 거대한 시간적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은 너무 커서 그가 정의한 Typology의 개념을 현재에 적용하는 일이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Type에 대한 그의 개념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지난 시간 동안 논의되어 온 Typology의 개념과 변천을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Typology는 시간성에 기반한 개념이다. 자주 변화하지는 않지만, 사회에 새로운 가치, 법규, 그리고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새롭게 변형되거나 진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기 이전에는 ‘복도’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노예와 귀족 사이의 동선을 분리해야 하는 필요성을 인식한 이후에 처음으로 복도를 사용한 주거 타이폴로지가 영국에서 나타났다. Coleshill House는 당대에 획기적이었으며, 건축의 새로운 Typology로 여겨졌을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주거 타이폴로지인 Shotgun house, telescope house, plantation house등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토지 구획의 변화, 세금 징수, 사탕수수 사업과 집에 대한 미국인의 로망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이런 주거 타입은 그 이후에도 꾸준히 변해왔다. Shotgun house는 더 짧아지거나 길어지고, Double shotgun house로 두꺼워지거나 Camel-back house와 결합하며 새로운 변종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Typology라는 단어 자체가 함유하고 있는 것은 Typology가 절대적으로 고정된 형태의 건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Quatremère는 이것을 ‘시간의 선행(an idea of antecedence)’라고 정의했다. 그가 그의 책에서 언급한 세 가지의 모델들은 오두막, 동굴, 그리고 텐트로, 모든 Typology의 기본적인 모델(model)들이다. 이 모델들은 그가 Type을 건축의 역사와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설명을 옮기자면, 텐트의 밝고 이동 가능한 구조는 중국의 얇은 나무 구조물이 되었고, 어두운 동굴은 이집트의 종교적 건축이, 인방 구조인 오두막은 그리스 석재 건축의 기원이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기본적인 모델들은 각 국가의 관습, 취향, 사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일 뿐임을 암시한다. 그에 따르면 Type은 어떤 구체적인 형태 혹은 치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흐름 안에 내재된다. (그 이후에도 르 꼬르뷔지에가 제안한 프로토 타입, 로버트 벤츄리의 이미지로써의 타이폴로지, Durand의 축선과 타이폴로지 연구, Anthony Viddler의 Typology 연구가 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자세한 내용은 Rafael Moneo의 On Typology를 참고)


그 동안 건축적 오브제가 Typology의 개념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건축이 구축되는 방법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기둥을 세우고, 보를 올리고, 지붕을 씌우는 행위가 반복될 뿐이다. 르 꼬르뷔지에의 도미노 이후에 건축의 언어는 ‘장식과 오더’에서 ‘기둥과 슬라브, 구조와 외피’로 더 다양한 가능성을 열었으며 한 동안 이것은 건축가들의 축복으로 여겨졌다. 또한 기술의 발달은 그 동안 새로운 재료, 다른 디테일, 그리고 시공 방법만을 탄생시켰으나 이전의 역사에서 경험한 장식적 특성에 더 가까운 성격만을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디자인은 해체주의와 관련 있으므로 Typology와는 별개의 이야기로 생각된다.) 이 법칙을 거스르기엔 구조와 기술이 주는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우리는 이 중력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공간이고 이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 사회의 가치를 보여준다면, 건축가들의 역할은 이 건축적 오브제의 구조적 규칙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 질서를 재정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건축사 사무소 SGHS의 강현석 건축가님은 2022년에 출판된 <제로의 책 - 구축 없는 건축의 구축>에서 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모든 건축은 질서를 구축하는 행위다. 건축의 질서는 기둥, 벽, 바닥, 지붕 등의 구조적 질서부터 문, 창문, 계단과 같은 관계적 질서를 거쳐, 궁극적으로 건축과 대지, 주변, 자연의 질서까지 총체적이고 복합적으로 확대된다. 건축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근대화 도시의 건축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기능성과 합리성을 암묵적으로 따르는 질서와 시스템 속에 존재한다. 드로잉 속의 건축 또한 질서를 통해 구축된다. 건축가는 질서의 구축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재현한다. 여기에서 건축가는 기존 건축에 내재한 총체적 질서에서 특정 부분을 도려내어 극대화하거나, 질서의 체계를 전복하거나, 이질적 질서들을 결합하여 변종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감상자의 매끄러운 인식 과정에 덜컹거림의 순간을 만든다. 이 때 감상자의 인식 장치는 깊이 없는 캔버스의 표면을 따라 횡단하며 펼쳐진다.”


공간적 질서는 사회의 질서와 시스템에서 온다. 우리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화장실과 침실을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어떤 건축가도 화장실 혹은 침실이 타인에 의해 쉽게 침범되거나 남들에게 보이게 디자인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사회적 관습들은 감춰지기 급급하다. 영화 The Phantom of Liberty, 1974에서 감독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 먹는 행위를 사회적 금기로 상정한다. 사람들은 실수로 공공장소에서 무엇을 먹었을 경우 크게 잘못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런 경우에 우리의 건축은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될까. 사회가 따르는 질서와 시스템,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의 의식은 때때로 깊게 뿌리 박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이것이 때로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Typology에 대해 묻는 것은 사회의 질서와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묻는 것과 같다.


따라서 건축가는 사회를 관찰하고 다른 미래적 대안을 제안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Typology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우리는 Typology를 통해 ‘일상적으로’ 사회에 만연한 의식을 살펴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영향력 있는 참조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Reference는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이니 혼동에 유의해야 한다.) 슬프게도 항상 새롭고 특별한 것을 만드는 건축가에게 typology의 의미가 결국은 건축의 재생산으로 수렴된다는 것이 현재의 상황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건축가의 권력은 새로운 typology의 제안을 통해 변해가는 사회의 한 현상을 정확하게 짚어 변화를 세상에 공표하거나 현상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Typology의 의미는 형태적 특징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는 논리와 그 뒤에 있는 사회적 맥락을 함께 살펴보는 것에 있다.


그 외에 Typology는 이것의 시간적 성격 때문에 집단 기억과 지역성을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건축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건축가가 유별나게 형태적 특이성에 집착하는 것도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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