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라파엘 모네오의 글을 읽고 요약한 것으로 작성자 편의상의 해석으로 인한 내용의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약한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Moneo, R. 1978. “ON TYPOLOGY.” OPPOSITIONS (U.S.A.), no. 13: 22–45.
I
건축에 있어서 유형학의 질문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은 건축적인 작업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한 편으로, 건축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전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건축은 어떤 분류 안에서도 더 이상 축소될 수 없다. 건축은 반복할 수 없으며, 하나의 현상이다. 가끔 양식적인 관계들이 다른 구상 미술 작업들처럼 건축물들 사이에서 인지될 수는 있지만, 이런 유사성이 건축의 특수한 성격의 유실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건축은 일반적인 특징들로 인해 분류되는 도구들과 기구들처럼 반복되는 물체들의 분류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 직물, 도기, 바구니와 같은 물건들을 만드는 것처럼, 최초의 헛간에서부터 태곳적의 석재 건설과 같은 초기의 건축은 그 자체를 공예로 인지했다. 유용한 물체를 만든다는 점에서, 바구니를 엮는 것과 최초의 헛간을 짓는 일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런 물건들처럼, 건축 물체는 반복될 뿐만 아니라, 반복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건축의 특수성은 부정된다. 건축, 건설, 집은 보트, 컵, 헬멧처럼 형태적 특징들에 의해 정의된다. 이런 맥락에서 건축의 본질은 이것의 반복성에 놓여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건축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바로 그 행위 또한 언어의 본질로부터 나온 대상을 유형화시키려는 과정이다. 건축 요소인 “기둥” 혹은 전체 건물인 “중정 집”과 같은 건축에 대한 인지는 공통적인 특징들을 지닌 유사한 물체들의 전체적 분류를 암시한다. 따라서 언어 또한 내재적으로 유형의 개념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유형은 무엇인가? 유형은 가장 간단하게 같은 형태적 구조(a formal structure)를 가진 물건들의 그룹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것은 공간적 다이어그램 혹은 연속적인 리스트의 평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특정한 고유한 구조적 유사성에 의해 객체를 그룹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기초한다. 심지어 집단적으로 생각하는 행위를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마천루를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누군가는 마천루를 거대하고, 왜곡된 르네상스 궁전으로, 고딕 양식의 타워로, 단편적인 피라미드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유형이 점차적으로 정확해짐에 따라, 하나의 유형은 다른 레벨의 그룹화로 이어지며, 따라서 새로운 유형의 순위를 설명할 수 있다. 결국에는 하나의 특정 건물의 이름으로 끝난다. 따라서 개성을 표면상으로 배재한 유형의 개념은 결국 하나의 건물을 향해 그 기원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건축은 유형들에 설명되는 것뿐만 아니라, 유형들에 의해 생산되기도 한다. 따라서 건축가는 자신의 작업이 어떤 유형인지 인지해야 한다. 건축가는 처음에 어떤 유형에 갇혀 작업을 시작하지만, 그것을 부수고 변형시키고 존중한다. 하지만 건축가는 유형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디자인 과정은 유형학의 요소들을 하나의 작업을 특징화 하는 명확한 상태로 가져오는 방법이다.
하지만 형태적 구조(a formal structure)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사람들은 일련의 상반된 정의를 시도할 수 있다. 첫번째로, 형태(Gestalt)의 특면이 강조될 수 있다. 이것은 중심성이나 선형성, 군집이나 격자에 대해 말하고 더 깊은 기하학의 관점에서 형태를 특성화 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떤 문헌들은 원시 오두막에서 르네상스 돔에 이르기까지 중앙 집중화된 모든 공간을 동일한 "유형"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이것은 형태적 구조(a formal structure)로서 유형의 개념을 단순한 추상적 기하학으로 축소시킨다. 하지만 반대로 형태적 구조(a formal structure)로서의 유형은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현실은 사회 활동에서 건물의 건설까지 이어지는 광범위한 주제의 계층이다. 궁극적으로 유형을 결정하는 그룹은 반드시 이 현실 뿐만 아니라 추상적 기하학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19세기의 돔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기의 돔과 완전히 다른 등급을 가지며 따라서 그들 자신만의 특정한 타입을 구성한다.
이것은 전체를 정의하는 요소들 간의 관계에 의해 생성되는 유형학적 시리즈의 개념으로 이어진다. 유형은 그런 유형학적 시리즈를 형성하는 요소들의 존재를 암시하고, 따라서, 이 요소들은 더 조사되고 하나의 유형들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상관 관계가 정확한 형태적 구조(a formal structure)를 정의한다.
따라서 Brunelleschi는 Florence에서 랜턴을 논리적 돔의 언어로서 소개했고, 이 형태는 거의 300년 동안 모방되었다. 고전적인 돔과 포스트-고딕 랜턴 사이의 관계는 르네상스와 포스트-르네상스 돔의 가장 특징적인 특징으로 여겨져야 한다. 계몽주의 건축가들이 돔에 대해 작업했을 때, 그들은 돔과 랜턴이었던 요소들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었고 따라서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냈다. 형태적 구조(formal structure)안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변화될 때, 하나의 유형은 다른 것으로 변형된다.
유형학에 반대하는 빈번한 주장들 중 하나는 유형을 변화를 거부하고 거의 자동적인 반복을 강조하는 frozen mechanism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유형의 바로 그 개념은 변화와 변형의 개념을 암시한다. 건축가는 그가 일하고 있는 것의 유형을 식별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기계적인 재생산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소위 말해 유형학적 접근은 지속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형이 견고하게 굳혀졌을 때, 결과적인 건축적 형태들은 건축 작업들이 반복적인 과정으로 생산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형태적 특징들을 유지한다. 이것은 산업에서 찾아지거나, 유사하게 공예에서 보여지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하지만 유형의 개념이 형태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동일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거의 동일한 형태들을 야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으로 결론 낼 수 있다. 혹은 다른 말로, 이미지들, 기술들, 행위들의 안정성, 즉 사회의 안정성이 건축에서도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유형의 개념 자체는 변화의 가능성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을 포함하여 실제 사실에 대한 의식을 의미하는 한 변화에 개방되어 있다. 건축 객체를 그룹으로서, 유형으로서, 그들의 이차적인 측면에서 차별화에 취약한 것으로 봄으로써, 그것들에 나타나는 부분적인 노후를 평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유형은 변화가 작용하는 틀로 생각될 수 있으며, 이는 역사가 요구하는 지속적인 변증법에 필요한 용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유형은 건축을 생산하기 위한 '동결된 메커니즘'이 아니라 과거를 부정하는 방식이 되고, 미래를 보는 방식이 된다.
이 연속적인 변환 과정에서, 건축가는 유형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고, 그것의 용도를 바꿀 수 있다; 그는 규모의 변환을 통해 유형을 왜곡할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유형을 생산하기 위해 다른 유형들을 겹칠 수 있다. 그는 다른 맥락에서 알려진 유형의 공식적인 인용문을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사용된 기술의 급진적인 변화에 의해 새로운 유형을 생성할 수 있다. 다양한 메커니즘의 목록은 광범위하다. 그것은 건축가의 창의성의 기능이다.
건축적 개발에 있어 가장 치열한 순간은 새로운 유형이 생겨날 때다. 건축가의 가장 큰 노력 중 하나는 그가 알려진 유형을 포기하고 명확하게 새로운 유형을 만들기 위한 출발을 하는 것이다. 때로 새로운 기술 혹은 사회의 변화와 같은 외부적 이벤트들이 역사와의 변증법적 관계와 함께 건축가에게 새로운 유형의 생산을 촉구한다. 하지만 때로 새로운 유형의 발명은 예외적 개성의 결과이다.
새로운 유형이 발생했을 때, 즉, 건축가가 건물들이나 요소들의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형태적 관계들을 서술할 수 있을 때, 그 건축가의 기여는 건축을 학문으로 특징짓는 일반성과 익명성의 수준에 도달한다.
II
유형과 건축 학문의 긴밀한 관계를 고려했을 때, 논리 있고 명쾌한 유형 개념의 공식이 건축 이론으로서 Quatremere에 의해 발전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Quatremere에게 유형의 개념은 건축이 과거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는 일종의 비유적 관계로서, 건축가가 처음 건축의 문제를 맞닥뜨리고 하나의 형태 안에 그 문제를 식별했을 때를 말한다. 다른 말로 유형은 역사를 통해 일정하게 유지되는 건축 이면에 있는 이유를 설명하며, 형태와 물체의 본질 사이의 연결이 이해되고 유형의 개념이 만들어진 그 첫 순간의 영속성을 이것의 연속성을 통해 강화한다. 따라서 유형은 필요와 본질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경우에 유형은 이유와 사용과 연결된 형태의 논리로서 식별되고, 역사를 통틀어 건축적 물체가 어떤 형태와 연관될 때, 일종의 논리가 암시되고, 과거의 강한 유대를 형성한다.
이런 본질, 사용, 그리고 역사의 관점에서, 유형(type)은 물체의 기계적 반복을 의미하는 모델(model)과 구분되어야 한다. Type은 과거와 연결된 특징의 단일하고 독특한 객체에서 영구성을 표현했으며, 객체의 상태를 원시적이지만 새롭게 식별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세기에는 유형의 개념은 정확하게 반대의 의미로 여겨졌다. 19세기 건축적 지식에 아주 중요한 매뉴얼과 핸드북은 모델과 예시(models and examples)를 제공했다. Quatremere의 사전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프로그램이란 단어에 의해 상정된 새로운 중요성은 그의 type-form의 개념에 정반대 의미였고, 이론의 중점을 새로운 영역인 구성(composition)으로 바꾸었다. 구성은 새로운 사회에 의해 제공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다루는 건축가에 의한 도구이다; 구성의 이론은 알려진 유형으로 축소될 수 있는 다양성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도구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이론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구성은 형태와 프로그램, 혹은 형태와 기능 사이의 연결을 해경하는 메커니즘으로서 이해되었다. 이런 관점은 Quatremere과 Durand 사이의 차이점에서 발견된다.
Durand에게 건축의 첫 번째 목적은 더 이상 자연의 모방도 기쁨과 예술적인 만족을 위한 탐구도 아니었고, 구성 혹은 배치(composition or disposition)였다. 이 구성의 아이디어는 필요와 직접적으로 연결 되어있다; 구성과 연관된 기준은 편의성과 경제성(convenience and economy)이다. 편의성은 견고성, 건강에 좋음, 그리고 편안함; 경제성은 대칭, 일반성, 그리고 단순성을 요구했고, 이 모든 특징들은 구성을 통해 달성되었다.
Durand에 따르면 건축가들은 재료와 사용과 함께 그들의 관계를 통해 그 형태와 비례를 형성한 기둥, 기초, 볼트 등등과 같은 건축적 요소들을 버렸다. Durand는 이러한 요소들이 반드시 위계(Order)의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고전적인 위계는 단지 장식으로 보여야 한다. 사용과 물질을 통해 온전히 요소들은 설립함으로써, Durand는 건축가의 업무는 이런 요소들을 통합하고, 더욱 복잡한 전체를 만들고, 최종적으로 구성(composition)을 통해 부분들이 하나의 건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Durand는 일련의 porches, vestibules, staircases, courts 등등을 명확한 프로그램들과 연관된 미래의 건물의 부분들로써 제안했다. 이런 요소들, 모델의 레퍼토리와 같은 건축가에게 사용 가능한 염료가 된다. 이것들을 사용함으로써, 건축가는 구성을 통해 건축을 달성하고 최종적 통합성을 위한 책임감을 보유할 수 있다. 이 통합성(entity)는 Durand가 수긍한 고전적인 특징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 통합성(unity)를 달성할 것인가? Durand는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간에 구성(composition)을 다루고 건물의 짓기 위한 두가지 도구들을 제안했다: 하나는 연속적이고 구분되지 않는 격자(grid)이며 다른 하나는 축(axis)의 사용이다.
이 두가지 메커니즘은 근본적으로 요소적이고 태초의 형태에 기반했던 Quatremere의 유형 개념과 정반대이다. 이제 정량화는 그 조건에 반대하여 놓였다: 격자와 축 위에서, 프로그램으로서 건축은 원하는 만큼 유연해질 수 있다. 사각형의 격자는 르네상스 시대에 묘사된 건축의 아이디어를 종결시켰고 18세기 말까지 사용되었다; 건축에서 형태에 대한 근본적 이유였던 형태인 오래된 유형의 개념은 Durand에 의해 격자위에 부과된 축의 일반적 기하학에 기반한 구성의 방법으로 치환되었다.
Durand는 유형의 개념을 피했다; 그는 그의 책에 세번째 파트에서 장르(genr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그들의 프로그램에 따라 구분된 다양한 건물들을 서술했다. 그는 병원, 감옥, 궁전, 도서관, 극장, 집, 막사, 타운 홀, 대학을 수집했으며 때로는 개발했다; 이 컬렉션은 건물의 사용으로서 식별되긴 했지만 유형에 대한 특정한 상정이었다. 그에게 관심은 양식이나 어휘의 문제 혹은 형태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프로그램과 사용이었다.
하지만 구성(composition)에 대한 규칙과 원칙들을 정립하고 일련의 모델(models)을 제시한 후에, durand의 작업들은 19세기의 건축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예상하게 되었다: Durand의 원칙에 의해 제안된 구성의 개념에 의해 지지된 사용 가능한 염료들의 원천으로서 역사에 기반한 지식은 보자르 건축 시대에 완전해지고 상세 해졌다. Durand는 의심할 여지 없이 양식의 전투가 18세기 중반에 그렇게 독하게 발발했는지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양식”은 다소 건물의 프로그램을 반영한 구성을 통해 정의된 건물의 구조가 결정된 후에 건축적 요소들에게 최종적으로 부여되는 형태적 특징들이다.
Durand는 따라서 새로운 사회에 의해 요구된 건물의 요구 사항들과 프로그램을 다루기 위한 단순하고 충분한 방법을 제공했다. 객체가 반복 가능해야 한다는 요구는 건축 객체의 본질에서 근거를 찾지 못한 새롭고 다른 관점으로 대체되었다. 물체의 조건들과 특징들이 중요했던 Quatremere의 개념은 더 이상 결정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를 상품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제도화된 역할을 가진 이론적 도구로서 건축물의 즉각적인 책임이었다.
19세기에 등장한 핸드북과 매뉴얼들은 Durand의 가르침을 따랐고, 실무에서 사용 가능한 염료들을 간단하게 나타냈고, 유형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방식으로 건물의 기능에 의해 건축을 분류했다. 하지만 아주 잘 정의된 단일의 요소들과 다양한 종류의 프로그램을 위한 모호하고 부정확한 도식적인 평면들은 일반적인 파르티(partis)를 야기하는 듯 보였고, 따라서 유형적 형태들을 제안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유형으로서 정의되어왔던 쉽게 파괴될 수 없는 형태적 구조들은 돌이킬 수 없게 평면적이었다. 유형은 단지 구성적이고 도식적인 도구가 되었다.
III
20세기의 초반에, 새로운 감각이 건축의 보수를 불러일으켰다. 공격의 첫번째 지점은 19세기에 세워진 건축 이론이었다. 근대 운동 이론가들은 19세기의 유형의 개념을 거부했다. 그들에게 유형은 부동성을 의미했고, 이는 건축물에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행동해야 했던 디자이너에게 부과된 족쇄에 불과했다. Gropius는 유형 위에 세워져 온 건축에 반대했다. 따라서 건축적 물체의 본질은 다시 한번 변화했다. 건축가는 이제 새로운 방법으로 세상을 서술하려는 시도 안에서 과학자의 예시에 기대를 걸었다. 새로운 건축은 반드시 새로운 어휘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유형은 생경하고 불필요한 것이었다.
이런 변화된 태도는 신조형주의와 바우하우스의 열망과 원칙이 결합된 Mies van der Rohe의 작업에서 잘 나타난다. 그의 작업은 The space라고 불리는 generic space를 특징화 하는 연속된 시도로 해석되며, 이는 건축이 단순한 구축임을 암시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건축가의 작업은 추상적 요소들의 정의를 통해 이상적인 공간을 캐치하는 것이다. 건축가는 물리학자처럼 처음에 반드시 재료의 요소들과 공간의 요소들 자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정확한 건물을 만들기 위해 그 공간의 부분을 고립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용(use)에 의해 특징 화된 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행위가 생산되는 공간(space)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관점에 따라 IIT 캠퍼스는 건축적 구성의 과정에 따라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공간의 물리적 요소인 공간으로서 해석되어야 한다. 공간이 단순히 만들어지면서, 건축은 교회가 될 수도 학교가 될 수도 있다. Mies는 기능이나 물질에 의해 방해된 것이 아니라 형태-공간의 구축자였다.
심지어 그가 일반적이고 유사 유형학적인 중정 집을 디자인 했을 때, 그 지정은 유형의 재생산이라기 보다 잘 알려진 타입으로의 환상을 만든 것이었다. 그 집들은 결국 마지막에는 건축가가 공간을 구체화시키는 방법에 의해 정의된 집들이 되었다; 중정 그 자체는 그들의 배열을 만들지 않는다: 공간은 유형보다 우선시된다. ;따라서 집은 건축가가 다루는 새로운 현실 안에서 하나의 심미적 이벤트로 인지된다. 근대 운동 건축가들은 새로운 산업화된 세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건축의 이미지를 사회에 제공하고자 했다. 이것은 대량 생산 시스템이 건축에 소개 되어야 함을 의미했고, 따라서, 전통적인 건축 “물체(object)”의 단일성과 특수성의 특징을 대체함을 의미한다. Quatremere에 의해 묘사된 인공의 종으로서 유형과 19세기 이론가들에 의해 주장된 모델의 “평균”으로써 유형은 이제 담론에서 제쳐 두어야 한다; 산업의 과정들은 이전의 선례의 경험에서 멀리 떨어진 생산과 물체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했다. 대량 생산에 대한 이런 태도는 근대 운동가들의 독특한 공간적 오브젝트(특수성)에 대한 집착과 분명히 반대였다. 하지만 유형의 개념에 관해서는 근대 운동 이론 이런 두 측면은 건축 오브제를 이해하는 것에 중요한 키로써 유형에 대한 그들의 거부와 일치했다.
건축에서 대량 생산은 대량 주거에 집중했고, 이는 건축이 새로운 측면에서 보여지도록 만들었다. 반복성은 이것이 산업과 일치하기 때문에 바람직하다. Bruno Taut는 “같은 조건을 위한 같은 건설”이라 말했다. 산업은 반복과 시리즈를 요구한다; 새로운 건축은 pre-cast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 모델의 정확한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주된 본질적 감각안에서 유형이라는 단어는 산업의 미덕에 의해서 추상성으로부터 건축의 현실로 변화되었다; 유형은 이제 prototype이 되었다.
단일의 독특한 이벤트로서 건축과 산업적 프로토 타입으로써의 건축 사이에 대한 모순은 Le Corbusier의 작업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Le Corbusier는 무제한적인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적 프로토타입의 조건에 관심이 있었다. 도미노 하우스는 이런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나중에 유니테 다비따시옹은 이런 태도의 완벽한 예시가 되었다. 이것은 공장 생산 과정의 결과이며, 어디로든 보내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유닛(unit)이다. Le Corbusier의 이론에서, 건축 산업은 자동차 산업과 유사하다; 태고의 건축처럼, 하지만 지금은 산업의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새로운 건축은 유형의 도구로서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이런 새로운 유형의 개념은 과거의 의미를 완전히 잃었다. 대지에 대한 적용성과 사용의 유동성을 가졌던 19세기의 건축 오브제의 단일성은 새로운 건축에 의해 폭력적으로 거부되었고, 건축을 대량 생산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19세기의 유형의 개념에 반대하는 세번째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기능주의에 의해 제공되었다. 요구사항과 형태 사이의 인과 관계인 기능주의는 유형의 역사적 개념에 대한 필요 없이 그리고 선례에 대한 원천 없이 건축에 규칙들을 제공한다. 기능주의자 이론이 위에 언급된 두개의 태도들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과거의 형태에 대한 지식을 거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각각은 다른 경로를 따른다; 기능주의는 주로 방법에 관심이 있었고, 다른 두가지는 구상적인 공간과 생산에 각각 관심이 있었다. 기능주의가 독특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각 정확한 맥락의 각 문제의 고유한 특성은 유형을 특징짓는 공통 구조의 아이디어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의 피할 수 없는 결론으로써, 기능주의와 연관된 건축 이론은 고의적으로 유형학을 거부한다.
모순적으로, 유형학에 명확히 반대에 서 있는 기능주의 이론은 새로운 유형의 개념에 대한 초석을 제공했다. 이러한 유형에 대한 생각은 Taut, May, Stam 등등 CIAM 의회에서 활동했던 건축가들의 작업에서 보이며 수 많은 글에서 발견된다.
이 태도는 Alexander Klein의 작업에서 가장 명백하게 보인다. Das Einfamilienhaus에서 집의 모든 요소들을 시스템화 하려했던 그의 노력은 문제에 대한 명확하고 새로운 접근이었다. 기저의 구조로써 유형의 가치를 인지하고 건축 요소들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그는 유형을 과거의 피할 수 없는 생산물로 여기지 않고 유형을 변화하고 탐구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방위를 강조하고, 동선을 명확하게 하며, 치수를 확인함으로써, 요소들을 유형의 이성에 종속시키려 했다. 유형은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Quatremere의 특징과 학문의 얼어붙은 서술을 잃는 것처럼 보인다. 주거 유형들은 유동적이 되었고 사이트와 프로그램의 본질적인 요건에 맞게 조정될 수 있었다.
IV
도시에 유형을 사용하려던 근대 운동의 실패에 반하여, 전통적 도시의 형태적 구조적 연속성을 설명하려는 이론을 요구하는 일련의 이론들이 196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이론들은 도시의 연속적인 역사적 개발을 통해 도시를 형태적 구조로써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 관점에서, 도시는 아방가르드에 의해 제안된 단일의 예술적 이벤트도 산업적으로 생산된 오브제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단일 거주 건물에서부터 전체 도시까지 과정으로써 여겨진다. 따라서, Saverio Muratori의 Studiper una operate Storia Urbana di Venezia에서 형태적 구조(formal structure)로써 유형의 개념은 다른 스케일의 도시들 사이의 연속성을 서술하는데 중심적인 아이디어가 되었다. Muratori에게 유형은 역사를 통해 의미를 얻는 생물체처럼 도시 성장의 패턴을 이해하게 해주는 요소로써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는 역사적인 베니스의 개발을 개별적 요소들을 도시의 전체적인 형태와 연결시키는 개념으로써 보았다. 이 유형들은 도시의 생산자로써 보여졌고, 모든 다른 스케일들을 정의하는 요소로써 내재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Venice calli, campi, 그리고 corti는 내재적으로 서로 연관이 있는 유형적 요소들로 보여졌고, 각각은 그들 사이에서 유형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요소들과 전체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는 이 접근법은 건축을 이해하는 분석의 형태학적 방법을 제안했고, 이는 연속적인 유형학 연구의 개발에 토대를 형성했다. 1965년대에 이 접근법은 알도 로시와 그의 세력의 작업 들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복잡한 이론적 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 형태학적 변화의 강조는 유형을 명백하게 도시 분석의 범위로 한정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Quatremere에 의해 처음으로 제안된 유형의 개념안에서 새롭게 재개된 주제로 보완되었다. 또한 G. C. Argan의 Typologia에 의해 재개되었다. Argan은 Quatremere의 유형 개념이 암시하던 신 플라톤 주의를 회피하며 조금 더 실용적인 방법으로 그의 정의를 해석했고 초기의 유형 개념으로 돌아갔다. Argan에게 유형은 일련의 건물들의 형태와 사용(use)에 내재된 일종의 추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별이 현실에서 추론된 점을 감안하면 이 식별은 귀납적인 방법이다. Argan은 자신을 Platonic Absolute와 급진적으로 구분하였다(Platonic Absolute는 현실이 더 높은 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Argan에게 있어서 이것은 유형이 발생시킨 특정 형태적 일반성들의 중첩과 비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것은 일련의 건물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서로와 연관되게 하는 기본적인 형태였다. 이런 맥락에서 유형은 건축의 “내부의 형태적 구조”에 의해 정의된다. 하지만 만약 유형이 그런 전체 구조의 부분이라면, 어떻게 유형이 개별적인 작품들과 연결될 수 있는가? Quatremere에 의해 ‘모호하고 정의되지 않은 무언가’로 정의되었던 유형의 개념이 이 질문에 답을 준다. 건축가가 자유롭게 유형들에 노력을 들일 수 있는 이유는 두가지 순간들 때문이다, “유형학의 순간과 형태적 정의의 순간,” 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르다. Argan에게 유형학의 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 순간이며 특정한 관성의 정도를 암시했다. 과거와 사회에 필수적으로 연관성을 성립하는 이 순간은 다소 자연적으로 주어지며, 형태를 정의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개발되지 않는다. 하지만, Argan은 두 번째인 형태적 정의의 순간에 우선권을 주었는데, 비록 불가피하지만 유형을 건축의 우선적인 특징으로 보는 것이었다. 이 관점에서 그는 정통 근대 운동을 존중했다. 하지만 바로 그 유형의 개념이 근대 운동의 이상과 60년대에 자연적 연장이 되었던 디자인 방법론에 대한 연구와 반대되는 것이다.
방법론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는 것처럼, 만약 건축이 다양한 요구 사항들의 형태적 표현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런 요구 사항들과 현실 사이의 연관성이 정의될 수 있다면, 건축은 방법론의 문제로써 완전히 해결될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에서 형태는 완전히 정반대의 방법론의 생산물이다 – 그리고 이전에 이해되던 것처럼 방법론의 결과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Ernesto Rogers는 Argan의 의견을 따르면서 type-form의 개념과 방법론의 개념에 반대할 수 있었다. 그가 상정하듯이 건축에 있어 지식은 유형의 즉각적 수용을 암시한다. 유형은 모든 단일 이벤트들을 분류하고 특징화 하는 현실에 의해 정의되는 틀의 부분이다. 이 체계 안에서, 건축가은 일한다; 그의 작업은 과거에 대한 지속적인 논평이며, 그의 작업이 기반하는 이전의 지식이다. Rogers의 이론에 따르면, 디자인 과정은 건축가가 착수하고 있는 컨텍스트 안에 내재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형의 식별이다.
물론, 그런 유형의 바로 그 식별은 건축가가 사회와 불가피한 연관성을 설립하는 것의 장점에 의한 선택 사항이다. 필수적으로 “모호하고 정의되지 않은” 유형을 하나의 행위로 변환시킴으로써, 그의 작업은 구체적인 컨텍스트와 특정한 일관성을 가진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작업은 더 일반적인 유형의 맥락화에 기여한다. 따라서 프로젝트의 개발은 추상적 유형에서 정확한 현실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다른 의미로 유형의 개념을 통해, 건축은 건축가가 방법론적 접근법에 의해 요구되는 것과는 꽤 다른 방법으로 디자인 과정을 착수하도록 만든다. 알도 로시는 60년대에 Muratori의 형태 변화적인 접근과 Argan과 Rogers의 전통적인 접근 방법을 Quatremere를 통해 통합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는 더 영민한 유형의 문제적 개념을 소개했다.
Rossi에게 건축적 형태의 논리는 기억과 이성의 병치에 근거한 유형의 개념에 놓여있다. 건축이 인류가 처음으로 건물을 통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설립했던 그 첫번째 순간에 기억을 보유하는 한에는, 유형은 형태의 이유를 보유한다. 유형은 형태의 내부적 논리를 정의하고 보유하며, 이는 기술이나 프로그램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실, 유형은 “기능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로시의 건축 개념에서, 복도(corridor)는 우선적인 유형이다; 이것은 중립적으로 개인 주거와 학생 기숙사 또는 학교의 프로그램에 모두 사용가능한 중립적인 것이다.
도시 혹은 도시의 건립자들은 이것의 기억을 잃어버려왔고 그런 우선적이고 영구적인 유형들의 가치를 잊어왔기 때문에 로시에 의하면, 오늘날 건축가의 책무는 그들의 회복에 기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따라서 침묵의 목격자인 로시 도시는 시간이 얼어붙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다. 만약 이것이 특정 장소에서 인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것은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이상적인 도시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며 이 도시는 다소 불순한 유형들로 가득 차 있으며, 건축의 역사는 이것의 역사 이외에는 무엇도 될 수 없다. 건축적인 학문의 원칙들은 도시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자치권의 증거들은 역사를 통해 유형들의 영구성에 의해 주어진다. 그러나 유형들을 그래픽적으로 담고 있는 이상적 도시 안에서 이런 유형들의 조용하고 자치적인 이미지들은 그들의 현실과의 관계에 대한 물음을 불러일으키고 따라서 그들의 실체화와 맥락화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로시의 유형들은 오직 그들 자신들과 그들의 이상적인 문맥들과만 소통한다.
하지만 다른 비평가인 Alan Colquhoun은 건축과 사회 사이의 진짜 의사소통의 가능성이 반드시 유형의 개념에 의해 불가능하게 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특정 현실은 중점적으로 유형에 관심을 가지며 이는 의사 소통의 과정이 가능해지는 것이 유형의 개념을 통해서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Colquhoun은 과거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들과 연관되지 않은 건축의 가능성을 거부하면서 건축은 전통적인 학문으로써 이해하였다; 하지만 정확히 바로 그 전통성 때문에 유형은 제 멋 대로이며 따라서 자발적 변화에 취약하다. 다른 말로 하면, 즉, 건축가는 의미를 통달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의 변혁의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Colquhoun의 명료함의 지지로써 유형에 대한 개념은 유형학이 관찰될 수 있고 이 관점에서 재발견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나타낸다: 이상적인 관점에서 건축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이 사회와 건축 사이의 연관성을 설립하도록 할 수 있다. 유형을 수용하든지 거부하든지, 건축가는 따라서 개인의 삶이 그의 사회와 연관되는 그 의사소통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건축가는 따라서 유형의 세계에서 그의 “자발적 결정들”을 만들고 그리고 이 “자발적 결정”들은 건축가의 이상적 위치를 설명한다. 그가 유형에 착수하면서, 그의 생각과 위치는 유형에 통합된다. 만약 건축 작업이 이 의사소통을 위한 길을 설립하기 위해 유형이 필요하다면, 유형은 디자인 과정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 의사소통: 건축이 궁극적으로 놓이는 현실과 창작의 순간, 그리고 과거와의 갭 사이를 피하기 위하여.
이런 유형에 관한 태도는 역사에서 건축적 오브제의 새로운 의미의 레벨을 상정한다, 유형을 공공 영역에 놓게 하며 그들의 사회 안에서의 통합적인 위치, 그리고 자율적인 오브제가 아니도록 한다, 하지만 역사 그 자체의 과정에 의해 주어진 삶의 요소들로 본다. 따라서, George Kubler의 단어들에서, “역사의 시간은 너무 거칠고 단순하여 물리학자들이 자연적 시간을 제시한 것처럼 고르게 분포할 수 없다; 무한한 수의 유형들의 셀 수 없이 많은 형태들에 의해 점령된 바다와 같다.”라고 말한다. 예술의 역사, 그리고 건축의 역사는 이런 유형들의 “삶”의 서술이다.
V
최근 이루어진 유형 개념의 재발견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이 근대 건축에서 활성화된 사실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현실과 완전히 다른 이미지들과 아이디어들이 계속해서 개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의 주된 조건으로써 기원을 찾은 루이스 칸의 연구가 Quatremere 아이디어의 재탄생을 가능하도록 생각하게 만들면서, 이 태도가 그의 추종자들의 작업에서 반드시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 기원으로 돌아가려는 시도의 언어를 단지 모방하면서도 이 탐구 자체를 존중하지 않는다. 또한, 유형 개념에 대한 구조주의자들의 영향이 최근 Neo-rationalist 운동과 연결된 많은 작업들에 만연하게 존재하지만, 그들이 대응하는 컨텍스트에 논증적으로 반대되는 새로운 유형학적 태도의 존재를 확정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은 중요한 질문을 나타낸다. 만약 그들이 단지 전통적 도시의 성장을 설명한다면, 그런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엄격히 유형학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가? 하지만 그들은 오직 “유형학적 관점”을 도시에 제공할 뿐이다: 그들은 유형의 개념을 사용하여 도시 자체를 짓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전에 유형들에 의해 해결되었던 도시와 장소, 도시와 시간의 관계는 깨졌다. 지금 대안적으로 오직 가능한 것은 전통 도시의 재생산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유형학은 단순히 구성의 메커니즘으로써 이해된다. 오늘날 소위 “유형학적” 리서치라고 불리는 것들은 단지 이미지의 생산 혹은 전통 유형학의 재구성일 뿐이다.
가장 전통적이고 특징적인 관점에서, 연속성의 “불가능”, 그리고 따라서 유형의 회복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강조에 의해 강조될 수 있다. 로버트 벤튜리가 그 예시가 될 수 있다. 그의 houses in Nantucket에서 wooden American house의 일반적인 이미지가 명쾌하게 보인다. 벤튜리가 외부에서는 토속적인 집의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한 편, 내부의 구조는 과거의 기억이나 과거의 집들의 유사성의 결핍을 보인다. 따라서 이미지에 의해 정의된 집들은 그들의 일반성에 의해 다양한 특징적 요소들을 보인다, 또한 이 요소들은 거의 표준적이고, 그들은 형태적 구조와 어떤 명백한 관계도 가지지 않는다. 그는 그들을 알려진 재료들로써, 그들 자체에서 전체로, 연속적인 형태적 구조와 어떤 연관성을 만들 필요도 느끼지 않은 채 다룬다.
벤튜리에게 유형은 이미지이다. 그리하여, type-image는 구조보다도 인지와 더욱 관련있다.
따라서 건축적 역사와 명확하게 연결된 요소들이 단일화된 이미지에서 보여지나, 요소들 간의 고전적인 상호 의존성이 결정적으로 사라진 건축이 나타났다. 내부의 형태적 구조로써 유형은 사라졌고, 단일의 건축적 요소들로써 유형이 type-image의 가치를 만들었으며, 각각은 독립적인 요소로써 단일성 안에 사용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사실은, 형태적으로 독립적인 조각들로 산산히 조각난 구조와 맞닥뜨린 사람이 있다. 벤튜리는 몇 세기동안 건축을 지배하던 유형학적 전체성을 고의로 부러트렸다. 그러나, 그는 건축의 이미지는 부서진 거울에 다시 등장했다. 과거에 자연의 서술이자 원시적 예술이었던 건축은 다시 그렇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델(model)로써 건축 그 자체이다. 건축은 실제로 원시적 예술이며, 지금은 그 자체의 모방이며, 분열되고 비연속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로시의 건축은 이 불연속성에 반대하여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형의 단일화된 형태적 구조는 사라졌다. 로시는 아주 세련된 방법으로, 우리의 유형에 대한 지식 혹은 무지를 상기시킨다; 그들은 쪼개진 것처럼 보이나, 예상치 못한 힘을 지니고 있다. 로시나 벤튜리의 작업을 보면, 불안한 생각이 든다: 어쩌면 18세기 말 유형의 개념이 건축 이론 안에서 명확하게 서술되었을 때는 아마 유형 존재의 현실, 역사에서 유형의 전통적 실행이 마침내 가능하게 된 때가 아니었지 않았을까?
과거에 유형의 지속적 사용을 가능하게 했던 형태, 행위들, 그리고 구조의 연속성은 근대 사회에서 심각하게 부러졌다. 이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적인 그리고 넓게 공유된 의견 안에서 현재의 세상을 특징화하는 믿음의 일반적 부족은 유형의 수정을 지지하지 않는다.
유형은 더 이상 내부적 이상과 외부적 제약들의 대치를 정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형태적 구조는 외부적 환경들(기술, 사용, 등등)의 도움 없이 그 스스로를 지지해야 하기 때문에, 건축이 그 자체를 중시하고 건축의 역사에 의해 제공된 다양한 이미지들 안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처음엔 도시, 그리고 건물 그 자체였던 물체들은 한 때 부러지고 파편화되면서 먼 기억의 이미지들 안에서만 전통적 학문과 함께 유대를 맺는 것처럼 보인다. 건축의 오래된 개념을 회복하려던 전통적 유형학적 시도는 크게 실패했다. 따라서, 아마 오늘날 형태를 마스터 해야 하는 건축가의 수단은 오롯이 형태를 없애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아직 남아있는 문제는 오늘날 유형에 대해 말하는 것이 유효한가? 이다. 직접적으로 오래된 정의를 새로운 상황에 대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유형 개념의 흥미와 가치가 완전히 거부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형의 질문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건축적 오브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건축적 오브제는 더 이상 하나의 고립된 이벤트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는 오브제는 이것의 역사와 이것을 둘러싼 세계에 의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오브제는 이것의 생명을 이것의 특정한 건축적 조건들의 덕목에 의해 다른 오브제로 확장시키고, 그리하여 일반적인 형태적 구조들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상대적인 이벤트들을 만들어 낸다. 만약 건축이 우리가 건축의 단일성과 그들의 공유적 특성들을 말할 수 있게 해준다면, 유형의 개념은 가치에 속한다, 비록 오래된 개념이 관계의 영리한 메커니즘이 관측 가능하며 유형적 설명을 제시할 수 있는 현대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유형의 개념을 수용할 수 있도록 수정되어야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