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야기 2

by 박래여

돈이 사람을 버린다는 말이 있다. 명구 아버지가 그렇다. 천 원 이천 원이란 돈도 큰돈으로 여기며 우직하게 농사만 짓던 무지렁이가 어느 날 갑자기 억대의 목돈을 만지자 획 돌아버렸다. 정신이 온전할 리 없었다. 또한 돈이 있는 곳에 꼬드기며 해작질 치는 족속이 따르기 마련이다. 명구 아버지처럼 꼭지 덜 떨어진 사람이 그 돈을 간수하기란 애당초 그른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 돈이 우떤 돈인 데. 인자사 말 하나마나 거마.”

“명구 아부지도 명구 봐서 정신을 차리야 할낀데 참말로 걱정이네 예.”

“인자 다 틀린 일이다. 우리 어무이가 그 버릇 못 고친단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맞는 갑다. 그 가시나들 밑구녕에는 꿀단지가 발린 건지 붙었다 하모 미치삐니 내가 무슨 수로 막것노.”

문자까지 써 가며 하소연을 하는 여자의 표정이 너무나 절실했다. 어찌 보면 체념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사는 일에 이골이 난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 같기도 하다. 여자는 남의 일처럼 말하고 있었다. 남자의 바람기라만 할 수 있을까. 여자가 한 밑천 잡아서 도망가 버리면 집으로 기어 들어와 천정만 보고 빈둥거리다가 다시 돈 될 만한 것이 있으면 팔아서 딴 여자 찾아 달아나 버린다는 남자를 무슨 수로 예전의 우직하고 부지런한 농사꾼으로 돌려놓을 수가 있을까.

“말도 마라. 내 손가락에 끼 주었던 한 돈 짜리 결혼반지도 빼다가 그 년들 갖다 준 인간이다.”

명구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이웃과 친구의 도움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 여자는 결혼반지를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며 좋아했다. 갈고리 같은 손가락에 낀 누런 금반지가 그 여자에겐 너무도 소중한 보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여자의 소박한 행복이 그다지 길지 않았다는 것이 늘 마음 아프다. 그때 여자의 집은 다 허물어진 오막살이였다. 돈이 생기자 집부터 새로 지었다. 날아갈 듯 반듯한 양옥집 지어 이사 들고, 운전 면허증도 없는 사람이 1톤 트럭까지 사서 몰고 다니고, 마구간에는 소가 스무 마리가 넘게 묶여 있었다.

“우리도 인자 부자다.”

만날 때마다 자랑하던 여자의 얼굴은 참으로 환했다. 그 시절 여자는 행복했다. 말끝마다 우리 남편이 부지런하고 잘 생기고 멋있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남편 자랑을 했었다.

그러나 지각 있는 주위 사람들은 명구의 장래를 위해 정기예금이라도 들어 놓아야 할 그 돈을 너무 헤프게 써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했었다. 그 우려가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었다. 남의 말에 속아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동화가 있다. 한꺼번에 부자가 되려고 했던 어리석은 사람을 일깨우는 동화 속의 주인공이 명구 아버지였다. 명구 아버지는 귀가 얇아지면서 친구라는 허울로 꼬드기는 몇 사람의 농간에 놀아나기 시작했다.


수중에 돈이 있으니 힘든 들일 하기보다 노닥거릴 자리나 술자리를 찾기 쉬웠고, 읍내까지 진출했다. 돈 냄새를 맡은 다방이나 술집 아가씨들이 찰싹 달라붙어 지분 냄새를 풍기며 유혹을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어수룩한 명구 아버지는 자신을 상전처럼 받들면서 온갖 아양을 부리는 여자들에게 속아 넘어가더니 여자 맛을 들이게 되었다. 자기 아내밖에 모르던 남자가 딴 세상을 만났던 것이다. 백만장자라도 된 것처럼 돈을 뿌리기 시작했다. 호주머니에 돈만 두둑하면 예쁜 여자들이 오빠 오빠하면서 달라붙었다.

명구 아버지는 다방이나 술집 여자들에게 돈을 밀어 넣기 시작했고, 그 여자들의 온갖 甘言利說에 속아 살림을 축내기 시작했다. 읍내에서 명구 아버지가 호구(괴통)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한 살림 뜯어내려는 불나방들이 주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명구 아버지는 달라졌다. 금쪽같던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일 줄이야. 세상은 온통 예쁜 여자 천지였고 여자들은 그를 왕처럼 대우했다. 돈만 뿌리면 뭐든지 대령했다. 여자들은 하나 같이 이혼만 하면 자신이 들어와 살겠다면서 사탕발림을 해서 돈을 뜯어냈다. 그럴 때마다 마구간은 비어 갔고, 저금통장은 바닥나고, 논마지기도 날아갔다. 그러다가 그 여자들은 적당히 제 실속만 채우면 도망을 쳐 버렸다. 한동안 같이 살던 다방이나 술집 여자를 찾아 헤매다가 다시 다른 여자에게 빠졌다. 최근에 연상의 여자를 만났다. 우리 면 소재지에 다방을 차려주고는 아예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가끔 길에서 명구 아버지가 그 다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곤 했다. 다방 앞에서 아버지를 찾아 간 명구를 오토바이에 태우는 것을 보기도 하고, 명구 어머니를 태우고 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몇 달 후에 그 다방 여자도 명구 아버지 몰래 다방을 딴 사람에게 넘기고 날랐다는 소문을 들었다.

결국 명구 어머니는 읍내의 음식점에 취직을 했다. 온종일 남의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 놓은 돈은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은 남편의 사탕발림과 모진 매 맛에 탈탈 털어 주고, 모자라는 돈은 남에게 빌려서라도 마련해 주어야 매 타작을 면했다. 손에 돈만 쥐면 남편은 집을 나갔다. 행복을 찾아서.

“인자 그 돈도 없고 빚만 는다. 우리 명구가 딱해 죽것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명구는 초등학교 6학년인데도 아직 제 이름 자도 쓸 줄 모른다. 그 여자는 집에서 이십 리가 넘는 초등학교 등하교 길을 진 날 갠 날 없이 명구를 업고 다녔다. 시간차를 놓쳤을 때는 아이를 업고 책가방을 들고 걸어 다녔다. 장한 어머니 상을 받아도 몇 번은 받아야 마땅할 여자다. 명구가 잘 자라길 바라는 것은 기우일까. 들리는 소문에는 삭수가 노랗단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다. 자기 어머니에게 목발을 휘두르고 쌍욕을 예사로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정에서 배우는 것이라곤 욕설과 싸움, 아버지의 주먹질과 어머니의 악다구니뿐이니 안 봐도 비디오다. 그녀에게 슬쩍 물었다.

“명구가 아지매한테 욕도 하고 때리기도 한담서요?”

“우리 명구가 아직 철이 안 나서 그런 기라. 그 아가 그래도 심성 하나는 곱은데. 에미 생각은 끔찍이도 한다이. 그 성치도 않은 몸으로 에미를 마중 온다 아이가.”

그 아이는 의족에 의지하고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사방천지 안 가는 곳이 없다. 인사성도 밝았다. 그 아이가 자기 어머니께 패악을 부린다니.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하던 나도 가슴이 무너졌다. 어쩔거나. 진짜 어쩔거나. 지금이라도 누군가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누가, 누가. 나라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아이고 깜빡했네. 우리 아들이 온다 캤는데 내가 이라고 있다니. 내 먼저 간다.”

갑자기 그녀는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축협 문을 밀고 나갔다. 나는 멍청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명구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눈은 환하게 빛나고 표정까지 환했다. 비 온 뒷날의 햇살처럼 밝아 보였다. 모정이란 그런 것일까. 자식을 위해 혼신의 힘으로 사는 그 여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날 이후 그녀를 못 보고 그녀의 아들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본 아이의 눈빛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이가 달라진 것이다. 예전의 싹싹하고 밝았던 명구가 아니었다. 대인기피증에 걸린 아이처럼 사람을 피하고, 우울하고 지쳐 보였다. 대합실 문을 나서며 휙 돌아보았을 때의 눈은 날카로웠다. 어둡고 긴 동굴 속에서 빛나는 박쥐의 눈처럼 쪽 찢어진 그 눈은 음침해 보였다. 키는 훌쩍 자라 제 어미보다 클 것 같았지만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처럼 기운 없고 혈색이 나빴다. 그 아이가 한쪽 겨드랑이에 끼고 걷는 목발과 비슷해 보인 것은 순간의 착각이었을까. ‘정말 아픈 아이 같았는데. 다독거려서 병원에 데리고 올 걸.’ 마음이 언짢았다.

꽃샘 다방 주인 여자의 말이 귀에 뱅뱅 돌았다.

“순 도독 놈이라 예. 저거 부모가 있다모 저런 아를 말라꼬 밖에 돌아댕기고로 하까 예? 한 번만 더 내 손에 걸리모 그땐 경찰서에 넘길 생각입니더.”

왜 명구는 할머니와 산다고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시간에 읍내를 배외하게 되었을까. 또 돈을 훔쳤다지만 굳이 그 다방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과자 가게나, 학용품점 등이 거리에 즐비한데 유흥가에 위치한 그 다방까지 간 이유는 무엇일까. 돈이 필요하거나 배가 고프면 제 어미를 찾아가면 될 일이었다. 코앞에 여자가 일하는 음식점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 아이가 절뚝거리며 다녔을 읍내 거리를 새삼스럽게 둘러보았다.

길 양옆으로 형형색색의 물건들이 진열된 상가와, 싸구려 옷이나 과일 채소 등을 펼치고 앉은 잡상인들의 좌판을 훑어보며 지나다가 그 아이가 도둑질을 했다는 다방이 있는 골목을 기웃거려 보았다. 숯불갈비, 나이트클럽, 술집 등의 간판이 햇살에 번쩍거렸다. 나는 내친김에 그 다방 앞을 지나 샛골목으로 빠져 시장에 들렀다. 남편 좋아하는 삼겹살을 샀다. 돼지고기가 농약 해독에도 좋다니까. 지글지글 구워 줘야지. 농약 치는 것을 지독스레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무 농약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시부모님의 허락이 안 떨어지기 때문이다. 효자 아들은 부모 말씀을 거역할 수 없다. 이웃 논의 병충해가 몽땅 우리 논으로 몰려온다니 울며 겨자 먹기로 농약을 친다. 내 몸이 불편하니 남편을 도울 수가 없어 미안하다. 줄이라도 잡아줘야 남편이 수월할 텐데.

나는 서둘러 시장 보따리를 들고 병원을 찾았다. 단골 병원은 읍내의 번화가를 지나서야 있다. 건물 3층에 있는 병원 계단을 올라가는데 또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날은 초등학교 운동회 날이었다. 학부형도 아닐 때지만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날은 면민 잔칫날이다. 나도 운동회 구경을 갔었다. 거기에서 그 여자를 봤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면 활짝 웃으며 먼저 아는 척하던 여자, 그 여자가 아이를 업고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와 아이는 3등을 했다. 장했다. 아니 아름다웠다. 옆에서 손뼉을 치는 당감 골 석촌 아주머니께 물었다.

“저 아이가 어쩌다 저렇게 됐어요?”

“참 안 됐제? 저 아이가 다섯 살 때였을 끼라. 가실이었어. 타작이 한창이었제. 우리도 그날 콤바인으로 타작을 하던 중이었제. 갑자기 부르릉 웨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집채만 한 트럭이 길에서 튀어나와 언덕 아래로 굴리는 기라. 우짜꼬 소리도 안 나오더마. 나는 나락 푸대를 놓쳐 삐고 말았제. 나락이 논바닥에 줄줄 흐르는 것도 몰랐든 기라. 올매나 놀랬든지 다리가 달달 떨리더마. 순식간에 쾅하는 대포 터지는 소리가 났어. 덤프트럭이 논바닥에 처박히데. 그날 그 집도 나락을 베고 있었어. 명구 어마이 아바이는 찻길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나락을 베고 있었고, 논둑길에 서 있던 경운기 우에서 그 아는 놀고 있었제. 경운기 가차이에서 할배가 나락을 베고 있었어. 하필이면 그 트럭이 경운기를 들이박은 기라. 경운기는 논바닥으로 떨어짐시로 아이와 할배가 깔린 기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참 못 보것더마. 할배는 즉사하고, 아는 병원으로 실고 갔지만 살까 시뿌잖더마.”

그 아이는 살아났지만 다리 하나를 완전히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형제는 있습니꺼?”

“없다 더마. 저거 어메가 좀 모지랜다꼬 저 머스마만 놓고 아를 못 놓고로 해삣다더마. 참 얄궂은 운명이제. 하필이면 그 차가 거서 굴릴 기 머꼬. 길은 좁은데. 커다란 차들이 좀 많이 댕기야제. 차들이 우찌 그리 쌩쌩 달리는지. 거기가 내리막길이고 구불구불 하자네. 몇 년 전에도 자장구 타고 가던 할배가 사고로 다쳤다 아이가. 사고 다발 지역이람서 단속이 허술하니 그런 큰 사고가 끊이지 않는 기라. 그 아가 사람 구실 제대로 할랑가 모르것더마. 그 에미가 무지 고생 하제. 안됐어. 생목심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고 나니 살아도 사는 거 같지가 않더마. 운전사들이 좀 천천히 댕기모 그런 일은 안 생길 낀데. 돈하고 생 목심을 바꾼들 무슨 소양이 있것노. 돈이 쟈 아베도 베리 놨는데. 쯧쯧.”

몇 년 뒤 나도 학부모가 됐다. 명구는 고학년이 되어있었다. 학교 행사에 가면 자연스럽게 그 여자와 말을 트게 되었고, 그 여자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되었다. 바람난 제 남편을 찾아 술집이랑 다방을 뒤지기도 하고 못 나가게 막았다가 병원에 입원을 할 정도로 두들겨 맞기도 한다는 것이다. 화장이라곤 해 본 적이 없던 여자가 남편의 바람기를 막아 보려고, 어울리지도 않게 파운데이션을 덕지덕지 바르고, 빨간 립스틱에 머리를 바글바글 볶아서 멋을 내고, 옷이며 구두를 신고 멋쟁이 흉내를 냈지만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만 샀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몸빼(통바지)에 수건을 쓴 수수한 모습이 오히려 그 여자다웠다.

그 집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이웃 어른들과 여러 선후배, 친구들이 그 여자의 남편을 붙들고 알아듣게 훈계도 하고, 달래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아지는 기색은 고사하고, 갈수록 태산이었다. 결국엔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야 정신을 차릴 런지. 이제 아이도 머리가 굵어져서 알만한 것은 알 나이다. 그 아이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병원에 들어서자 선풍기가 윙윙 돌았다. 선풍기 바람을 유난히 싫어하는 나는 의료 보험 카드를 접수처에 디밀고 구석에 가서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아침나절인데도 사람들이 대기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모두들 농가에서 잔뼈가 굵은 구릿빛 얼굴이다. 농부 증을 주사 한 대에 의지하며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다. 얼굴이 노리끼리한 할아버지, 퉁퉁 부은 아주머니, 쭈글쭈글한 얼굴에 검버섯이 까맣게 앉은 할머니는 체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연신 끙끙댔다. 온 만신이 아프다며 간호사를 보고 자기 먼저 봐줄 수 없느냐고 사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 표정만은 밝다. 대 여섯 살짜리 아이들은 그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의자 위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친다. 한 아이가 콧물을 훌쩍거리며, 기침을 캑캑하면서 열에 벌겋게 들뜬 얼굴로도 호기심을 누르지는 못하고 천방지축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괜스레 콧등이 찡했다. 두 다리들이 유달리 튼튼해 보였다.

“너 몇 살?”

나는 걸상 위에 올라서서 재주를 부리는 한 아이에게 물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위험하다고 야단을 치지만 아이는 헤헤거리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섯 살!”

아이는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펴 보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무척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장난이 너무 심해서 걱정이라 예. 어찌나 천방지축인지 맘을 놓을 수 없어예.”

“아이들은 다 그렇지 예. 참 귀엽게 생겼네 예.”

나는 아이의 볼을 살짝 문질러 주었다.

내 앞에 온 사람들이 하나 둘 병원을 빠져나가고, 내 뒤에 온 사람들이 또 그만큼 줄을 서는 것을 보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또 무리하셨군요?”

구면인 의사는 언제 보아도 늘 웃는 얼굴이다. 내 표정만 보아도 왜 왔는지 안다는 듯이 진료 기록 차트를 들친다.

“고추를 땄더마 무리가 갔는지, 허리가 결려서 통 잠을 잘 수가 없습니더.”

허리 통증으로 근 3년을 고생하는 나는 농촌 아낙네로선 자격 미달이다. 침도 맞고, 찜질도 하고, 양약, 한약 등, 요통에 좋다는 민간요법까지 다 동원했지만 조금 더 했다 덜 했다의 차이일 뿐 차도가 없다. 일 안 하고 편하게 살아야 낫는 병이라는데, 한시도 손재고 있을 여유가 없는 농촌 아낙이니 만성 농부증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되도록이면 허리를 구부려서 하는 일은 삼가하십시오. 저녁에 뜨끈뜨끈한 물로 찜질을 자주 하시고, 목욕도 자주 하는 것이 피로 해소에 좋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의사에게 묵례를 하고 막 주사실로 향하는데 진료실 밖에서 서너 사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왁자지껄한 소음이 일더니 ‘선생님, 급한 환잔데 예?’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와 ‘빨리 수술실로,’ 하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주사실 옆을 지나는 것이 보였다. 삼각 고쟁이가 보일락 말락 한 짧은 치마에 끈 하나 달린 속옷인지 겉옷인지 분간이 안 가는 웃옷을 걸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여자 둘이서 한 여자의 머리를 감싸고 가는데, 그 여자의 어깨 위랑 머리를 덮은 수건이 벌겋다.

주사실에서 벽 하나를 둔 안쪽이 수술실이어서 새된 여자들 목소리는 잘도 들렸다.

“아야야 아이고 나 죽네.”

“야, 가시나야 아프다고 엄살 좀 작작 피워라. 대가리가 이 지경이 되도록 너는 가만있었나? 그 자식을 그냥 뒀어? 병신이 개지랄한다더니. 목발을 작신 부셔야지. 그래 가만히 맞고만 있었어?”

“아야 좀 살살 하이소. 내 있는 곳을 알고 저거 애비 찾아왔는데 어쩌라고. 다짜고짜 목발을 휘둘러 대는데. 저거 아버지 돌려달라고 악을 써는데. 사실 나도 그 머슴애랑 그 어미가 불쌍해서 그 인간 모르고로 소리 소문 없이 떠날 생각이었는데.”

“하이 고오. 열녀 났네. 내 코가 석잔데 남의 코 생각해 줄 여가가 어디 있다고. 너는 그 정이 문제라. 그 촌닭이 뭐가 좋다고. 그 촌닭이 그래도 지 새끼라고 싸고도는 거 보니 엊저녁에 먹은 술이 확 튀 나올라하더라. 치료비나 왕창 받아낼 궁리나 하자.”

“그 인간도 알고 보니 불쌍한 기라. 순박하잖아.”

“참 가관이다. 야. 쥐가 고양이 생각해 주는 기가? 고양이가 쥐새끼 생각해 주는 기가?”

“좀 조용히들 하셔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쨍 울리더니 잠잠해졌다.

나는 간호사에게서 이틀 분의 약이 든 봉지를 받고, 진료비를 낸 후, 간간히 수술실에서 들리는 ‘아야야’ 소리를 들으며 병원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한 여자가 다급하게 계단을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어머 또 만났네 예.”

꽃샘 다방 주인 여자가 알은체를 했다.

“와 그리 급하십니 껴?”

“내가 몬 살아 예. 그 아가 글쎄 우리 다방 아가씨 머리를 목발로 터잤어 예.”

아하. 나는 어서 가 보라고 손짓을 하며 거리에 나섰다. 왠지 한바탕 시원하게 웃고 싶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듯이 후련했다. 나도 빨리 집에 가서 삼겹살이나 지글지글 구워 놓고 소주잔도 곁들여 놓고 남편을 기다려야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잿빛 구름이 슬금슬금 뭉치고 있었다. 단비나 한 줄기 시원하게 쏟아져주려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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