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딴살림 1

by 박래여

<단편소설>

아내의 딴살림



아내가 왔다. 나는 아내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아내의 몸에서는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난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아서 아내의 상체를 끌어당겨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아내의 출렁거리는 가슴이 내 얼굴에 닿는다. 나는 아내의 웃옷 자락을 헤쳐 한쪽 젖통을 드러낸다. 젖꼭지에 입을 댄다. ‘아이 간지러.’ 아내는 상체를 들고 탐스러운 젖통을 옷 속으로 집어넣는다. 나는 가만히 아내의 눈을 본다. 아내의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을 본다. ‘우지마.’어눌한 내 목소리도 금세 잠겨 든다. 아내는 내 얼굴을 쓰다듬어보고 내 이마에 입술을 댄다. ‘많이 보고 싶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 그래도 애들 밥은 해 줘야지. 다음엔 열 밤만 자고 올게.’ 나는 또 고개를 끄덕이다. ‘반찬 없지? 반찬거리 사 왔어. 반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갈 테니까 꼭 챙겨 먹어. 알았지?’ 나는 고개를 세게 흔든다. ‘시어. 가지 마. 시어. 가지 마.’ 나는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아내는 가만히 내 등을 쓰다듬는다. ‘착하지. 열 밤만 자고 꼭 올게. 당신은 착한 사람. 내 말 잘 듣지?’ 나는 착한 아이답게 고개를 끄덕인다. ‘병수 씨 논은 다 갈았어?’ ‘응’ ‘힘들었지?’ ‘응’ ‘자, 착한 우리 자기, 가만히 누워 있어.’ 아내는 자신의 허리에 꽉 감겨 있는 내 팔을 풀어 방바닥에 내려놓고, 내 머리를 살그머니 들어 방바닥에 놓는다. 옆에 있는 베개를 끌어다 내 머리를 받쳐준다. ‘누워 있어. 잠 오면 자구.’ 아내는 다시 내 볼에 입술을 댄다. 아내의 입에선 달콤한 더운 김이 오른다. 아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아내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내 볼을 쓰다듬던 아내의 손은 반듯하게 누운 내 목에 내려온다. 목을 빙 둘러 더듬어 본다. 다음엔 내 웃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쓰다듬는다. 아내의 보드라운 손에 내 젖꼭지가 빳빳하게 선다. 아내는 젖꼭지를 아프게 꼬집는다. ‘이건 아직 살아있네.’ 아내의 입에서 한숨이 터진다. 나는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스르륵 눈을 감는다. 아내는 살그머니 내 배꼽 밑으로 손을 밀어 넣는다. 헐렁한 바지 끈이 탱탱하게 허리를 조인다. 내 물건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아내의 입에서는 다시 긴 한숨이 나온다. 아내는 내 물건을 조몰락조몰락하다가 획 손을 뺀다. 아내는 땅이 꺼질 듯 긴 한숨을 쉬고는 가만히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는 기척이 난다.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자꾸만 멀어진다. 그래도 나는 눈을 뜨지 않는다. ‘탁’하고 방문이 닫힌다.


아내는 부지런히 밑반찬을 만드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쇠고기 장조림에, 갈치 양념 구이를 해서 자잘한 플라스틱 통마다 담아 놓을 것이다. 지난번 아내가 만들어 주고 간 반찬을 나는 오래전에 다 먹었다. 열 밤만 자고 오겠다던 아내는 내가 손가락을 세다가 잊어버리고 다시 세고, 또 세어도 오지 않았다. 나는 다 비어버린 반찬통을 깨끗이 씻어 싱크대 찬장 안에다 차곡차곡 챙겨 넣어 두었다. 아내는 금세 그것들을 찾아내 반찬을 담을 것이다. ‘그동안 밥도 안 해 먹었구나. 밥 굶지 말라고 했는데. 어떡 허니. 우리 자기.’ 아내의 구시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다 끊어진다. 아내는 자정이 넘도록 음식을 만드느라 지지고 볶을 것이다.


달그락거리는 그릇 부딪는 소리와, 좌르르 물 흐르는 소리가 끝없이 들린다. ‘세상에! 냉장고가 텅 비었네. 어머니는 너무 하시지. 혼자 사는 아들 밑반찬이나 좀 챙겨다 주시지 않고. 이러니 내가 맘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 화가 난 아내의 목소리가 방문 틈으로 바람처럼 미끄러져 들어온다. 나는 몸을 옹그리고 눈을 더욱 꼭 감는다.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가 거칠다. 조금 있으니 고소한 음식 냄새가 풀풀 날려 온다. 나는 음식 냄새를 맡아도 식욕이 없다. 화가 나도 헤벌쭉 웃는다. ‘쯧쯧 어쩌다가.’ 동네 사람들이 나만 보면 혀를 차면서 불쌍하다고 한다. 나는 불쌍하지 않은데. 사람들은 나보고 자꾸만 불쌍하다고 한다. ‘정신은 멀쩡한 장골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을꼬.’ 나는 그 말뜻을 모른다. ‘고년! 천벌 받지. 째깬할 적부터 끼가 좔좔 흐르던 거라. 저 양반 성할 때는 올매나 사이가 좋았니. 신랑각시가 죽고 못 살았던 거라. 저리 될 줄 우찌 알았노 말이다. 사람이 살다 보모 벼라 벨 일도 다 생기는 거라.’ 나는 그냥 헤 웃는다. 나를 불쌍히 여기고 아내 욕을 하지만 화가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안다.


“따르릉”

마루에 놓인 전화벨이 울린다. 아내가 받을 것이다. 나는 시계를 본다. 작은 초침은 12에 가 있고, 큰 초침은 11에 가 있다. ‘응, 알았어. 다 됐어. 한 십분 후에 봐. 자기나 조심해. 동네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옆에는 자? 좋았겠네.’ 아내의 목소리가 새치름해진다. 비꼬는 목소리가 나는 참 듣기 좋다. ‘그래 알았다니까. 몰라. 잠들었겠지. 자는지 확인해 보고 잠들었으면 나갈게. 천천히 나와. 나도 좀 챙겨야지.’ 아내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환하게 들린다. 일부러 귀를 열지 않아도 참 잘 들린다. 내 귀는 무척 예민하다. 지난 3년간 가장 발달한 게 있다면 내 귀일 것이다. 아내는 서둘 것이다. 아내는 발자국 소리가 부지런해진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 아내는 내일 아침 밥상을 차려놓고 상보로 얌전하게 덮어놓을 것이다. 밥은 밥솥에, 국은 국솥에. 반찬은 냉장고에 등 자잘한 품목을 적어 냉장고 문 앞에 붙여 빨간 하트 모양의 접착제를 붙여 놓을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변함없이 그래 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자기 자?"

아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가볍게 코까지 골며 자는 척하고 있다. 아내는 내 몸을 흔든다. 나는 찌무리(잠투정)를 하는 것처럼 끙 앓으며 돌아눕는다. 아내는 다시 내 볼에 손을 댄다. 물기가 묻은 아내의 손은 차갑다. 아내의 손에서는 간장 냄새, 된장 냄새가 배어있다. 나는 눈물이 난다. 그 냄새가 향긋한 화장품 냄새보다 좋은 걸 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 냄새다. 나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나랑 같이 농사를 짓던 아내의 냄새다. 농사를 지을 때의 아내의 손은 거칠었다. 거친 손으로 내 몸을 어루만지던 아내를 나는 사랑했다. 뻘 논에서 하루 종일 모내기를 하고 돌아온 밤에도 아내는 그냥 자는 법이 없었다. ‘당신은 내 피로회복제야. 알지?’ 사랑을 나누고 나면 피로가 풀린다고 했다. 농사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아내는 힘들다 소리 하지 않았다. ‘당신이 더 힘들지 내가 뭐가 힘들어.’하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하곤 했다. 고단한 하루 일이 끝나면 아내와 나는 늘 목욕탕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탕 속에 둘이 들어가 놀았다. 아내는 내 몸에 뭉친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세상에 아무리 예쁘고, 쭉 빠진 여자가 있어도 내 아내보다 더 사랑스러운 여자는 없었다.


아내와 나는 4H 활동을 하면서 만났다. 智, 德, 體, 技를 연마하여 보다 나은 우리 농촌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난 우리는 첫눈에 반했다. 아내는 예뻤다. 눈독 들이는 남자들이 많았지만 아내는 오직 나만 바라봤다. 우리는 농촌 일손 돕기란 명목을 내 세워 각자의 집에서 해방되었다.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짝짓기부터 했다. 평생에 진실한 사랑은 단 한번뿐이라고 하던가. ‘남자 여럿 잡을 가시나 다. 가까이하지 마라.’ 아내의 사주에 도화 살이 끼었다고 어머니는 반대했지만 난 그 도화 살이 더 좋았다. 나도 여자 여럿 거느릴 팔자라지 않던가.


우린 끼리끼리 만난 사이였다. 첫 애가 네 살 되던 해 아내의 머리에 신부의 새하얀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아내는 그날 세상 구경 나온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내 손으로 재료 사다가 지은 엉성한 조립식 집이지만 현대식의 근사한 집도 가졌다. ‘어쩜,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거.’ 아내는 사철 뜨거운 물을 펑펑 쓸 수 있는 목욕탕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했다. ‘너희들 어서 안 자? 빨리 자.’ 아내는 복사꽃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아이들을 닦달했다. 그날 아이들을 억지로 잠재우고 아내는 목욕통에 물을 넘치게 받았다. ‘자기, 오늘은 내 밥이야.’ 아내의 손에 끌려 목욕탕 문을 연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향기가 나는 색 초를 구해다 불을 밝혀 놓고, 아내는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촛불 앞에서 옷을 벗었다. 한 꺼풀 두 꺼풀 아내의 옷은 날개옷이었다. 나는 그 옷을 주어다 벽 속에 깊숙이 숨겼다. 찰랑거리는 더운물 옆에 선 나신의 아내는 눈부셨다. 아내는 내 옷을 벗겼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내는 마치 마술 램프에서 도망 나온 꼬마 요정 같았다. 아내는 변신의 천재였다.


아내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덮어준다. 여러 번 이불깃을 다독이며 또 긴 한숨을 쉰다. 하마터면 나는 아내의 손을 잡을 뻔했다. ‘우지 말고 가. 나 괘차나.’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번 그 말을 반복한다. ‘어여 가. 병수 성낸다. 어여 가.’ 아내는 벽에 붙은 보일러 온도 조절기도 점검하고, 내 머리맡에 벗어 놓은 옷가지도 주워서 네모반듯하게 개어 놓는다. ‘자기야, 미안 해. 다음 주엔 애들 보낼게. 아프지 마. 잘 먹고 건강해야 돼. 알았지?’ 아내는 집에 올 때 가지고 왔던 가방을 들고 방을 나선다. 나는 ‘끙’ 앓으며 방문 쪽으로 돌아눕는다. 아내는 문고리를 잡고 서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다가 문 옆에 붙은 전기 스위치를 내려 불을 끈다. 나는 조용히 코를 곤다.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창문가에 선다. 대문을 나서는 아내의 모습이 추워 보인다. 봄인데도 아내는 참 추워 보인다. 장롱에 든 잠바를 가져다 입혀주고 싶다. 아내는 대문을 조심스럽게 밀어 본래의 모습으로 닫아놓고 골목을 빠져나간다. 아내의 발걸음이 빠르다. 아내는 뛰기 시작한다. 아내의 발자국 소리에 귀가 밝은 동네 개가 컹컹 짖는다. ‘개야 지지 마라. 개야 지지 마라.’ 나는 중얼거린다. 아내는 가끔 어둠을 틈타 왔다가 새벽녘에 소리도 없이 갔다.


처음엔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잠깐 나왔다며 다녀갔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아니 그 보다 훨씬 전에는 가끔 병수가 우리 집에 와서 잤다. 밤늦은 시간에 술에 얼큰하게 취해서 ‘달곤이 이놈아! 니가 보고 싶어 왔다. 니 우짜다 이리돼 갖고 내 맘을 이리 아푸고로 하노? 이 문디 자슥아.’하면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내 옆에서 잤다. 자다가 일어나 보면 아내를 안고 있었다. 어떤 때는 벌거벗은 아내의 배를 타고 헐떡거리기도 했다. 나는 멍청히 구경을 했다. 아내는 우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앓는 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자꾸만 한쪽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아내의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자기 깼어? 병수 씨가 나 아프다고 안마해 주는 거야. 알지? 이젠 괜찮으니까 자. 착한 우리 아기 눈 감아.’ 나는 착한 아기가 되어 눈을 감았다.


병수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달곤아! 미안하다.’면서 아내의 배 위에서 내려왔다. ‘괜찮아, 우리 자기는 아무것도 몰라.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이야.’ ‘그래도 죄짓는 기분인걸. 에이 씨팔. 기분 더럽네. 얌마, 니 우짜다가 이리 됐노?’ ‘그래 봤자 소용없어. 잘 알면서 그래. 살아난 것만도 기적이라잖아. 난 우리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아내는 나와 병수 가운데 누워 두 남자의 손을 끌어다가 자신의 가슴에 얹어놓고 잠을 잤다.


나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온다. 현관문도 조심스럽게 연다. 어둠만 웅크리고 앉은 집인데도 나는 조심스럽다. 몇 발자국 걷다가 물컹하고 발바닥에 무엇이 밟힌다. 까치발을 하고 엎디려 내 발에 밟힌 물건을 주워 코에 댄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걸레다. 땀 흘리고 와서 안은 아내의 몸에서 나던 냄새다. 이제 아내에게선 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내에게선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난다. 갓 피어난 복사꽃처럼 향긋한 냄새가 난다. 나는 젖은 걸레를 가슴에 대고 현관을 나선다.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붉은 가로등이 웃고 있다. 나는 가로등마다 검은 천을 씌우고 싶다. 아내가 내게 왔다 가는 날만이라도 나는 그 붉은 가로등을 가려주고 싶다.


어두운 담장 구석에 선다. 고개를 쭈욱 빼고 담장 밖을 바라본다. 푸른 보리밭 너머 적막하기만 한 도로가 보인다. 늦은 밤 도로는 텅 비어 있다. 시커먼 구렁이가 느리게, 느리게 기어간다. 그 구렁이 등에 노란 택시 한 대가 막 헤드라이트 불을 밝힌다. 아내가 올라탄다. 차는 금세 출발한다. 나는 차 뒤 꽁지를 따라 자꾸만 간다. 아내를 따라가고 싶다. 예전처럼 아내랑 같이 다니고 싶다. ‘자기 오늘 병수 씨랑 병원 가기로 했어. 자기 깨끗하게 씻어야 돼.’ 아내는 내 목에 수건을 두르고 얼굴을 씻어 준다. 향긋한 로션도 발라준다. 깨끗한 옷도 입혀준다. 양말도 신겨 준다. 아내의 손은 요술지팡이다. 아내는 나를 거울 앞에 세운다. ‘너무 미남이다. 우리 자기. 어쩜 이리도 잘 생겼을까. 그러니 내가 첫눈에 찜 했지.’ 아내는 마네킹처럼 서 있는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콧소리로 흥얼거린다. 기분이 좋으면 하는 아내의 버릇이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골목에는 병수의 1톤 트럭이 서 있다. ‘어서 와. 나날이 좋아지는 얼굴이네. 숙희 씨가 사랑 많이 해 주데?’ ‘헤에’ 나는 웃는다. ‘고마버.’ 나는 병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병수도 아내도 환하게 웃는다. 나도 환하게 웃는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도시의 큰 병원에 갔다. 우리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는 도시다. 그 기간이 일 년이었는지, 2년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병원 나들이가 즐거웠다. 아내의 까르르까르르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좋았다. 또한 병원 가는 날은 아내가 먹여주는 특별한 요리가 나를 기다렸다. 오리백숙, 쇠고기 숯불구이, 장어구이 등 내게 좋다는 음식이었다. 아내는 오로지 나를 위해 병수가 사 준다고도 했다.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다.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고 나오면 아내는 나를 데리고 약국에 갔다. 약국 앞 대기실 의자에 앉으면 아내는 바쁘게 약국 아가씨 앞으로 가서 처방전을 내 밀고, 약값을 지불했다. ‘자기 이달곤 씨! 하고 저 아가씨가 부르면 예! 하고 저기 가서 약 타야 돼.’ 아내는 내 볼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여기 꼼짝 말고 기다려. 나 올 때까지 아무 데도 가면 안돼. 잠 오면 저기 의자에서 자. 알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가?’ 아내에게 물은 적이 있다. ‘볼일 좀 보고 올게.’ 나는 그 후 절대로 묻지 않는다.


아내는 트럭에 앉아 기다리던 병수랑 나갔다 하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착한 아기, 나는 착한 아기’ 나는 약봉지를 가슴에 안고 중얼거리며 대기실 의자에 앉아 아내를 기다렸다. 아내를 기다리다 피곤하면 대기실 의자에 옹그리고 누워 잠을 잤다. ‘자기 일어나, 집에 가야지.’ 아내는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여자처럼 내 볼을 톡톡 두드려 나를 깨웠다. ‘밥 먹으러 가야지.’ 나는 헤에 웃으며 아내를 따라나선다. 트럭 운전석에서 병수가 싱긋이 웃는다. ‘지다리느라고 고새 해제?’ 나는 병수에게 미안하다. 아내는 병수 옆에 착 붙어 앉는다. 나는 아내 옆에 착 붙어 앉는다. ‘자기 오늘은 힘 좀 뺐으니 뭐 사 줄까?’ 아내는 내 손을 꽉 쥔다. ‘괴기.’ 나는 늘 괴기라고 한다. 아내는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아챈다.


도로엔 이제 아무것도 없다. 도로에서 우리 동네 들어오는 골목에 켜 진 가로등만 더욱 하얗게 타고 있다. 내 눈엔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나는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으며 담장 앞을 떠난다. 나는 현관 앞에 앉는다. 아내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아내의 손길이 머물던 화단에는 지금 라일락이 한창이다. 그 상아빛 꽃망울은 아내의 속살처럼 탐스럽다. 나는 날마다 아내를 가꾸듯 화단을 가꾼다. 새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아내는 목욕탕 다음으로 좋아한 것이 마당이었다. 돌을 주어다 앙증맞게 화단을 만들었다. 화단 안쪽에는 빨간 덩굴장미를 심어 담장 너머로 늘어뜨리고, 덩굴장미 사이에는 라일락과 모과나무, 매실나무를 심어 아이들 키우듯 키웠다. 아내가 떠난 집을 지키는 것은 나만이 아니고 그 꽃나무들이다. 겨우내 허전하기만 하던 화단이 파릇해지면서 나의 손길도 부지런해졌다. 나는 호미를 들고 화단을 맸다. 내 아내를 보듯 나무들을 보았다. 아내가 오면 예쁜 꽃밭을 보여주려고 기다렸는데. 나는 낙심을 한다. 아내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아내가 좋아했을 텐데. 나는 아내에게 화단을 보여 줄 틈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음에. 그때는 꼬오 보여 주 끼다.’ 나는 별이 총총하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내가 없는 집은 참 쓸쓸하다.


나는 그때가 자꾸 그립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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