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단편 소설>
모단 골 소식
모단 골 회관에 동네 아낙 대여섯 명이 모였다. 명색은 내일 동네를 떠나는 삼진 댁의 송별회를 한다고 모였다지만 기실 의논 거리는 딴 곳에 있었다. 요즘 사람들 입질에 오르내리는 곰보 네에 대한 공론을 해 보자고 모인 셈이었다. 그들은 열다섯 가구가 사는 모단 골에서는 그래도 젊은 축에 끼는 여자들이다.
음료수와 막걸리와 과자 봉지 몇 개를 놓고 빙 둘러앉았다.
“삼진 네야, 고마 정 붙이고 살제. 와 나가노?”
“애들 공부는 시키야 것고 우짭니꺼. 애들 따라 나가서 나도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예.”
“삼진 아재는 우짜고?”
“혼자 있어야지 예. 자주 오낍니더. 엎어지모 코 닿을 덴데 아지매들이 자꾸 그랑께 진짜 멀리 가는 거 겉네예.”
“그나저나 삼진 띠가 요새 확 핀다이. 내 눈에도 꽃 겉은데 저런 새댁이 밖에 내놓고 삼진 양반 독수공방 하것나? 요새 존 일이 많은 갑제?”
“에나 예? 화장품 장사할라꼬 좋은 화장품 쓴께네 그런 갑네 예. 성님들도 한 분 써 보이소. 지 맹키로 예뿌다 소리 들을 랑가.”
삼십 대 중반의 삼진 댁은 시골 아낙답지 않게 세련된 티가 났다. 굵은 파마 끼가 있는 머리는 노르스름하게 물을 들였고, 적당한 키에 까무잡잡한 살결이 제법 남자깨나 호리게 생겼다. 그런 그녀가 열서너 살이나 층이 지는 어수룩한 삼진 양반과 사는 것이 기특할 정도로 똑똑한 여자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소문대로 삼진 댁은 농촌 생활을 접고 도시 속으로 편입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행동으로 옮겼다.
부모에게 자식 교육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농촌에서 초등학교까지는 별 문제가 없지만 중학생만 되면 어느 부모고 간에 조바심치지 않을 수 없다. 내 자식 잘 키우고 싶은 부모 마음과 농촌의 열악한 교육이 이농을 부추긴다. 농촌 교육의 현주소다. 빈부 격차보다 더한 것이 교육의 격차다. 그것은 아무리 열린 교육, 교육 환경 개선을 외쳐도 달라질 수 없는 문제 아닐까. 중학교까지는 농촌에서 보낸다 치자 어차피 고등학교 진학을 하려면 도시로 나가야 한다.
삼진 댁은 큰애가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용단을 내렸다. 진작 나갈 생각을 굳히고 있었던지 제위답으로 사놓은 논 몇 마지기만 남기고 들 논은 시나브로 팔았다. 핑계는 직장에 나가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나름대로 진작부터 나갈 준비를 했던 모양이었다.
“까막실 띠가 살았시모 엔간히 섭섭해 하것네.”
“우리 어무이 살아 계셨더라면 제가 더 맘 편히 나갈 수 있었을지 모르지 예. 농사는 어무이가 소관해 주실 끼고 애들 아부지 건사도 잘하실 낀데.”
“그래, 도시로 나가서 뭐 하끼고?”
“가게 터 알아봅니더. 화장품 가게를 쪼끔 하게 해 볼라꼬 예.”
“하모, 젊은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나가것나? 다 방도가 있것제.”
“아그들 공부 다 갈치고는 들어 오이라.”
“서울로 가는 것도 아니고 ㅈ시는 차 타모 금방입니더. 가찹응께 놀려 오이소.”
삼진 댁은 생글생글 웃는다.
동네 사람들은 그들 부부를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삼진 양반이 복도 많제. 우짜다 저런 참한 색시를 얻었시꼬? 총각으로 늙어갈 줄 알았더마 다 연분이 있긴 있는 기라.’
삼진 댁은 친정이 경남 어디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이제 고인이 되신 삼진 양반의 어머니 까막실 댁의 말을 빌리자면 며느리는 천애 고아나 다름없다고 했다. 친정 동생이 한 명 있기는 했지만 평생 장애아를 위한 복지시설에서 살아야 할 팔자라고 했다.
삼진 댁은 여남 살 때부터 삼진 양반의 외삼촌 집에서 부엌데기로 자랐다.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숙이었다. 숙이는 중학교를 나왔다. 외삼촌은 아무리 남의 집 살이를 해도 언문은 깨쳐야 한다고 숙이를 학교에 보내주었다. 삼진 양반 외숙모가 ‘우리 양딸’이라고 예뻐 했다. 숙이는 손끝도 맵고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까막실 댁 역시 중년에 혼자되어 좀 모자라는 아들을 데리고 살았다. 까막실 댁은 친정 나들이를 갈 때마다 가을 무 자라듯 처녀티가 나는 숙이를 은근히 탐냈지만 차마 그런 말을 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들이 정상인에 못 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까막실 댁 속내야 아들이 모자라니 며느리라도 똑똑한 여자를 들이고 싶지만 세상살이가 어디 맘먹은 데로 되던가. 더구나 농사꾼으로 사는 마당에 새끼 꼬이듯이 배배 꼬이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까막실 댁은 자연히 친정 나들이를 할 적마다 숙이를 눈여겨봤지만 차마 그 처녀를 제 아들 배필로 달라 소리는 못하고 오라비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 댔다.
“오라바이, 우리 새깽이 혼처 좀 알아 주이소. 좀 모지래도 밥이나 끓일 수 있으모 된께 불쌍한 처니 오데 없디요?”
그러던 어느 날, 스무 살이었던 부엌데기 숙이가 까막실 댁 앞에 와서 자기가 며느리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당돌하게 말 하드란다. ‘참말로 니가 내 며누리 될래?’ 까막실 댁이 처녀에게 재차 묻자 ‘지는 예 한 입에 두말 안 합니더.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더.’하더란다. ‘뭐꼬? 내가 들어줄 만 하모 다 들어주께.’했더니 자기 앞으로 논 서마지기만 떼어 달라 하드란다. 그 논을 뭐 할 거냐고 하니까 정신이 온전치 못한 동생 몫으로 넣어놓겠다고 하드란다.
까막실 댁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참한 처녀가 며느리가 되어 준다는데 논 서 마지기가 아깝겠는가. 복덩이가 덩굴째 굴러 들어올 판인데, 더구나 모단 골에서 부농 소리를 듣는 살림이니 그런 똑똑한 며느리만 볼 수 있다면 열 마지기인들 마다했겠는가.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계약을 맺었다. 삼진 양반 외삼촌과 외숙모가 증인으로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시집 온 삼진 댁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그 많은 농사일을 척척 해 내며 농촌 아낙으로서 억척스럽게 살아냈다. 까막실 댁은 아들을 닮지 않은 똘똘하고 듬직한 손자 둘을 품에 안게 되었고 ‘아이구 우리 집 복덩이, 복덩이’하면서 며느리를 귀애하다가 몇 년 전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명실공히 집안의 기둥이 된 삼진 댁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슬슬 도시 나들이를 시작했다. 농사만 지어서는 애들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겠다며 인근 도시로 돈벌이를 나선 것이었다. 보험회사 설계사로 취직을 했다며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보험 가입을 권장하더니 어느 날부터 중고를 싸게 구입했다며 승용차를 끌고 다녔다. 모단 골에서 유일하게 운전을 할 줄 아는 아낙이기도 했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삼진 네 겉은 사람을 두고 하는 소린 갑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진 댁의 행동거지나 하고 다니는 꼴이 사람들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저러다 바람이라도 나면 삼진 양반만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며 한편에선 곱지 않은 눈으로 삼진 댁을 대하기도 했지만 여태 그다지 큰 허물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우려했던 사람들이 미안할 정도로 제 식솔들 알뜰살뜰 챙겨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다. 열 부 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거론될 정도로 행동거지가 반듯했고 농사철이 되면 언제 뾰족구두 신고, 뽀얗게 화장하고 다녔냐 싶게 작업복에 팔 걷어 부치고 농촌 아낙네로 돌아가 코피를 흘리며 농사일을 해 냈다. 해가 지날수록 여자 몸으로 농사짓기가 힘들다고 푸념하더니 이번엔 야금야금 논을 팔아치웠다.
“아요, 인자 장에 갈 때 우리는 머 타고 가제? 앉아서 가는 네 발이 가삐모.”
“모아 놨다가 지 오모 가이소.”
회관 방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났다. 동네 사람들이 면소재지나 읍내 갈 일이 생기면 늘 삼진 댁 승용차 신세를 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아유! 그 곰보 네 우째야 쓰까이?"
부녀회 반장인 육십 대 중반의 덕실 댁이 먼저 운을 뗐다.
“미꾸레이 한 마리가 온 새미를 다 흐리게 맹근다쿠더이. 옛날 겉으모 덕석말이를 시키도 누가 시비할 끼라 예?”
삼진 댁은 눈꼬리가 샐쭉 해지면서 야멸치게 톡 쏜다. 상촌 댁은 삼진 댁의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조것이 더 여시랑께. 속 뵌다 요것아.'
“그라마 상촌 띠가 깃대 잡아라.”
“내가 우찌......”
“젤 속 썩는 사람 아닌교? 아지매는 참 속도 좋소.”
삼진 댁이 입을 삐죽거리며 상촌 댁의 눈치를 살폈다.
상촌 댁은 멀뚱히 좌중을 돌아보다가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한숨을 풀어놓았다.
“그라다 말것제. 내가 현장을 본 것도 아니고......”
상촌 댁이 말꼬리를 흐리자 날름 받아 챙긴 삼진 댁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열을 올렸다.
“세상에, 아지매는 속도 좋소. 그 꼴을 우찌 보고 살라고예?”
“알고보모 내 죈 걸. 여게 있는 사람들이라도 고마 조용히 덮어 주모 좋것소.”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하다. 침묵이 길어지자 참다못한 덕실 댁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본인이 덮겠다는 걸 우짜것노. 고마 일 나자. 삼진 네도 바뿌자네.”
기운이 쭉 빠진 상촌 댁의 한 마디에 좌중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하다가 다들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처음 모일 때는 상촌 댁을 앞세우고 곰보네 집으로 쳐들어가 세간이라도 부수고 곰보네 그 얽은 얼굴이라도 할퀴어줄 심사였지만 당사자가 싱겁게 주저앉으니 다들 김 빠진 맥주 꼴이 되어 제 집으로 갔다.
상촌 댁도 회관을 나섰다. 싸늘한 보름달이 푸지게도 밝았다. ‘엊그제가 동지였제. 세월 참 잘 간데이.’ 상촌 댁은 딸이 사 준 털 잠바의 깃을 세우며 회관 뒤로 난 골목을 휘적휘적 돌아 집으로 왔다. 삽짝 옆에 붙어 있는 사랑채는 불이 꺼져 있었다. 축담을 살펴봤지만 항상 신고 다니는 남편의 운동화는 보이지 않았다. ‘읍내 가서 친구 좀 만내고 올끼거마 늦을랑가 모링께 먼저 자드라고.’ 저녁상을 물리고 난 상촌 양반이 넌지시 일러준 말이었다.
50대 후반의 상촌 양반이 요즘 곰보 과수댁 치마폭에 쌓여 세월 가는 줄 모른다는 소문이 난 지 달포는 달포도 넘었다. 늦은 밤에 그 집 삽짝을 여는 장골 그림자를 본 사람이 여럿인 데다 틀림없이 상촌 양반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평소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남정네라면 모단 골에선 단연코 상촌 양반이었으니, 색기 짜르르 흐르는 곰보 네랑 진작 그렇고 그런 사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곰보 네 남편인 성수가 살아 있을 때도 아주버님, 제수씨 하면서 서로 은근히 눈을 맞추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소문이었다. 곰보 네가 혼자되면서 두 사람 사이는 금세 불이 붙었단다. 눈치챌 만한 사람은 다 챘는데도 상촌 댁은 모르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랬다. 모단 골에는 국가에서 보조받고, 동네 돈으로 장만한 농기계가 있었다. 콤바인과 트랙터와 이앙기가 그것이다. 동네에서 젊은 일꾼이라 해 봤자 상촌 양반이 제일 젊은 축에 속했다. 형편이 그러하니 상촌 양반이 동네 농기계를 가지고 동네 농사를 도맡아지어 주는 형편이었다. 삼진 양반이 있긴 하지만 좀 모자라 농기계를 다루지 못하니 당연히 상촌 양반 혼자서 열다섯 집의 타작을 해 내야 할 형편이었다. 물론 농기계를 부릴 줄 아는 상촌 양반은 일을 해 주고 동네에서 정해 준 품삯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농사철이 돌아오면 동네 회의가 길어졌다. 농기계를 필요로 하는 집은 동네 회의에 부쳐 날짜를 배정받았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럽게 집안에 일이 생긴다거나 하면 서로 바꿀 수도 있고, 날짜를 뒤로 물리거나 앞으로 당길 수도 있었다. 그때 사정을 봐서 일의 조정이 가능하긴 했지만 올 가을에는 상촌 양반이 사람들의 입질에 오르내릴 만큼 일 처리하는 것에 있어 지나친 감이 있었다.
이미 날짜별로 짠 동네 각 집의 타작 순위를 확 뒤집어서 엎은 사건이었다. 상촌 양반이 옆 마을에 사는 곰보네 타작부터 해 치우고 나서야 동네 집집마다 하루나 이틀이 늦은 날짜에 타작을 해 준 것이다. 더구나 회관에 모인 아낙네들은 콤바인 타작을 하면서 봤지 않느냐는 거였다. 둘이 어찌나 손발이 척척 잘 맞는지 안면 없는 사람은 영락없이 부부로 봤다지 않는가. 확실한 물증은 없어도 상촌 양반 해대는 꼴이 영락없이 간도 쓸개도 다 빼 준 형국이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것이었다.
상촌 댁은 자기 잘못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소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졌으니 당사자인 상촌 양반도, 곰보 네도 귀동냥은 했으련만 두 사람 다 소문에는 무심했다. 그러니 상촌 댁만 가슴앓이를 한다.
“다 내 탓인 기라. 우짠다꼬 혼자 몸인 곰보 네를 끌어들이서 이 사단을 맹그노 말이다. 다 내 탓인 기라. 참말로 우째야 하꼬.”
상촌 댁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상촌 양반과 곰보 네가 얽혀 들기 시작한 것은 상촌 댁이 콩 타작을 하다가 ‘아이고 허리야’하면서 자리보존을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집집마다 타작해 달라고 기다리고 있는데 덜컥 상촌 댁이 자리보존을 하자 상촌 양반의 콤바인을 따라다니며 벼 자루를 들어낼 사람이 필요했다. 상촌 댁은 부랴부랴 곰보 네를 불러 품삯을 주기로 하고 고용을 했다. 평소 일 처리가 야무진 곰보 네를 눈여겨본 데다가 애들 도시로 유학 보내 놓고 혼자 지내는 곰보 네는 만고에 편한 백성이었다. 평소 ‘형님, 형님!’ 하면서 친동기간처럼 흉허물 없이 지내던 터라 믿었던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을걷이가 끝날 즈음 그녀와 상촌 양반이 그렇고 그런 사이란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상촌 댁은 제 가슴을 쳤다. 모든 것이 자기 탓만 같았다. 콩 타작을 하다가 다친 허리가 수시로 쑤시고 시큼시큼해지는 바람에 옆에 와 집적거리는 남편을 내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부부 사이가 멀어졌다. 젊어서부터 상촌 양반은 밤일을 밝히는 편이었다. 읍내 다방 아가씨와 두어 번 연분 설이 나돌았지만 심각했던 적은 없었다. ‘사내가 바람 한분 안 피웠다 카모 그건 사내도 아니다.’며 호기를 부리는 상촌 양반이었지만 아내 사랑은 알뜰한 편이었다. 상촌 댁은 그런 점에선 늘 남편을 믿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심각하다는 것을 상촌 댁도 느끼고 있었다. 몇 번 잠자리를 시도하던 끝에 상촌 댁이 싫다고 하자 더 이상 채근하는 일이 없어졌다. 가만히 날짜를 헤아려보니 한 이불속에서 잔 지가 두어 달 된 것 같았다. 상촌 댁은 ‘다아 내 탓이다.’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했다. 말 많고, 흉허물 많은 동네 사람들 입질에 오르내리게끔 만든 장본인이 자기였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랴. 더구나 도시에 나가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 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했다. 슬슬 혼사 길도 틔워야 할 자식들이 아닌가.
‘이 영감탱이가 가로 늦게 망신살이 뻗쳐도 유분수제. 다 늙어서 무슨 주책인지. 이 일을 우찌 수습을 해야 좋을꼬. 내 오늘 저녁에는 안만 캐도 따져나 봐야겄다. 곰보네만 족칠 일도 아니제. 그나저나 들어오기나 해야 따지든지 말든지 하제.’
상촌 댁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통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도 남편이 곰보네 안방에서 비단 금침을 펴고 누워 시시덕거리는 것은 아닐까. 관자놀이가 씰룩거리면서 숨이 가빠왔다. ‘슬쩍 찾아가 봐?’ 이불속에 누웠다가 벌떡 일어났지만 금세 ‘휴’ 한숨만 풀어놓았다. 다 늙어빠진 여편네가 질투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명치끝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
며칠 전, 상촌 댁은 밤이 이슥하기를 기다려 슬그머니 사랑방으로 행차를 했었다. 그날은 상촌 양반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눈치였다. 상촌 댁은 때는 요 때다 싶어 뒷물까지 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속으론 젊어서도 안 하던 짓거리를 오십이 넘어 이게 뭔가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어쨌든 늦바람 잡지 못하면 집안 망신 아닌가 싶어 상촌 댁으로선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상촌 댁이 허리 병을 앓으면서 상촌 양반의 잠자리가 바뀌었다. 사랑채로 잠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것도 상촌 댁이 밀어낸 탓이었다. 허리 병이 나서 잠자리가 불편한 상촌 댁은 끙끙 앓으며 뒤척이는 것이 남편 보기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더구나 잠자다 보면 남편의 다리가 상촌 댁 허리에 걸쳐져 있거나 남편의 손이 고쟁이 속에 들어와 있곤 했다. 뻣뻣하게 약이 오른 물건을 엉덩이에 대고 밀어붙이며 작신작신할 참이면 비명을 지를 판이었다. 제발 허리 나을 동안만 사랑채에 기거해 달라고 빌었다.
처음엔 성깔을 팍팍 세우던 상촌 양반도 어느새 길이 들었는지 요즘엔 자동적으로 사랑으로 향했다. 그것도 의심스러웠다. 상촌 댁이 ‘이젠 허리가 그만하다’고 넌지시 귀띔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아예 옆에 올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그 소문을 모를 때는 은근히 걱정을 했다. ‘남자 나이 오십 중반 이모 심이 없어진다 더이 그런가? 그것도 자꾸만 써야 힘이 생기제. 너무 오래 묵카 삐모 묵정이가 되어 씰모가 없어진다더니 참말인가?’하면서 반신반의했다. 그 당시 기분은 시원섭섭했다. 예전처럼 회가 동하면 밥 먹다가도 상을 윗목에 밀어붙이고 시작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양반이 통 아내 옆에 올 생각이 없자 보약을 사 먹여야 하나 어쩌나 혼자 궁리를 하던 중에 ‘상촌 양반이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이라고 덕실 댁이 귀띔을 했다. 상촌 댁은 사랑방 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방 안에서 더운 김이 나왔다.
“방바닥이 따시요?”
그래도 일언반구 없다. 어둠살이 눈에 익자 벽 쪽으로 등을 돌리고 누운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상촌 댁은 살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가 남편의 등을 껴안고 누웠다. 반응이 없었다. 손을 잠옷 바지춤에 쓱 밀어 넣었더니 커다란 손이 사정없이 잡아챘다.
“이 여편네가 뭐 하는 짓거리고? 피곤해 죽것거마.”
예전 같으면 옆에만 누워도 덥석 안기 바빴을 남편이니 상촌 댁으로서는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다. 섭섭하다 못해 분했다.
“당신 참말로 바람이 나긴 단단히 났는가베?”
상촌 댁이 서슬 퍼렇게 일어나 앉자
“또 그건 뭔 소리고? 치아라. 인자 못하는 소리가 없네. 쓸데없는 소리 말고 퍼떡 가서 잠이나 퍼 자빠져 자라.”
상촌 댁은 대거리를 하려다가 한 밤중에 큰 소리 나면 삼이웃이 깰 것이 두려워 분한 마음을 참고 안방으로 물러났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근자에 들어 상촌 양반의 읍내 출입이 잦은 것도 마음에 걸렸다. 걸핏하면 소싯적 동창들 만난다네 어쩐다네 하면서 집을 비웠고, 새벽녘에 도둑고양이처럼 살그머니 집으로 기어들곤 했다. 겨울철에 뾰족하게 할 일감이 없으니 놀기밖에 더 하겠나 싶었다. 예전 같으면 막노동판에도 기웃거려 보거나 땔감 해 나르느라 짧은 겨울 해가 원망스럽다 했겠지만 시절이 좋아진 요즘엔 기름보일러가 집집마다 있다. 기름 떨어지면 기름차 부르면 되고, 가스 떨어지면 가스 배달시키면 되었다. 돈만 있으면 농촌 살이도 편한 팔자였다. 사랑채 군불 때는 것이야 경운기로 참나무 등걸 두세 번 해다 부려 놓으면 겨울 내내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놀기밖에 더하겠는가.
더구나 올해는 어쩐 일인지 삼진 양반이 벌써 장작을 두 경운기나 해다 아래채에 재어 놓았다. 상촌 양반이 가을 타작 한 품삯 대신 장작을 해 달라고 했단다. 그러니 땔감 하러 갈 일도 없었다.
‘오늘도 새복 녘에나 들어 올라나?’
상촌 댁은 다시 잠자리에 누웠지만 삼삼하게 떠오르는 얼굴은 곰보 네였다.
그녀는 곰보다. 살짝 얽은 곰보여서 더 남의 눈에 띄는 인물이다. 그녀의 웃음 하나는 기가 막혔다. 상대방의 마음을 단번에 녹이고도 남을 만치 순진무구한 웃음이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도 아담한 키에 알맞게 부푼 가슴이며 엉덩이를 살래살래 흔들고 가면 삼이웃 남자들이 침 깨나 흘리며 눈요기를 할 정도로 어딘가 모르게 남자의 마을을 끌어당기는 여자였다. 비록 사십 대 초반이었지만 삼십 대 잘 익은 수밀도로 보일 만큼 젊은 데다 과부 아닌가. 과부는 먼저 따먹는 남정네가 임자라지 않는가. 그러니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곰보 네를 도마 위에 올리는 일이 많았다.
그런 처지에 진짜 소문이 나 버린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