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야이 요년아, 니 퍼떡 덕산 다리 밑에 가 보거라. 너거 옴마가 니 찾아왔다가 시방 갔다. 니 오모 꼭 오라쿠드라. 다리 밑에 가모 가마 떼기 하나 덮고 있을 끼다. 니가 핏뎅이 때 다리 밑에서 주다 키운 가스난 줄 몰랐더나? 너거 할매가 내 보고 입단속하라고 담배를 자꾸 앵기 중께 내 참았다만 너거 옴마 형색이 영 상거지더라. 그래도 니 보고 잡다꼬 꼬옥 한 분만 니 보고 잡다고 사정사정하는 기라. 너거 할매가 안 된다쿠는 것을 내가 말하는 기다. 퍼떡 가 보거라.
할매 맞나?
하, 맞다. 너거 옴마가 거게 있단다.
할머니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는 그만 마당에 퍼질러 앉아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확실하게 아랫집 할머니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왜냐하면 내 위로 두 언니는 처녀였다. 큰언니는 벌써 중매쟁이가 들락거리고 있었고, 작은언니는 중학생이었다. 내 위로 언니 오빠가 죽은 줄을 모를 때였으니 터울이 져도 너무 졌다. 두 언니는 항상 나를 어린애 취급밖에 하지 않았다. 동네 언니들과 모여 연극을 하고 놀 때도 언제나 나는 젖먹이 어린애 역이었다. 그즈음 이웃집에 살던 큰언니 친구가 시집을 갔다. 언니는 신부 친구라고 그 집에 가서 새 각시 옆에 앉았지만 나는 어린애라고 신부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연지곤지 찍고 분단장한 그 언니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언니의 매서운 눈초리가 겁나서 문 밖에 서 있었으니 아무래도 나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울 여게가 오데 있노? 퍼떡 안 가모 너거 옴마 죽을란지 모린다쿵께네.
아랫집 할머니는 한술 더 떠서 울고 있는 나를 윽박질렀다.
나는 코를 훌쩍거리며 울다가 그만 대성통곡을 하면서 삽짝을 뛰쳐나갔다. 그제야 마루에 앉아 아랫집 할머니와 맞장구를 치던 할머니께서 깜짝 놀라 뛰어나오셨다.
에미야, 저 아 가서 데리고 온나. 갑아, 천양 띠가 니 놀릴라꼬 한 말이다. 이리 온나 우리 새깽이. 너거 옴마 부석에 있다.
나는 엉엉 울면서 우물가를 지나 동네 골목을 빠져나왔다. 동네를 벗어나면 큰 못이 있다. 못 둑 밑을 한 참 달리고 있을 때다 누군가 덜컥 뒷덜미를 붙잡았다. 지름길로 먼저 와서 기다린 어머니 손에 잡힌 것이었다.
놔, 놓으란 말이야. 나는 우리 옴마한테 가끼다. 옴마는 우리 옴마가 아니람서?
어린것이 어머니께 달려들어 가슴을 쥐어뜯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꼭 끌어안으며
할매가 니 하는 기 예뿌다고 그란 기다. 니는 내 배꼽으로 태어난 기라. 니 배꼽하고 내 배꼽하고 마차보자 따악 맞을 끼다. 니는 쏙 나왔제? 옴마는 쏘옥 들어갔다. 자 봐라.
어머니는 치마를 걷어서 배꼽을 보여 주셨다. 정말 내 배꼽은 톡 튀어나왔지만 어머니 배꼽은 쏙 들어갔다.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어머니 등에 업혀 집에 왔다. 어머니 등에서 나는 시큼한 땀 냄새가 좋았다. 그때만 해도 또래 아이들은 모두 어머니 배꼽으로 태어난 줄 알았다. 나는 소설가 박계형이나 정연희의 연애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는 어머니 배꼽을 뚫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다리 사이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는 아랫집 할머니가 아무리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고 놀려도 피식 웃고 대거리를 하지 않을 만큼 성숙해 있었다. 누구의 작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창공에 그리다.'란 소설에 보면 야한 성애 장면이 나온다. 그림까지 곁들였던 기억이 난다. 그 장면을 몰래 읽느라고 밤잠을 꼬박 새우곤 했다. 어른들은 내가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는 줄 알고 좋아했다. 귀한 석유를 소비하면서, 귀한 초를 소비하면서 어린 딸이 야한 통속 소설이나 무협지를 읽으며 날밤을 새우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우리 집안에 천재 났다고 좋아했다. 사실 학교 공부도 잘 하긴 했다. 날치기 공부였지만 시험은 잘 봤던 것 같다.
오일 장날이면 아버지를 찾아 쇠전을 맴돌았다.
박 샌 딸이가? 똘똘하것네.
저잣거리에서 만난 이웃이 이런 말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는 백 원짜리 푸른 지폐를 선뜻 빼어 주시곤 했다. 나는 그 돈을 받자마자 '아부지 집에 갈랍니더.'하면서 곱게 인사를 하고는 그 길로 만화방으로 달려간다는 것을 알 리 없었다.
나는 또래의 시골 아이들보다 어른스러웠다. 같은 친구라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소꿉장난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어린애 같았다. 그 시절 벌써 머릿속이 굵어지고 있었다.
내 유년의 꿈은 아름다운 공상 속에 있었다. 동화책 속에 푸욱 빠져 지내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이 모두 동화 속이었다. 학교에 가면 도서관에 박혔고, 집에 와서 마루에 앉으면 울타리 너머 덕천 강을 바라보며 공상에 잠겨 지내곤 했다. 푸른 물이 축담까지 넘실거리는 강에서 헤엄을 치고 노는 인어 공주가 되는 꿈이며, 피리를 부는 선녀가 되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곤 했다. 몽상에 잠긴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나 언니들에게 별난 아이 취급을 받았다. 한 마디로 많이 멍청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놀기를 즐겼고, 책을 읽고 쓰면서 늘 책과 친구로 지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편지를 썼다. 고등학교 다니는 언니에게 쓴 편지가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면서 글 잘 쓰는 아이란 말을 들었고, 도서관에 박혀 산다고 해서 책벌레란 놀림을 받았다. 내 일기장은 늘 공개 일기장이었다. 선생님은 내 일기를 아이들에게 읽어주곤 했다. 글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글 속에서 온갖 상상의 집을 짓곤 했다. 초등학교 때 연습장으로 만든 최초의 책 제목이 <나의 문집>이었다. 그 책을 잃어버린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 때 내게 책을 빌려준 친구가 있다. 아버지께서 교감 선생님이셨는데.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말씀을 듣고 서재에 있는 책을 빌려 주셨다. 우리나라 위인전이었던 것 같다. 화랑 관창, 김유신, 선덕여왕, 수호지, 삼국지 그런 책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내 독서열은 더 왕성해졌다. 학급 문고의 책은 물론이고, 책 있는 집이라면 누구네 건 가리지 않고 빌려서 섭렵해 나갔다. 아랫집 할머니 댁에는 대학 다니는 오빠가 있었고, 사랑방엔 책이 가득 있었다. 한국문학 단편집과 이광수의 전집 등은 그 시절에 다 읽었을 것이다. 오빠네 사랑방의 책들을 섭렵한 뒤엔 언니의 서재로 옮아갔다. 이미 공무원 생활을 하던 둘째 언니도 책을 좋아했다. 언니는 삼성문고 판으로 나온 세계 명작 선집 수십 권과 왕비 열전 스무 권짜리와 단행본 수십 권을 가지고 있었다. 방학 때면 언니 자취방에 가서 책만 읽다가 코피를 쏟기도 했다. 집에 오면 한 주일 볼 양을 한 보자기 싸 오곤 했다.
호롱불을 켜 놓고 밤새 책을 읽었다. 촛불을 켜 놓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 책꽂이에 불이 붙은 적도 있었고, 친구에게 빌렸던 친구 오빠 책이라는 춘추전국 시대는 책 중간을 거의 태워 먹는 바람에 돌려줄 수가 없어 늘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부엌에 앉아 밥솥에 불을 때다가 책 속에 빠져들어 불이 나뭇단 쟁어 놓은 곳에 붙는 바람에 혼쭐이 난 적도 있었다. 책을 보며 길을 가다가 허방에 빠져 다리를 다친 적도 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코피가 터졌던 적도 있다. 만화 역시도 많이 봤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백일장을 휩쓸었고 주위에 글 잘 쓰는 아이로 소문이 났었다. 책벌레로 소문난 나였지만 내 꿈은 만화가였고, 변호사가 되는 꿈은 가졌을망정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면 작가의 꿈은 그 일이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가을 저녁나절이었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저녁을 드시고 고구마 밭을 지키러 가셨다. 그때만 해도 수확 철이 되면 고구마 밭에 도둑이 들곤 했다. 우리 집은 고구마를 대량으로 심었다. 누구네 건 도둑이 들었다. 고구마 밭 옆에 원두막을 세워 놓고 식구들이 돌아가며 밤새도록 망을 봤다.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엄마랑 싸움이 붙었다.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 가는 것 때문이었다. 경주 불국사 석굴암은 꿈에서도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엄마는 여행비가 없다고 수학여행을 포기하라 하고, 나는 꼭 가야겠으니 내일까지 여행비를 달라고 했다.
돈 조.
묵고 죽을라 캐도 돈 없다.
그람 옴마 죽어.
그 말에 어머니는 폭발했다. 나는 그날, 어머니에게 몹시 맞았다. 워낙 고집쟁이였던 탓에 아무리 매질을 해도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도망도 가지 않으면서 고집스럽게 서서 어머니의 매를 견뎌 냈다. 장딴지에 피멍이 들어도 눈물 뚝뚝 흘리면서도 어머니께 잘못했다고 빌지를 않았다.
이 독한 년, 니가 에미한테 죽어도 잘 못 했다고 몬 빌것다 이기제. 오냐, 이 에미가 먼저 죽을란다. 내가 딸년한테도 하술리 비는데 살아 뭐 하것노. 내가 목을 매든지 할꺼마. 내가 죽어야 니가 잘못한 줄 알제.
화가 머리꼭지까지 오른 어머니는 끈을 찾아 대들보에 매더니 목에 걸었다. 그제야 깜짝 놀란 나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목에 건 줄을 떼어내며 한 말이
옴마, 나 잘못한 거 없어. 나 때문에 옴마가 와 죽노? 내가 죽으끼다.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갔다. 강으로 달려갔다. 강변 밭에 가려면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허벅지까지 오는 물길을 건너 다니는 곳이 있었다. 사람들이 건너 다니는 그곳은 얕아서 죽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방앗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물레방아가 도는 그 아래는 벼랑이었고, 물이 시퍼렇게 흐르고 있었다. 낮에도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면 하얀 소복 입은 귀신이 나와서 손짓한다는 그 깊은 소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 벼랑 위에서 사정없이 뛰어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이미 건너편 얕은 물가에 나와 있었다. 나도 모르게 헤엄을 쳐서 깊은 소를 빠져나왔던 것이다. 어처구니없었다. 혼자 신나게 웃었다. 갑자기 죽겠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어찌나 어리석어 보이던지 혼자서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거 뉘요?
건너편 원두막에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부지, 갑이라 예.
첨벙첨벙 물을 건너 아버지께 갔다.
니가 우짠 일이고?
고마 예. 아부지 보고 싶어서 오다가 물에 빠졌어 예.
아버지는 옷이 다 젖은 딸을 보더니 춥다며 나뭇가지를 주워 와 불을 피워 주셨다. 그 불 속에 고구마를 캐어 파묻어 놓고 하늘을 봤다. 별빛이 유난히 푸르게 반짝거렸다.
그날 밤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젊은 날의 꿈과 환상과 방황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언젠가 아버지 이야기를 글로서 남기리라 생각했었다. 아버지 이야기 만인가. 지리산에 얽힌 전설과 일제강점기, 육이오 사변으로 죽은 사람들 이야기, 전설과 신화가 무궁무진하다. 그것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다음날 아버지는 경주 불국사 수학 여행비를 주셨다. 석굴암 부처님 앞에서 절했다.
인자 맘 놓아도 될랑가. 인자부터 넘의 명 받아감서 사는 기다 생각하고 우짜든지 고집부리지 말고, 니 성질 죽이 감서 살아야 한데이. 거기 명 이사는 길이라는 것만 명심하고.
스무 살의 생일상을 그득 차려 삼시랑 앞에 놓고 비손을 하신 할머님이 내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다.
밭두둑에 덮었던 짚을 걷어냈다. 파릇한 상추며, 시금치, 갓의 여린 잎이 볕살에 놀라 몸을 움츠린다. 참 질긴 것이 생명이기도 하고, 간단하게 끝날 수 있는 것 역시 생명이기도 하지만 한 겨울, 여리디 여린 푸른 생명이 경이롭기만 하다. 나도 저 푸른 생명처럼 빛날 수 있기를 빌었다. 숲 속에 사는 나는 늘 나무 그늘 아래 산다는 생각을 한다. 숲 그늘도 좋고, 산 빛 그늘도 좋지만 작고 여리지만 안온한 느낌이 드는 나무 그늘이란 말이 좋아서 우리 집 당호를 나무 그늘로 정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