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울타리 속의 사랑

<끝>

by 박래여

그렇지만 돈줄을 쥐고 있는 본처를 본척만척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든 구워삶아 돈을 챙겨 가야 첩이 알랑방귀를 뀌며 콧소리를 낼 수 있겠지. 그러니 속이 쓰려도 가끔 가다 집에 들려 어머니를 구워삶으려고 온갖 아양을 떨다가 나중엔 역정을 냈다가 안 되면 딸들 교육 잘못 시켰다고 트집을 잡았다. 그 중에서 유독 더 센 사람은 둘 째 언니였다.


언니는 아버지 소리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미 태권도로 단련된 주먹이니 아버지께 호락호락 당하지도 않았다. 다만 어머니 때문에 참고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어머니께 저금통장 내 주지 않는다고 손찌검을 했다가 언니에게 호되게 당했다. 2단 발차기가 바로 들어가 턱을 강타했던 것이다. 그 후로 언니가 있는 앞에서는 절대로 어머니께 손찌검을 하지 못했다. 대신 어머니께 폭언을 하는 것이었다. 말끝마다 ‘애비도 모르는 딸년들’이라며 아비를 아비로 대우해 주지 않는 것은 어머니 탓이라고 했다. 또한 둘 째 언니에게 태권도 가르쳤다고 야단치는 것이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부터 난다더니 그 짝이라며 도장에 못 나가게 언니를 야단쳤지만 그럴수록 언니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은 더 강하고 집요했다. 아버지가 오신 날은 보란 듯이 도복을 입고 마당에서 으랏차차! 운동을 했다. 그런 언니를 보며 아버지는 ‘에미가 지 남편을 우습게 보니 가시나들도 저 모양이이라’고 어머니를 몰아세웠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오신 날은 언니에게 도장에 못 나가게 했지만 소용없었다. 보란 듯이 장대를 짚고 어른 키 보다 높은 담장을 멋지게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밤새도록 어머니께 사탕발림을 해 보았지만 넘어가 주지 않자 아침에 눈 뜨자마자 딸들 일을 걸고 넘어졌다. 딸들이 아비를 본척만척 하니 집에 들어오려다가 도로 나간다는 것이었다. 특히 둘째 때문이라 했다. 아버지를 팬 불효막심한 년이라는 것이다.

“인제 그만 하시고 당신 집에나 가시지예. 출근 하세야지예. 그래야 그 여자 밥이라도 먹여 줄 꺼 아닙니까?”

“아니 저것이. 또?”

아버지는 언니에게 옆에 있던 담배 재떨이를 날렸다. 날렵하게 피한 언니는 피식 웃으며

“눈에 멍 자국 또 만들어서 출근 하실라고예?”

“저 저것이 말하는 본새 보소. 이기 다 니년 탓이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이봐요. 아저씨, 인자 우리 집에서 나가시지예. 내 봉이 우는데.”

언니는 축담 옆에 챙겨 두었던 대나무 봉을 들고 여차하면 한 대 갈기겠다는 뜻으로 대나무 봉을 만지작거리며 아버지의 거동을 살폈다.

“이녀러 가시나 내가 참자 참자했지만 갈수록 가관이네. 오데 애비한테 말끝마다 아저씨라니. 내가 너거 학교 교장 선생님 찾아가서 애비 에미도 모르는 천하에 망나니 겉은 년이니께 퇴학시키라고 할 끼다.”

“누구 맘대로? 지 얼굴에 똥 묻히는 짓도 인자 서슴지 않겠다 이 말이지예?”

“나도 동장 찾아가서 김 아무개가 이런 사람인데 모가지 안 자르냐고 하지 예. 학교 가서 그 년 머리끄뎅이에 불을 확 질러버리던가 중대가리를 맹글어 놓고 너거 집에 그 아저씨 때문이다. 함서 반쯤 죽도록 패 놓던가. 도장 머스마들 불러서 걸레 맹글어 놓던가 하모 우짜낍니꺼?”


빙글빙글 웃으면서 아버지의 속을 뒤집는 것에 선수인 언니는 그래도 장골인 아버지께 잡혔다 하면 힘을 못 쓴다는 것을 아니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복장거리를 시켰다. “가시나를 조따우로 갈카 놓고. 당신은 집에서 뭐 하는 사람이야? 학교 당장 때려치우고 시집이나 보내. 옛날 같으면 시집가서 아 에미가 되고도 남을 년을.”

아버지의 화살은 다시 어머니에게 쏟아졌다.

“아저씨, 우리 옴마한테 또 손댔다가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자 가시죠. 미칭개이 아저씨.” “뭐라꼬? 저것이 죽을라꼬 환장을 했나. 뭐? 지 애비보고 미칭게이? 이 년아, 가서 문 짱가라. 저 가시나 버릇을 좀 고쳐 봐야 것다.”

아버지는 옆에 앉은 어머니를 향해 손을 올렸다. 빰이라도 한 대 올려 부칠 참이었지만

“불쌍한 우리 옴마한테 손찌검만 해 봐라.” 언니의 차가운 한 마디에 아버지는 얼이 빠진 얼굴로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옴마, 내 학교 갔다가 그년 집에 들어가 난리굿판을 맹글어 놓고 올께예. 학교 가다가 경찰서에 들려 가정 폭력범으로 이 아저씨 고발하고 갈낑께네 혹 주먹질 하모 맞고 있을소. 감옥에다 확 차 넣어삐낑께네.”

언니는 눈짓을 했다. 나는 슬그머니 언니의 가방을 챙겼다.

“저년 가방은 거게 두고 니만 가거라. 오늘 저 년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놔야겠다.”

아버지도 단단히 화가 나셨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면서 소매를 걷어 올리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인자 고마하고, 당신도 퍼뜩 출근하소. 숙아, 니도 아부지한테 그라모 못 쓴다. 잘못 했다고 빌고 너거들 퍼뜩 가거라. 머 하노? 학교 늦을라.”

애가 탄 어머니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나는 슬그머니 내 가방만 챙겨 현관문을 열고나오며 이런 저런 꼴 안 보고 혼자 지낼 수 있는 큰 언니가 한없이 부러웠다. 큰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외삼촌이 경영하는 공장의 경리로 취직하여 C시로 떠나고 없었다.

동생들은 눈치껏 아침을 챙겨 먹고 이미 학교에 가고 없었다.

나는 대문 앞에서 언니가 나오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집안에서 언니의 악 쓰는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탱자울타리를 넘었다. 오금이 저렸다. 나는 원래 겁이 많았다. 둘째 언니처럼 당당하고 싶지만 모두 나를 보면 바람 불면 날아갈까 겁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고 2학년이면서 덩치는 초등학생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 비해 둘째 언니는 큰 편이었다.

여고 3학년인 언니는 몸매도 잘 빠진데다 얼굴도 이국적으로 생겼다. 곱상한 어머니와 선이 굵은 아버지의 잘 생긴 부분만 닮은 것 같았다. 성격도 똑 부러지고, 활달해서 언니를 보면 잘 익은 알밤 같았다. 언니는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로 단련된 몸이라 날렵했고, 발차기는 친구 간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아이고오!”

집안에서 갑자기 아버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또 일 쳤구나. 싶어 뒷걸음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울타리를 넘었다.

“저것이 또 애비를 쳐? 이년 잡히기만 해 봐라. 다리 몽뎅이를 분질러 놓을 끼다.”

“옴마, 학교 댕겨 오겠습니다. 저 아저씨한테 맞았는지 나중에 확인할 끼다. 우리 옴마 한대라도 팼다간 감옥 갈 줄 아이소.”

우탕탕!

뜀박질 소리가 들리더니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3.

한참을 달리다가 골목으로 꺾여 내려가는 아랫녘에 서서 우리 집을 돌아봤다.

아버지는 아직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대문간에 서 계셨다.

“바보야, 또 넋 빠졌어? 들고 뛰어. 지각이란 말이야. 저 영감쟁이 약발 받았다니까.”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딸에게 혼이 난 아버지가 풀 죽은 모습으로 대문간에 서 있었다.

“엉가, 제발 아부지한테 너무 그라지 마라.”

“내가 좀 심하긴 했지? 안 그래야지 하다가도 옴마한테 와서 하는 걸 보면 속이 확 뒤집힌다니까.”

“엉가가 하는 걸 보모 아부지랑 똑 같애. 닮았단 말이야.” “나도 알아. 그러니 더 속상해. 곱게 좀 늙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이젠 정신 좀 차리고 집으로 들어오면 좀 좋아. 또 돈 뜯어 나갈 궁리하니 더 밉지.”

“아부지 소리도 안하면서, 집에 들어 오모 받아줄 끼가?”

“당근이지. 하는 거 봐서 아부지, 아부지 함서 애교도 살살 부려 볼 텐데. 우리도 좀 아부지 사랑 받으며 살 날 있었으면 좋겠다. 니도 그렇제?”

“아부지 보고 엉가가 그렇게 말해 보라모. 이번에 보이께 아부지도 많이 늙었더라. 남자들은 늙으모 집에 들어오고 싶어진다매. 엉가가 좀 살갑게 굴어봐라. 맘 고쳐 묵을지 모르잖아.”

“그래야겠지. 그나저나 굼벵이 니 땜에 또 지각이다.”

우리는 손을 잡고 다시 비탈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아지랑이가 살살 피어올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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