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을 찾다

<처음>

by 박래여

<단편소설>

길 위에서 길을 찾다


아침부터 머릿속이 명쾌하지 못했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는 것을 깨닫고 자꾸만 뒤가 켕겼다. 새벽꿈으로 하루를 점치는 버릇이 있는 나는 출발을 앞두고 자꾸만 꿈속으로 들어갔다. 무슨 꿈이었지? 생각 날듯 말 듯하는 내용을 떠 올려 보려고 애를 썼지만 선명하게 잡히는 것은 없었다. 어둡고 낯선 곳에서 헤매다가 꿈을 깼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었다. 어떤 친구는 이런 나에게 ‘제발 점쟁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라 무섭다.’며 퉁을 주곤 했다.

길을 나서야 하는 데 내심 불안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여고 2학년짜리 소녀와의 약속을 깰 수가 없었다. 메일로 보내준 그 소녀의 소설을 뽑아 읽어본 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이번엔 남편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무조건 일방적인 통과 의례였다. 나 통영 갔다 올 거요. 너무나 단호하게 말한 탓에 남편은 희다 검다 대답이 없었다. 대답이 없다는 것은 가지 말란 소리지만 또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난 늘 남편의 한 마디에 바깥출입을 결정하는 편이다. 속으론 꼭 가고 싶어도 가지 마라, 내가 낼 어디 갈 거다, 그런데 갈 필요 있나?, 아니면 아예 못 들은 척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냥 주저앉아 버리곤 한다. 그러니 혼자 외출이란 읍내 시장 보려 가는 것이 고작이고, 아이들 통학시키는 것, 살림 사는 것, 삼시 세 끼와 남편 새참 챙기는 것, 시부님 받들어 모시는 것, 시댁 오르내리는 것, 등등이 내 주 업무다.

이번에도 남편은 묵비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고 온 나는 남편과 남편 후배인 차 총각의 새참을 챙겨 놓고, 점심 준비를 했다. 밥을 해서 보온 통에 퍼 담아 놓고 찌개와 반찬을 챙겼다, 냉장고에서 내어 상만 차리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차 총각이 왔다. 남편은 차 총각과 마당에 서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눈치 더니, 이어서 차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밖을 내다봤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이 탄 트럭이 삽짝을 내려가고 있었다.

‘또 휭 날아 버렸구나.’

남편이 먼저 집을 나가는 것은 나보고 집에 있으란 소린데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소녀와의 약속은 꼭 지키고 싶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내가 욕을 먹는 한이 있어도 그냥 접어버리곤 했지만 이번만은 오기 같은 게 생겼다.

‘해도 해도 너무 해.’

혼자 구시렁거리며 집안 정리를 해 놓고 집을 나섰다. 넉넉잡고 세 시간은 걸리리라 생각하고 일찍 나섰지만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너무 먼 길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괜찮을 거야. 너무 오랜만에 먼 길 나서니까 불안한 거야.’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집을 빠져나오는데 아무래도 차 소리가 이상했다. 사실 얼마 전 주차해 둔 내 차를 뒤에서 다른 차가 들이친 사고가 있었다. 그 일로 차를 정비소에 넣어야 하는데, 차를 고치는데 이틀이나 걸린다기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가해자 측에서 보험 처리를 해 뒀다고 했지만 날마다 아이들 통학을 시켜야 하는 입장에서 이틀이나 차를 맡길 수가 없었다. 보험회사에서 렌터카 비용도 나온다지만 읍내엔 렌터카 대여점도 없고, 또 내 승용차에만 익숙한 서툰 운전 솜씨니 남의 차를 몰고 다닐 자신이 없어 이래저래 시일을 늦추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단골 정비소에 들렀다. 차 소리가 이상하다며 먼 길 갈 것이니 점검 좀 해 달라고 했다. 시운전을 해 보더니 부품을 바꾸려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리겠단다. 통영까지 갔다 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며 다녀온 후에 차를 맡기란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마음 탓인지 정비소에 들렀다 나오니 불안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지름길을 택해 국도를 타기로 했다. 싱그러운 오월의 국도 변은 푸름으로 출렁거려 한가롭고 아름답다.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한 곳을 지날 때는 일부러 차창을 활짝 열어놓고 달콤한 향기에 취하고, 온갖 풀꽃이 핀 길섶도 만날 때는 아름답구나 하면서 눈인사도 했다. 차도 사람도 한적한 시골길의 운치에 빠져들며 낯선 산길을 넘고 넘었다.

‘나서길 잘했어. 괜히 꿈 때문에 불안해했나 봐.’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저 길로 가봐. 길이 있을 거야.’ 낯선 길을 가는데 누군가 속삭였다. ‘샛길이 있어 샛길이’ 하면서 ‘샛길을 찾아봐?’, 호기심이 마음을 자극하고, 넉넉한 시간 역시 샛길로 가길 부추기고 있었다.

‘아, 그래, 이 길보다 빠른 길이 있다고 했어. 그 길로 가면 빠르다고 했어.’

남편이 언젠가 일러준 길이 생각날 듯 말 듯했다. 표지판을 유심히 살피며 샛길로 빠지는 길을 탐색했다.

‘좀 멀어도 아는 길을 가는 게 편한데.’

이런 생각도 잠시 했지만 샛길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아는 길은 시간은 좀 더 걸리고 안전하지만 이런 기회 아니면 내가 언제 낯선 길을 가겠는가 싶어 자꾸만 샛길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상하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이야기만 전해 들은 길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하나. 악마의 유혹? 너무 거창한 말이지만 꼭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 앉아, ‘저 길로 가도 길이 나온다.’고 속삭였다.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다 보니 벌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낯선 길을 달리고 있었다. 시멘트 길은 군데군데 깨어져 있고, 조금 더 가니 아예 흙길이다. 내처 달리다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아서 슬그머니 걱정이 되는데 길옆의 논두렁에서 풀을 베고 있는 농부를 봤다. 차를 세우고 차창을 내려 고개를 쭉 빼서 농부에게 길을 물었다.

“아저씨, 통영 가려면 이 길 맞습니까?”

“길을 잘 못 왔건만. 편하게 갈라모 왔던 길을 돌아나가서 큰길에서 우회전하시오.”

“큰길이라면 한참을 다시 나가야 하는데, 혹 샛길 없어요? 이쪽으로 가면 빠른 길이 있다고 들은 것 같아서요.”

“아, 그 길이라면 쭉 가시오. 근데, 찾아 갈랑가? 가다가 계속 직진을 하시오. 비포장 길일 텐데.”

표지판도 없는 도로를 달렸다. 산 하나를 넘었다. 뜻밖의 장소가 나왔다. 눈에 익은 곳이었다. 남편의 친구 공장이 있는 샛길이었다. 그곳은 들 가운데 세워진 농공단지로 남편 친구 공장 외에 여러 업체가 일렬로 들어서 있는 공장지대였다.

‘이런 길도 있었네. 이 길이라면 아는 길이니 괜찮아.’

남편 친구 공장 앞으로 쭉 뻗은 아스팔트 길을 따라 신나게 달렸다. 길 왼 편으로 나지막한 산도 만나고, 파릇하게 돋은 못자리도 만나고,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잡아 놓은 논에서 튀어나오는 개구리 구경도 하면서 달리다 보니 갑자기 시멘트 포장이 된 논길이 나왔다.

‘샛길이라 그런가 봐.’

별생각 없이 그냥 쭉 가다가 킥! 급정거를 했다. 막다른 곳이었다. 더 이상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돌리자니 내 운전 실력으론 어림없을 것 같아 난처해하는데.

‘그 길은 말이다. 입구는 있는데 나가는 곳이 없어. 우리는 그 산에서 죽을 각오를 해야 했다.’

문득 오늘 만날 소녀가 쓴 소설 속의 대화 한 줄이 생각났다. 할아버지가 소녀에게 육이오 동란 때 겪은 전쟁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었다. 평화롭게 살던 작은 시골 마을에 낮에는 군인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공비들을 도왔다는 명목으로 동네 사람들을 뒷산으로 끌고 가 즉결 처분하고, 밤에는 산에 숨어 있던 공비들이 내려와 경찰이나 군인들을 도왔다는 명목으로 동네 사람들을 끌어다가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차를 겨우겨우 돌렸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나절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빠져나올 재간이 없는 막다른 곳을 빠져나오자 나를 위해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 남편 친구의 공장 앞을 지났다. 삼거리가 나왔다. 왼쪽 편으로 마산이란 푯말이 보였다. ‘마산이라면 통영 가는 길이 어딘가 있을 거야.’ 짐작하고 다시 그 길을 들어섰다. 그 아래 시원하게 뚫린 4차선 도로가 빤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마음 가는 대로 따르라.’

그 생각을 따랐다. 다행히 그 길은 지름길이었고 표지판을 따라 통영으로 향하는 데는 이상이 없었다. 고성 지나자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고, 길은 끝없이 막혔다. 거북이 운행을 하면서도 속으로 잘 달려 주는 내 차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드디어 통영 바다가 보였다. 학섬이 내려다보이는 휴게소에 잠시 들러 커피 한 잔으로 간단하게 목을 축이고 출발을 하기 위해 차 문을 열었다.

‘어?’

운전석 문이 열리지를 않았다. 열쇠를 꽂아 돌려봐도 뒷문을 열어 손잡이를 당겨도 요지부동이었다. 그 차의 운전석에 앉은 이래 한 번도 차 문이 잠겨 고생한 적이 없는 나는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또 불안이 엄습해 왔다. 휴게소에 쉬고 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흘금흘금 쳐다봤다.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꼭 도둑질을 하려고 남의 차 문을 열려고 애쓰는 꼴이었다.

학섬 휴게소의 주유소에 들어가 직원에게 운전석 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도움을 청했다. 늙수그레한 아저씨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내 차가 있는 곳까지 오더니 차 키를 달라고 했다. 키를 꽂아 돌려보고 차 손잡이를 잡아당겨 보더니,

“시내 들어가서 정비소에 가 보소. 고장이 거마.”

하면서 주유소 손님 받으러 가버린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가 운전석에 앉았다.

통영 시내에 들어가 정비소를 찾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는데요. 맡겨 놓고 볼 일 보고 오이소.”

바둑을 두다가 나온 정비소 남자는 수염이 덥수룩한 것이 꼭 산적 같았다. 어디가 고장인가 묻더니 차와 나를 요리조리 뜯어보더니 퉁명스럽게 한 마디 했다.

“놔두고 가소.”

남자는 그 한마디를 픽 던지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 다시 바둑판에 눈을 박았다. 어이가 없었다. 속에서 뭔가가 불끈 솟구쳤지만 여긴 타관이다 싶어 참았다. 하지만 차를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데, 남편이 뱁새눈을 하고 째려보는 것 같았다. ‘낯선 곳에서 차가 고장 났다고 아무 곳에나 맡겼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 두말없이 차를 뺐다.

물어물어 목적지인 통영 여고를 찾았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약속 시간이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안심을 하고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나오다 뜻밖의 얼굴을 만났다.

“어! 야, 김춘화.”

반가운 김에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여학교 동창이었다. 여학교 때 같이 문예 활동을 하던 친구가 그 학교 국어 선생으로 있었다. 오래전에 풍문으로 그 학교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갔으려니 여겼다. 다른 학교에 갔다가 다시 그 학교로 왔다고 했다. 반가웠다. 친구도 나도 나잇살을 먹은 티가 났지만 여전히 우린 친구였다.

“여긴 어쩐 일이야?”

“너 만나러 왔지.”

“거짓말인 줄 알고. 아, 오늘 문학 강연한다더니 강연 들으러 왔어?”

“그런 셈이야, 소설 쓰는 너의 제자도 만나보고.”

“어! 너, 강사로 온 거니?”

“대충. 너는 시 쓰니?”

“돈 벌어야지. 시는 벌써 접었다.”

우린 환하게 웃었다. 운동장 가의 화단에 핀 하얀 마가렛꽃도 환하게 웃었다.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는 교정에서 내가 만난 건 사춘기 소녀 시절이었다. 그 친구랑 문예반 활동을 하던 일이며, 교지 편집한다고 원고 모으러 뛰어다니던 일이며, 함께 백일장에 나가 나란히 상을 타던 일이며, 나는 꿈꾸듯이 교정을 거닐었다. 예쁜 꽃들이 피어 있고, 아담한 정원수가 심어진 교정에는 긴 의자, 둥근 의자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여학생들이 환담을 나누거나 쉴 수 있게 가꾸어져 있었다. 소녀 시절 나의 교정도 그렇게 아름다웠다.

나는 그곳에서 오월이면 그윽한 장미향으로 뒤덮였던 내 모교의 장미 화단과 예림 숲을 떠올리고 있었다. 문학에 대한 열정, 앎에 대한 목마름으로 도서관을 내 방처럼 들락거렸던 소녀 시절이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30여 년을 훌쩍 건너뛴 친구와의 만남 때문일지 모른다.

친구는 오후 수업이 있어 교실로 향하고, 나는 소녀와의 약속을 위해 문예반으로 향했다. 이미 소설과 시를 쓰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내게 소설을 보냈던 여학생은 눈이 무척 맑고 컸다. 커다란 눈은 꿈꾸듯 나를 바라봤다. 작가가 꿈인 소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여학교 때의 내 모습을 반추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틈새로 어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 여고 시절과 비슷할까 싶어 신기했다. 문학, 인생, 소설 쓰기에 관한 모든 것, 책 이야기 등. 그 소녀와의 인연은 이름부터 닮았다. 내 예명과 그 소녀의 본명이 같았다. 우연치고는 묘하지 않는가. 예비 작가의 꿈은 야무졌다. 얼마나 앎에 목말라했을까.

“늘 외로워요.”

“학생에게 그 외로움은 천형 같은 거지. 그 외로움 때문에 너는 글을 쓰지 않니?”

“네,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 연극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지만 돌아서 보면 글을 쓰고 싶다는 그 한 가지를 위해 그랬다는 것을 느끼곤 해요.”

“그래, 나도 너만 할 때 그랬단다. 한 때는 연극에 미쳐서 극예술 연구원 회원으로 있던 친구를 쫓아다닌 적도 있단다. 지나고 나니 그게 다 글감이었지. 앞으로 너도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거다. 어떤 경험이든 작가가 꿈인 너에게 도움이 될 거다. 넌 뛰어난 작가가 될 수 있을 거야. 네가 쓴 소설 속에서 이미 파악했는걸. 앞으로 우리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길 바랄게.”

“선생님, 할 수 있을까요?”

“그럼, 학생은 분명 해 낼 수 있을 거야. 재능이 있으니까. 나도 너만 할 때 소설을 썼단다. 여고생일 때, 시를 썼지만 마음속으론 작가가 되기로 작정하고 있었거든.”

그 소녀도 아마 언젠가는 문단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타고난 끼는 풀어내지 않으면 자기 인생을 황폐하게 만든다. 소녀는 사회성 짙은 문제작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내게 보내 준 소설 역시 사회 문제를 다루었다. 육이오 동란으로 정신병을 앓는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인 소녀 이야기는 아직 미완성이지만 소설이란 집 한 채를 짓는 것과 같으니까 언젠가 멋진 집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을 짓는 과정이 소설 쓰기 과정과 비슷하다. 어쩌면 작가 지망생인 그 소녀에게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에게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오랜만에 토론다운 토론을 했다. 그 소녀로 인해 여학교 때 내 꿈은 작가였고, 학생들 앞에서 문학과 인생에 대한 강연을 하고 싶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내곤 혼자 미소 지었다.

세 시간을 여학교 교정에서 보냈다. 토끼풀꽃과 삐비 꽃, 마가렛 꽃 등,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교정을 떠나면서 나는 소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작은 소녀야, 나보다 더 훌륭한 작가가 되어라. 세계 문단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국 작가로 등록되기를 기원할게.’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 바닷가의 횟집에서 친구랑 저녁을 먹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통영 다리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바닷물에 노을빛이 스미어 불그스름하게 흘렀다.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다가,

“아차, 큰일 났네.”

그제야 아이들 생각이 났다. 친구의 손 전화를 빌러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난데 아직 통영이거든, 늦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당신이 애들 좀 데려갈래요?”

“뭐 하는 거야? 진주 농민회 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중이다. 내가 어제 말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원래 어딜 가면 간다고 사전에 통보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니 내게 말을 했을 리 없건만 말을 했다고 큰소리친다.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해요?”

“내가 아나?”

전화가 뚝 끊어졌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식탁에 나온 매운탕을 얼렁뚱땅 먹고 일어섰다. 아침의 불안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차의 상태도 불안하지, 운전석의 차 문은 열리지 않지, 어둠살은 내리지, 길눈은 어둡지, 저녁도 굶고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마음은 다급하고, 남편이 너무 야속하고, 생전 나들이라곤 모르는 아내가 몇 달만에 한 번 나갔는데 이렇게 골탕을 먹이는구나 싶으니 그냥 펑펑 울어버렸으면 좋을 것 같았다.

통영에서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출발했다. 익숙하지 않은 밤길을 달렸다. 아무리 빨리 가도 아이들은 두 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가속 페달을 있는 대로 밟았다.

‘아까 왔던 지름길이 빨랐지? 그 길을 찾으면 금세 도착할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질러가는 길이 기억나지 않는다. 4차선 밤길은 왜 그리 어둡고 빠지는 곳은 많은지. 아차, 했을 땐 이미 한참을 엉뚱한 길로 달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었다 싶은데 단속반으로 나와 서 있는 경찰을 만났다. 차를 세우고 의령 가는 길을 물었다.

“아주머니 길을 잘못 드셨군요. 왔던 길을 다시 나가야 해요.”

“얼마나 돌아가야 하나요?”

“한 20분 나가다 보면 네 거리가 나와요. 거기서 좌회전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의령이나 함안 쪽으로 빠지는 지름길 혹시 모르셔요?”

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시간은 쉬지도 않고 휙휙 지나가고 도착해야 할 시간에 나는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다. 20여분을 달렸던 길을 다시 돌아 나왔다. 경찰이 가르쳐 준 길에서 방향을 바꾸어 마산 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번엔 제대로 든 길인가 싶어 달리다 보니 눈에 몹시 익은 곳이 나왔다. ‘맞다. 여기가 지름길이야.’ 망설이지도 않고 샛길을 들어섰다. 오전에도 그 길을 지났을 텐데 보이지 않던 샛길이 캄캄한 밤에 툭 불거져 나오는 것이 신기했지만 낯익은 곳이라 안심하고 달렸다.

그러나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또 엉뚱한 곳이다. 어딘가에서 꺾어야 할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방향 감각이 전혀 없었다. 동네에 가서 물어봐야지, 하고 동네 나오는 곳까지 달렸다. 길 가는 사람 한 사람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참 희한했다. 표지판도 보이지 않고, 길가에 있는 집들도 불이 켜진 집이 보이지 않고, 시간은 자꾸 흐르고, 길가에 지쳐 퍼질러 앉은 아이들 모습만 눈에 어룽거리고. 입술이 바작바작 탔다.

그때였다. 거짓말처럼 눈앞에 푯말이 나타나고 눈에 익은 지명이 나왔다. 여항산, 함안에 우뚝 솟은 산이다. 여항산만 넘어가면 의령이다. 나는 안심을 하고 화살표 방향으로 좌회전을 했지만 어쩐지 한 번도 가본 기억이 없는 길이라, 길 입구에서 잠시 망설였다.

‘낯선 길 같은데. 어쩌지?’

‘그냥 가, 괜찮아. 지름길이잖아.’

누군가 그냥 그 길로 가라 한다. 밤은 자꾸만 깊어 가고, 길을 물을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지, 내친김에 달렸다. 길이 좁았다. 갓 포장을 한 것처럼 검은 바탕에 양옆으로 하얀 줄이 선명한 좁은 길은 나를 위한 치장 같았다. 거침없이 가도 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고 산을 지나고 들을 지나 산속으로 자꾸만 이어졌다. 어딘가 푯말이 보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푯말은 보이지 않고, 머릿속엔 아이들 얼굴만 가득 찼다.

아이들과의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나버렸다. 만화방에서 기다린다고 했지만 만화방 문 닫을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길에서 기다릴 것이다. 마음은 조급한데 농가도 보이지 않고, 논과 과수원, 하우스 단지를 지났다. 외길에 차 한 대 나타나지 않았다. 사방은 어둠에 쌓여 있고, 오직 내 차의 불빛만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이 좁은 길은 끝없이 나를 빨아들였다.

능선을 하나 넘었다. 마을이 나타났다. 주황빛 가로등 불빛이 어찌나 반가운지. 그러나 집집마다 불이 꺼진 상태였다. 이상하게 불 켜진 집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은 적막감에 가득 차 있고 커다란 정자나무 아래서 개울물 소리만 찰랑거렸다.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되 집어 나가야 해.’

마음은 돌아가고 싶은데 오른발은 계속 가속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그 마을을 지났다. 논과 개울 옆을 지났다. 좁은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나는 그 길을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어딘가 길이 있을 거야. 나는 그 길을 찾아 빨리 아이들에게 가야 해. 이미 돌아서 가기엔 너무 먼 길을 와버렸어. 분명 길이 있을 거야.’

나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길을 가다가 보니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한 길은 개울을 끼고 가는 포장된 길이고, 한 길은 산 쪽으로 난 비포장 길이었다. 잘 포장된 넓은 길을 택했다. 골짝으로 한참을 들어가자 동네가 나타났다. 커다란 정자나무가 우거진 곳에 다리도 있고, 다리 아랜 제법 굵은 물소리가 들렸다. 낯선 동네였지만 낮에 봤다면 ‘와 멋지다.’ 싶을 만치 포근하게 감싼 분지 속에 든 동네였다. 다리를 건넜다. 길 위로 다랑이 같은 비탈에 지어진 집들에선 여전히 불빛이 없었다. 개 한 마리 짖는 소리도 없었다. 완전한 적막에 쌓인 동네라고나 할까.

그런데 다리를 건너 들어가자 산이 턱 가로막더니 차 한 대 돌릴만한 타작마당이 나오고 포장된 길이 끝나 버렸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집 몇 채가 죽은 듯이 붙어 있었다. 다시 막다른 곳이었다. 브레이크를 밟은 발바닥에서 진땀이 나면서 뒷골이 뻣뻣하게 당겼다. 꼭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차의 시동을 걸어놓은 상태로 기아를 중립에 놓고, 핸드브레이크를 당겨 놓고 운전석 창문의 손잡이를 당겨 봤다.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창문 네 개의 잠금 키를 눌렀다.

창문 네 개의 차창이 안에서 잘 잠겼는지 다시 확인을 하고 창밖을 살폈다. 차가 부릉부릉 거리고, 환하게 차의 불을 켜 두었지만 어느 집에서도 불을 켜는 기척은 없었다. 길을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불빛이 있는 집을 찾았지만 가로등 외엔 어느 집에도 불빛이 없었다. 죽은 마을 같다는 생각을 하자 식은땀이 흘렀다.

타작마당에서 산으로 오르는 좁은 길이 있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 길은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천천히 차를 돌렸다. 돌아 나오다 비포장 길과 아스팔트 깔린 길이 갈라진 삼거리에 닿았다. 왔던 길을 돌아나가려는 데 자꾸만 오른쪽 편의 비포장 길이 눈에 밟혔다. 차를 세우고 심호흡을 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백미러에 주황색 불빛이 빤히 비쳤다. 어느 곳에서도 없던 불빛이 갑자기 백미러에 비친 것이다.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려 백미러 속을 봤다. 불빛이 여전히 있었다. 눈을 들어 길 위의 마을을 봤다. 옴싹 한 곳에 조립식으로 지은 작은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었다. 그림자가 어룽거리더니 현관문이 열리고 누군가 마당으로 나왔다.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차를 세우고 오른쪽으로 차 문을 열고 나와 염치 불고하고 그 집으로 뛰어들었다.

“아주머니!”

“아이쿠, 깜짝이야. 누고? 이 야밤에?”

길을 잘못 들었다며 길을 묻자 아주머니는 집에 들어가 아저씨께 물어보라 했다. 현관문을 두드리자 오십 중반은 됨직한 아저씨가 나왔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엉뚱한 길로 왔다고 한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 진동까지 나가서 의령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여긴 막다른 동네란다.

“여기서 지름길은 없어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돌아나가기엔 너무 먼 길이라.”

“저 산을 넘으모 되는 디. 험해서 넘을 수 있을랑가? 밤중에 아주머이 혼자서 넘것어예?”

동네 뒷산을 봤다. 거대한 어둠이 아가리를 따악 벌리고 내려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막다른 곳이 없다. 그저 앞으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돌고 돌아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인생 아닌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길이 있을 것이다. 바로 가든 둘러가든.

“저 산을 넘으면 얼마나 걸려요?”

“군북까지 한 15분 걸릴까?”

“차는 갈 수 있어요?”

“갈 수야 있지. 비포장 길인데다 산이 험해서 그렇지.”

겁도 없이 나는 산을 넘기로 작정했다. 그 집에서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다. 넉넉잡고 한 시간만 기다리면 도착할 것 같다고.

“밤길인 디, 산이 짚은 디.”

하면서 아저씨는 실실 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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