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Jul 30. 2022

53. 두꺼비와 소설책

두꺼비와 소설책    

 

  흐린 날이다. 농부는 새벽부터 일어나 설친다. 마당의 잔디를 깎고 울타리와 차밭을 뒤덮은 풀과 이런저런 넝쿨을 걷어내고 예취기를 메고 주변을 정리 정돈한다. ‘당신 없으면 이 골짝에 못 살겠다.’ 진심이다. 농부가 없으면 한 달만 방치해도 집안이 온통 풀과 나무에 뒤덮일 기세다. 야생 짐승들과 물것들의 낙원이 될 것이다.


 요즘 내 과심 사는 두꺼비 한 마리에게 꽂혔다. 이 녀석이 나를 무서워하지 않고 굴속에서 나와 빤히 쳐다본다. 내가 문을 열 때를 아는 것처럼 배를 불룩하게 해서 바라본다. 음식 찌꺼기를 새들 먹으라고 던져줬더니 이 녀석이 그 맛을 들인 것은 아닐까. 벌이나 개미 같은 날 것을 먹는 식성인 줄 아는데 밥풀도 먹는 것일까. ‘얌마, 나 무섭지 않아?’ 말을 걸어도 꿈쩍도 않는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가 생각난다. 설화였나. 할머님이 들려주셨던가. 어떤 마을에 가난한 처녀가 살았다. 처녀는 아무도 모르는 친구가 있었다. 부엌 살강 밑에 사는 두꺼비였다. 처녀는 두꺼비와 먹을 것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 마을에는 괴물이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제각을 지어 괴물을 모셨다. 해마다 성대하게 제사를 지내고 처녀를 제물로 받치는 풍습이 있었다. 


 그 해 제비뽑기에서 가난한 처녀가 당첨되었다. 처녀는 두꺼비에게 ‘이제 내가 없단다. 다른 곳에 가서 잘 살아라. 이게 마지막 밥이다.’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끌려 제각에 들어가 앉자 문이 잠겼다. 처녀가 공포에 질려 달달 떠는데 친구였던 두꺼비가 나타났다. 처녀는 두꺼비를 안고 어둠 속에 웅크렸다. 잠시 후 지붕이 흔들리더니 붉고 거대한 지네가 처녀를 먹으러 내려왔다. 처녀는 기절을 했다. 두꺼비는 하얀 독을 쏘고, 지네는 붉은 독을 쏘았다.    


 다음 날 아침 동네 사람들이 처녀의 뼈를 거두려 제각 문을 열었을 때 처녀는 살아있고, 거대한 두꺼비와 거대한 지네가 죽어 있었다. 두꺼비가 자신을 돌봐준 처녀에게 은혜를 갚았다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두꺼비를 장사 지내주었다. 동네의 우환이 없어진 마을은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도 없어지고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는 지네와 두꺼비에 얽힌 전설이다. 동네마다 그럴싸한 전설이나 설화가 구비문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구비문학은 사람의 길을 비추는 햇살 같은 것은 아닐까. 


 요즘 책에 푹 빠져 지낸다. 추리소설은 설렁설렁 잘 넘어가는 장점이 있다. 누가 범인인지 금세 알 수 있는 것보다 복선과 추리를 거미줄처럼 엮어 짠 소설이 더 흥미롭다. 몰입의 경지에 빠져 시간을 잊게 되니까. 다니엘 콜의 작품이 그렇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그렇다.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는 처음 시작만 읽어도 살인범이 누구인지 점칠 수 있다.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원인 분석이 궁금해서 더 열심히 추적하게 되기도 한다.  두 작가의 추리 소설에 매료되었다가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잡았다. ‘이 작가 진짜 이야기꾼이네.’ 나의 공감을 사자 일사천리로 읽어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잡은 책이 네빌 슈트의 <파이드 파이퍼>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하루가 지나 있었다. 사물의 형상이 두 개로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시신경이 경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하게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작가의 시선이 참 따뜻하다. 작가는 누구나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는 아닐까. 사람의 심성을 파악하는 것에 초점이 가니까. 작중 인물의 내면으로 깊어 들어가 보면 살인자나 흉악범 같은 악인도 비열하다 평가받는 인간도 그 내면에는 사랑을 갈구하고 어린애처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파이드 파이퍼>는 어린아이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깔린 소설이다. 2차 대전 당시 변호사 업무에서 퇴직한 영국 노인이 겪은 전쟁 이야기다. 하버드는 돈 걱정 없는 부유한 노인이다. 전쟁으로 공군 비행사였던 아들을 잃고 아내도 죽고 딸은 멀리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노인은 세상 소식에 관심이 없었다. 외로웠고 사람이 그리웠던 그는 프랑스 근교의 시골마을로 낚시 여행을 떠난다. 푸른 송어를 잡을 만반의 채비를 하고. 프랑스 시드롬은 해마다 가족 휴양지였다.  


 그는 푸른 송어를 낚으며 소일하다 독일 군이 승승장구하며 프랑스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국 영국으로 돌아가 조국을 위해 헌신할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가 떠날 준비를 하자 같은 호텔에 투숙했던 부부가 찾아와 부탁을 한다. 국제 연명에서 일하는 남자는 전쟁이 심상찮다며 어린 두 아이를 영국의 동생에게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호텔에서 천진난만한 두 아이에게 이미 정이 들었던 그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준다. 


 그렇게 두 아이를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를 헤맨 이야기다. 아무리 처참한 전쟁도 천진난만한 아이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요. 놀이와 같다는 것,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탈출하기는 요원했다. 그 여정에서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 소년 소녀를 거두게 되고 마지막에는 독일 게슈타포의 조카까지 거두어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우여곡절을 겪고 마침내 영국으로 밀항한다. 여섯 아이들을 몽땅 전쟁이 없는 미국의 딸에게 보낸다.


 그는 영국 런던의 호텔 흡연실에서 작가를 만난다. 독일의 침공으로 호텔이 부서져 내리는 과정을 바라보며 작가에게 그가 두 달 동안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마다 그를 건져 올려준 것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영국 아이 둘, 프랑스 아이, 네덜란드 아이, 유대인 아이, 독일 아이, 그가 맡았던 두 아이 외에 네 아이를 거둘 수밖에 없었던 현실, 죄 없는 아이에게 독일인이라고 돌팔매질을 하는 어른들,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까지. 그는 여섯 아이를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은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탈출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아이들이 없었다면 그는 권태와 외로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파이드 파이퍼>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눈을 감았다. 내 나이 또래인 주인공 영국 신사가 다국적 고아 아이들을 데리고 전쟁의 소용돌이를 벗어나는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말도 통하지 않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누구나 가진 인간애가 빛나는 소설이었다. 


 날마다 제 자리에서 문을 여는 나를 기다려주는 것 같은 두꺼비의 까만 눈과 불룩한 배 납작한 발 갈퀴를 바라보며 ‘우리도 통하는 것 같지? 친구 할까?’ 통하지 않는 말을 건네 본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금세 친구가 되는 아이들처럼 두꺼비와 나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이 빛나는 마법>스페파니 크리코리안의 소설책을 잡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52. 참 잘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