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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ug 17. 2022

55. 책 다리미와 남매는 떠나고

책 다리미와 남매는 떠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대청소까지 말끔하게 하는 남매다. 이불이며 빨래며 정리정돈을 해 주고 떠날 준비를 한다. ‘3주 후에 다시 만날 테니 너무 섭섭해 마시고 엄마 아빠 알콩달콩 잘 지내세요.’ 딸의 애교스러운 인사에도 심드렁하다. 8월 초에 왔던 남매는 <풀등에 걸린 염주> 책거리 때문에 돌아가는 일정을 늦추었다. ‘우리가 출판기념회 열어드려야 했는데 미안해요.’한다. 


 사실 지난 2월에 소설집이 나오자 남매가 출판기념회 이야기를 꺼냈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코로나 팬데믹에 물가고가 치솟는데 이런 시기에 괜히 사람들 모았다가는 뒷말이 많지 않겠느냐고 잘랐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부담 주는 것이 가장 싫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행사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두렵고 겁났던 것이다. 소설집 낸 것이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자랑스럽지 않았다. 꼭 덜 익은 과일을 시장에 내놓은 기분이랄까. 1997년 신춘문예로 등단 절차를 거친 후, 이십 수년 동안 소설을 써왔지만 나는 아직도 소설에 자신이 붙지 않는다. 


 거실 구석에 쟁여진 소설책 꾸러미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2006년도 첫 수필집 <푸름살이>를 엮었을 때는 비록 소설집은 아니지만 내 이름으로 나온 작품집이 참 소중해 보였다. 여기저기 친필 사인을 해 보냈었다. 물론 출판기념회는 엄두도 못 냈다. 이번에는 그런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언젠가 소설책 한 권은 엮어야지.’ 간절하게 바라긴 했지만 작품집을 엮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냥 포기하고 살았다. 떠들썩하게 광고할 일도 없고 남 앞에 나서서 내가 작가라고 말하는 것조차 민망했다. 농사꾼 아낙으로 사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지만 작가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도 못하는 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삶이 그러했다. 글이 쓰고 싶어 안달할 때는 먹고사는 일, 아이들 뒷바라지가 나를 잡았고 몸이 망가지기 시작할 때는 바깥나들이를 접게 되었다. 문학 동아리 활동조차 힘에 부치면서 네모상자로 세상보기 했지만 글 쓰고 책 읽는 일을 접을 수는 없었다. 농사를 지을 때도 나는 끊임없이 글을 썼다. 내일 일꾼들 수발할 일이 남아있어도 밤이면 일기라도 쓰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루를 온전히 산 것 같았다. 막상 몸이 탈 나면서 시간이 남아돌자 오히려 치열한 글쓰기에서 기운이 빠져버린 느낌이 들어 황당할 때가 있다. 오직 독서와 글쓰기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너무 지쳐버린 느낌이랄까. 


 그런 와중에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어 <풀등에 걸린 염주> 작품집 한 권을 묶게 되었다. 또한 창작 활동비도 받았다. ‘아빠가 농사 포기하니 엄마가 돈 되네.’ 남매의 말이 참말이다. 나도 신기하다. 농사꾼이 농사를 대폭 줄여버리고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으로 살겠다고 작정했을 때는 생활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되겠지.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씀씀이를 줄이면 되겠지. 이보다 더 힘들 때도 살아왔는데 뭐.’ 먹고사는 일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아버리자 희한하게 내 호주머니 채워주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게 남은 나날은 오직 작품만 쓰라는 계시 같았다. 넓게 보고 깊이 들어가자. 


 그런데 지난 7월 경남작가회 소설분과 하 작가께서 책거리를 하자는 것이었다. 지난 2월 소설책이 나왔을 때 소설분과 작가들이 모여 출판기념회 겸 자축연을 했었다. 그때 송 작가께서 거한 저녁까지 샀었다. 화기애애한 소설가 모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다시 책거리 즉 책 다리미라니. 망설였지만 경남작가회 소설분과의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바람에 수락을 했었다. 소설분과라고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매달 회비를 내는 것도 아니다. 작가회원 몇 명이 모여 작품 토론회를 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했었다. 막상 일을 벌이고 보니 경비 문제가 있었다. 경남작가회가 후원을 해 주기로 했다지만 경남 작가회라고 살림이 돈독한 것도 아니다.


 그때 ‘창작 활동비는 이런 것에 쓰라고 준 거야.’ 머릿속이 맑아졌다. 출판기념회의 주체는 작품집을 낸 사람이 주체라 모든 경비며 손님 접대도 작가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책 다리미에 대해서는 나도 생소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난 모르겠는데. 알아서 하겠지.’ 그랬다가 농부에게 혼났다. 코로나가 다시 만연해지면서 손님 초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는 사람만 대접하자. 몇 사람이 올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어떻게 손님 접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남매에게 이야기했더니 자기들이 와서 농부랑 알아서 하겠단다. ‘엄마는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그 말에 용기를 냈다. 잔치하라고 멍석까지 깔아주는데 못 하겠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는 내가 사는 고장을 택했다. 군민회관 소회의실을 빌렸다. 회의실 정리정돈은 남매가 맡아했다. 서울 사는 원로 선생님께서 떡을 해서 나누어 주는 것도 좋단다. 코로나가 다시 만연하는데 회의실에서 먹을거리를 나누어주는 것도 안 된다고 했었다. 마스크는 필수라고 했다. 어쨌든 개별 포장된 물과 떡을 준비하고 책을 챙겼다. 음식점 예약도 했다. 


 2022.  8.  13. 군민회관 소회의실에서 책 다리미를 했다. 책 다리미는 번잡하지 않고 속닥하게(*오붓하게) 진행되었다. 사회를 본 하 작가의 말에 울컥했다. ‘지난 2월에 책이 나왔지요. 하메나 하메나 출판기념회 소식이 날아오려나.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라 일을 벌였습니다.’하면서 박경리 선생님 이야기도 했다. 천둥번개 치고 국지성 소나기도 쏟아졌다. 빗길에도 참석해 주신 여러 선생님과 경남작가회 시인과 소설분과 작가, 시낭송에 기타 연주를 해 주신 분과 플롯 연주를 해 주신 분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저녁은 시인이자 친언니께서 샀다. 


 어떤 행사에 주인이 된다는 것은 강심장이어야 하는 것 같다. 문학 동아리 모임이나 공식적인 자리조차 참석하기를 꺼려온 나였다. 그런 내게 나를 위한 자리를 펼쳤으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는지 다음 날은 온종일 꿈속에 빠져 지냈다. ‘속닥하게 잘 넘어갔다.’ 안도감과 함께 밀려오는 잠의 신에 잡혀 맥을 못 췄다.    


 그리고 오늘, 남매는 떠났다. 남매가 떠난 집은 다시 적막이 깃든다. 한 사람의 자리도 넓은데 두 사람의 자리는 더 넓다. 우선 재잘거리며 장난치던 목소리도 모습도 없다. 남매는 마당의 잔디도 깎고 농부랑 차밭도 다듬었다. 장작도 패서 쟁였다. 내가 일만 시켜 미안하다고 하면 ‘엄마, 우리도 서른이 넘었어요. 알아서 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행동은 여전히 장난꾸러기다. 나는 음식 만들기 좋아하는 아들 덕에 삼시 세 끼에서 자유로워졌었다. 남매가 의논해서 집안 살림을 살아줬다. 삼시 세 끼며 차를 달이고 커피를 대령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두 아이가 챙겨주는 것만 먹고 느슨하게 소설책을 읽을 수 있었다. 


 에르베 르 텔리에의 <아노말리> 2020년 프랑스 콩코르상 수상작이다. 아노말리가 무슨 뜻인가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렇게 나왔다. <데이터베이스가 추가, 삭제 또는 변동이 될 때 생기는 불필요한 사항.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비행기 한 대가 몽땅 복제되어 나타난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 3월과 6월, 석 달 간격으로 프랑스에 도착한 비행기, 똑같은 두 사람들 두고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가. 누가 복제인간일까. 황당한 설정이지만 또 나름 의미 있는 소설이기도 했다. 나도 복제인간 아닐까. 광활한 우주에 지구라는 행성이 또 있다면 지구 전체가 복제된 상황이라면. 


 남매가 제자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왔을 때 나는 어슐러 케이 르귄의 산문집 <남겨 둘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를 읽고 있었다. 팔십 세 살의 노 작가가 쓴 노인의 삶은 나를 반추하는 시간이 되어준다. 남아도는 시간이 없다는 작가의 말이 내 말 같다. 온종일 집에 있어도 남아도는 시간이 없는 나는 한숨을 쉬며 투덜거리곤 한다.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아. 온종일 종종걸음 치다 하루를 말아버리잖아.’하면서 속상해하다가도 책 다리미를 해 준 경남작가회 소설분과 작가들 생각하면 보답할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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