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소설>
꽃구경
1.
아내가 꽃구경 가잔다. 눈꽃처럼 휘날리는 벚꽃거리를 걷고 싶단다. 바람이 불적마다 열 대 여섯 살 시절로 돌아가 첫 정에 들뜬 소녀이고 싶단다.
나는 며칠 째 몸살로 오한이 나서 벌벌 떠는데. 뼈마디마다 바늘로 쿡쿡 찌르는 통증을 참으며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철없는 아내는 연신 꽃구경 타령이다.
내 기척이 없자 살그머니 옆에 와 앉은 아내가 내 이마를 짚더니
"어머, 열이 있는 것 같아. 많이 아파요? 약 사 올까요?"
하면서 근심스러운 표정이다.
나는 괜찮다는 말도 하기 싫어 눈을 감는다.
아내는 내 눈치가 보이는지 조용히 방을 빠져나가며 ‘우리 서방님, 몸살 났네. 열꽃이 발갛게 피웠네. 어쩌나 꽃구경은 다 틀렸네. 꽃이 서운하겠네.’ 아내가 더 서운한 목소리다. ‘저 철딱서니 없는 여편네. 언제쯤 철이 들려나.’ 나는 또 한숨을 푹 쉰다. 시집올 때나 십 년이 훌쩍 흘러가버린 지금이나 아내는 철이 없다. 나이 값 좀 하라고 구박을 하고 눈살을 찌푸려도 무안해하기는커녕,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해실 해실 웃는다. 그 웃음이 어찌나 천진하던지 나는 그만 초등학교 3학년짜리와 말다툼을 하는 것 같아서 마주 웃고 만다.
2.
저녁 상 앞에 앉았다. 밥을 퍼다 내 앞에 놓으며 아내가 말한다.
“벚꽃 구경 오라는데. 나갔다 와도 돼요?”
누군가와 연인처럼 팔짱 끼고 꽃잎이 함박눈처럼 흩날리는 밤길을 걸을 생각이란다.
"누구랑?"
"젊은 남자랑, 여자랑."
아내가 눈을 찡긋하며 배시시 웃는다.
“남편은 아파 죽든지 말든지 딴 놈이랑 꽃구경은 해야겠다 이 말이지?”
내 목소리에 비꼬임이 들어갔지만 아내는 설거지통에 눈을 박고 부지런히 그릇을 헹군다. 물소리에 내 목소리를 못 들었는지 말이 없다. 좔좔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가 얄밉다. 아니, 듣고도 못 들은 척 딴전 일지 모른다. 아내는 참 편리한 사고방식을 가졌다. 남의 말을 별로 귀담아듣지 않는다.
아무래도 아내를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고 와야겠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양말을 신는다.
"차 갖고 가야 해? 말아야 해? 나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태워다 줄게."
“자기 괜찮겠어. 우리 자기 최고!”
아내가 벚꽃처럼 활짝 웃으며 달려와 내 볼을 감싸고 입술에 입을 쪽 맞춘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다.
"엄마, 술 너무 먹지 말고 재밌게 놀다 오셔요."
아내는 콧노래를 부르며 외출 준비를 한다. 딸에게 어떤 옷을 입을까. 무엇을 신을까. 나 너무 늙었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딸과 노닥거리는 것을 보면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분간이 안 간다. 도대체 마흔의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거리가 온통 벚꽃 천지다. 아내의 말대로 벚꽃이 함박눈처럼 휘날린다. 아이도 어른도, 젊은이도, 노인도 마냥 행복해하며 야경을 즐긴다. 휘황찬란한 도심의 거리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일 없으면 잠이나 자지. 뭐가 좋다고 꽃 타령인지. 원”
나는 불면 소리로 투덜거리지만 아내는 연신 생글생글한다.
“봐, 나오니까 좋지? 저기 두 사람 참 행복해 보인다. 그치?”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고 걷는 청춘 남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가 슬그머니 내 손을 잡는다.
“운전 중이다.”
톡 쏘았지만 아내에게 잡힌 손은 쉬 뺄 수가 없다.
“당신하고 둘이서 저 꽃길 걸을까? 저 두 사람처럼 우리도 팔짱 끼고 응?”
아내의 눈이 장난스럽게 반짝인다.
“됐네요. 가서 젊은 남자랑 맘껏 즐기다 오소.”
철없는 아내의 꽃구경은 도로변에 위치한 술집 간판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일단락 났지만 혼자 돌아오면서 나는 자꾸만 쓸쓸해진다. 외간 남자랑 술잔을 부딪치며 환하게 웃고 있을 아내의 모습이 꽃잎처럼 아름다울 것 같다.
3.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째깍째깍 시계의 초침 소리만 자꾸 크게 들린다. 자정이 다 됐을 텐데. 이 여자가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적당히 즐기고 오지. 핸드폰을 들려 보냈는데도 마음이 안 놓인다. 그렇다고 전화를 할 수도 없다. 알량한 자존심이랄까. 부뚜막에 올라 앉힌 아이를 보는 것처럼 아내가 밖에 나가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술 먹고 싶다더니 곤드레만드레 된 것은 아닌지. 아내 말을 들을 걸 후회도 된다. 아내는 늘 둘이 놀자는데. 나는 늘 둘이 노는 것에 서툰 남자다.
이리 뒤 척 저리 뒤 척하는데.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아내의 전화다. 발딱 일어나 앉았다. 전화를 받아 말아. 망설이는데. 아이 문이 열리더니 딸이 전화를 받는다.
“응, 아빠 자나 봐요.”
곧 전화가 끊어질 것 같아 헛기침을 했다.
“전화기 이리 가져 온나.”
"여보! 난데. 당신 피곤한데 그냥 택시 타고 갈까?"
아내가 얼큰하게 술 취한 목소리로 콧소리를 낸다. ‘그래라.’ 한 마디만 하면 끊어져버릴 전화라는 것을 안다.
"어디고?"
"자기 올 거야?"
금세 환하게 바뀐 목소리다.
밤길을 달려 아내를 태우려 간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아내는 어디에도 없다. 다시 전화를 한다. ‘응 지금 나가고 있어.’ 상가 건물이 즐비한 골목 안쪽에서 아내가 젊은 남자의 팔짱을 끼고 헤실헤실 웃으며 나온다. 그 주위를 아무리 살펴봐도 찻집이나 술집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탄 차를 발견한 아내가 손을 흔든다. 운전석에 앉은 내 모습이 보일 리 없지만 지레짐작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 아는 손짓이다. 그 남자에게 잘 가라며 악수를 하고 폴짝폴짝 뛰어온다. 차의 문을 열고 돌아서서 다시 그 남자에게 손을 흔든다. 그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마주 손을 흔들다 나를 의식하는지 무춤하다. 아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옆 골목으로 사라진다. 운전석에 앉은 나를 볼 수도 없을 텐데 인사를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내와 팔짱을 끼고 걸어온 것이 미안해서일까. ‘남자 새끼가 소심하기는 쯧’ 혀를 찼지만 내 속이 편치는 않다.
옆자리에 앉은 아내에게서 달콤한 홍시 냄새가 난다. ‘여보, 저기 풍경 있잖아. 거기서 어떤 남자가 애인이랑 쌈을 하는 거야. 여자는 처녀고, 남자는 유부남인 게 눈에 보이는 거 있지. 어쩌고 저쩌고’ 아내는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술집 <풍경>에서 만난 사람들 표정까지 익살을 섞어가며 조잘거린다. 나는 아내의 말을 중간에서 뚝 분지른다.
“그 남자 누구야. 아까 팔짱 낀 남자. 그리고 둘이 어디 갔다 오는 거야?”
갑자기 아내의 눈이 야릇하게 변해서 나를 빤히 본다. 까만 눈동자가 깜빡깜빡하더니 볼에 입을 쪽 맞춘 다음 운전대 잡은 내 팔에 매달리며 온 몸을 기댄다.
"당신, 질투? 아, 행복해. 왜 알잖아 초등학교 때부터 날 쫓아다녔다는 얼간이 그 친구. 그리고 저 골목 안에 노래방 새로 생겼어. 당신 몰랐구나. 아직 그곳에 친구들 다 있어. 나랑 재만 살짝 빠져나온 거야. 재도 마누라한테 꽉 잡혀 사나 봐. 계속 전화 오더라. 빨리 안 오면 쫓아오겠다나 봐. 저 친구 나서는 것 보고 나도 따라 나왔지. ‘우리 데이트 간다. 잡지 마.’ 했지. 근데 우리 자기 잠도 못 자고 미안해라. 참, 나 벚꽃 구경 못했어. 모두 술이 고프다고 야단이잖아. 난 꽃구경이 더 고팠는데. 우리 저 뒷산 벚꽃 공원에 갔다 집에 가면 안 될까? 벚꽃이 눈 온 것처럼 피었대. 가로등도 환하게 켜져 있고, 거기 나무의자도 있다는데. 당신 가 봤어?"
“내가 그런데 왜 가?”
“그러니까 가 봐 우리.”
아내의 손이 괴춤 안 쪽으로 쓱 들어온다. 아내의 눈이 살살 웃는다. 나는 아내의 눈웃음에 당할 재간이 없다.
“거기 우범지대다. 얼마 전에 내 친구가 목매달았단다. 여편네가 딴 사내랑 눈 맞는 바람에 그랬다지. 나도 오쟁이 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여편네가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꽃구경 타령이나 하고 말이야. 첫사랑 사내랑 팔짱을 끼고 다니질 않나. 근데 말이야 그 자식, 순 병신이야. 바람난 여편네 탁 차 버리고 새 장가들어 잘 묵고 잘 살지 죽긴 왜 죽냐. 벼엉신.”
말을 하다 보니 진짜 열 뻗친다. 아내의 손이 괴춤에서 쓱 빠져나간다. 갑자기 아랫도리가 허전하다. 아내의 표정을 슬쩍 훔쳐봤다. 거의 울 쌍이다. 아니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싶어 잠자코 차를 출발시켰다.
집으로 오는 내내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던 아내가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
“참 안 됐다. 그 여자, 애들도 있을 텐데.”
철없는 아내와 사는 일 고달픈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