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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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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an 24. 2022

8. 꿈 깨셔

  

 해거름이 되고 있다. 현관 밖을 안 나갔다. 마가렛 에트우드의 <증언들>을 읽다가 컴퓨터에 글쓰기를 하다가 다시 책을 읽다가 시래기 된장국을 끓여 점심을 먹었다. 농부가 시래기 된장국 타령을 한다. 그 맛있는 국 먹을 수 없느냐고. ‘국 없이 먹는다며?’ 톡 쏘아줬지만 시래기 된장국을 끓였다. 시원하고 맛있단다. 어려서는 날마다 시래기 된장국만 먹고살았단다. 겨울만 되면 시래기 된장국 타령을 하는 농부는 시래깃국에 대한 향수를 가졌다. 나는 쌀뜨물을 뽀얗게 받아 끓인 시원한 뭇국이다. 할머니 표 뭇국은 그리움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해 주신 가자미 무 졸임이다. 내 생일날이면 개다리소반에 오곡찰밥과 가자미 무 졸임과 미역국이 놓였다. 가자미 무 졸임은 비린 맛이 없고 담백했다. 나도 그 맛을 내 보려고 가자미를 사다가 무를 엇비슷하게 썰어 깔고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얹어 졸여봤지만 옛날 할머니가 해 주시던 그 맛이 안 났다. 또한 나는 가자미에 향수가 있어 사지만 농부는 그 생선을 별로라고 했다. 농부가 싫어하니 식탁에 오를 일이 없어졌다. 대신 갈치는 한번씩 산다. 나는 어려서 입이 까다로운 아이였다. 육류도 안 먹었지만 갈치는 좋아했다. 


 아버지는 오일장에 가면 늘 갈치를 사 오셨다. ‘막둥아, 아나 갈치다.’ 얼큰하게 술에 취해 삽짝을 들어오시던 아버지 손에는 짚으로 묶은 갈치가 흔들거리곤 했었다. 그 갈치를 갈비 불에 꾸들꾸들하게 구워주시곤 했다. 

 농부는 시래기 된장국에 밥을 말고 나는 시래기 된장국에 국수를 말았다. 농부에게 국수 한 가락 먹어보라고 권했더니 ‘따끈따끈해서 맛있네.’ 한다. 나는 밥 보다 국수를 좋아한다. 밥은 이삼일 먹으면 내치고 싶어도 국수는 이삼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하루에 한 끼는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을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국수, 수제비를 먹을 때는 배꼽이 톡 튀어나와도 먹는다. 농부는 시래기 된장국에 국수를 말아먹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중국에서 살았나 봐. 국수를 주식으로 하는 지방에서 살았지 싶어.’ 농담을 하면서 국수 한 양푼을 게 눈 감추듯 한다.  


 저녁에는 부부 계모임이다. 우리가 계주다. 아랫마을 횟집으로 정했다. 지금은 도다리 회가 인기란다. ‘비쌀 텐데.’ 그 말을 반복한다. 농부 마음을 안다. 집에서 계모임을 하고 싶다는 뜻이지만 나는 모르쇠 한다. 요즘 가정집에서 모임을 갖는 예는 별로 없다. 젊을 때는 음식 만들고 뒤처리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했지만 이젠 나도 노인이다. 부부의 삼시세끼 차리는 것도 귀찮은데 음식 만들어 손님 치르고 싶겠나. 농부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지금도 백수를 바라보는 노인 옆에서 노인의 지시를 받고 산다. 노인이 아내에게 하듯이 농부는 내게 지시하고 군림하려고 한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반면교사가 아직 지척에 계신데. 꿈 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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