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Jan 21. 2022

7. 첫눈 온 날 부부 싸움

  

 작은 상처들이 모여 곪는다. 곪아서 터져야 새살이 찬다. 곪은 대로 가라앉히면 응어리가 남거나 다시 곪는다. 부부로 평생을 살아도 서로 화합하기 어려운 것은 자잘한 생채기가 흉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온종일 둘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잘한 것들이 감정을 자극한다. 말 한마디를 주고받는 것도 조심해야 할 정도로 예민해진다. ‘왜 또?’ 표정만 봐도  안다. 정신적 소모전이 서로를 갉아먹는다. 


 농부에게 아내는 밥이다. 농부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면 아예 납작 엎드려 빌라는 식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래, 원하는 대로 살아도 괜찮아. 싸우기 싫어서 따라주지만 가끔 날을 세운다. 내가 날을 세우면 남자를 깔아뭉개려 한다고 골을 내고 삐진다. ‘좀생이’ 속으로 욕한다. 농부는 못 된 여자란다. 앞으로 더 못 된 여자가 될 테니 각오하라고 했다.


 가끔 맞불을 놓아야 할 때가 온다. 속으로 삭이고 있던 불만을 토해야 할 시기다. 냉기가 돌던 사이가 화끈하게 불이 붙는다. 그 불이 꺼지고 나면 재가 남지만 감정을 갉아먹던 쥐는 잡힌다. 왜 사사건건 시비조였는지, 무엇이 불만이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맞붙었다. 나는 노인이 원인이고, 농부는 내가 한 말이 원인이었다. 먼저 내 불만부터 풀어보자. 노인에게 아리아라는 말하는 기계를 갖다 준 업체에서 심심찮게 전화가 온다. 하루에 한 번씩 아리아를 불러줘야 한단다. 필요 없으면 가져가라 해야지. 돈만 낭비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왜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냐고 성가시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허락해야지.’한다.  아직도 노인 허락을 구해야 하느냐고 받아쳤다. 당신이 보호자 아니냐고. 

 

 그는 시아버님을 치매환자 취급한다고 화를 낸다. 결국 내게 골난 이유가 터진다. ‘붓글 쓰는데 사랑방에 가서 하라고?’ 거실 찻상 앞에 앉아 붓글 연습을 하기에 사랑방에 서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거기서 쓰면 거치적거릴 것 없이 좋지 않으냐고 했던 것이 고까웠던 거다. ‘나보고 저 추운 방에 가서 있으라고?’ 사랑방에 난로도 피운다. 명상한다고 몇 시간씩 들어가 앉았기에 안 추운 줄 알았다. 오는 말이 곱지 않자 가는 말도 곱지 않다. 한 수도 물러서지 않고 대거리를 하자 못 된 여자란다. ‘당신 아버지가 당신 어머니께 하듯이 윽박지른다고 내가 당신한테 죽어지낼 줄 알아? 어림없네요. 여태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고 산 것도 억울한데. 내가 뭐가 무서워 당신에게 쥐어 살아. 당신 어머니처럼 안 살아.’ 내 고함이 더 컸다. 둘의 목소리가 지붕을 들썩들썩하게 했다. 산골짝 외딴집이기에 다행이지.


 내 불만도 터졌다. 며칠 전 시댁에 갔었다. 노인은 자식들이 쇠고기며 건강식, 특별한 음식 만들어다 주지 않고 매달 용돈도 안 준다고 짜증을 낸다. 매달 나오는 연금만으로 부족하단다. ‘그 돈이 모자란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 다른 자식들은 몰라도 내겐 그렇게 말하면 안 돼지. 여태 내가 사다 댄 것은 뭔데? 노인이 처신을 잘했어야지. 자업자득이다.’했다가 불이 붙었다. 자기 부모에 대해 신경 끊으란다. 신경 끊도록 해 보라고 했다. 기저귀에 똥 싸고 옷이랑 이불이랑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는 요양보호사 말에 내가 화 안 나게 생겼냐고. 그 정도 되면 요양원으로 모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가 주먹다짐할 뻔했다. ‘나도 안 당해. 당신 어머니는 바보라서 아버님께 당하고 벙어리로 살지만 나는 그렇게 못 살아.’ 맞고함을 쳤다.


 그리고는 집을 나섰다. 속 풀이할 곳은 수영장뿐이다. 수영장 가서 신나게 트랙을 돌고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었다. 남편이랑 한 바탕하고 왔다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그래도 시부모님께 잘해 드려. 어쩌겠어. 아니면 집 나올 생각은 하지 마 어리석다. 여태 고생하고 왜 자기가 나와. 남편보고 나가라 그래. 자기 부모 집에 가서 두 노인 모시라고 해. 각자 살자면 법적으로 재산 분할 신청부터 해. 몇십 년을 살아왔는데 위자료로 다 받을 수 있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안 그렇더라. 우리가 자기보다 오래 살아봐서 알지만. 참고 살면 가슴에 병만 생겨. 토닥거려주는 할머니들 덕에 속은 풀어졌다. 

 

 수영장에서 나와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팥죽을 사러 갔다. 팥죽 두 그릇을 시켰다. 한 그릇은 시부모님 드리려고 했지만 일단 집에 가보고. 집에 오니 그는 군불을 때 놓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요양보호사가 못 오는 날이다. 그는 퉁명스럽게 노인들 저녁 차려드리고 모임에 갔다 온단다. 좋구나. 흔쾌히 손을 흔들었다. 따끈따끈한 팥죽 한 그릇 혼자 먹어치우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창밖이 캄캄하다. 첫눈 온 날 맞불 지르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부부 사이 알게 모르게 쌓이는 앙금은 그대로 두면 견고한 벽이 되지만 한번씩 고함을 질러 부수고 나면 풀어지기도 한다. 우리 나이쯤 되면 그렇다는 거다. 젊어서는 앙금이 오래 가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6. 먼 그리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