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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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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05. 2023

79. 김치전과 이방인

김치전과 이방인     


 텅텅 골짝을 울린다. 도끼질 소리가 듣기 좋은 아침이다. 비나 눈이 올 것 같은 흐린 날이다. 비보다 눈이 펑펑 쏟아져주면 좋겠다. 정초도 금세 지나간다. 계묘년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엄마, 사람 일이란 참 알 수가 없어. 내가 울산에 자리를 잡을 줄이야.’ 터전을 옮긴 딸이 말한다. ‘다 잘 될 거다.’ 나는 무조건 긍정적 힘을 실어준다. 정초는 계속 꿈을 꾸었다. 시아버님도 뵙고, 시어머님도 뵈었다. 


 새벽꿈은 희망적이다. 모든 것이 잘 풀려갈 것 같은 예감이다. 온 가족이 어딘가를 갔다. 예전에 갔던 곳이다. 어수선하던 관광지가 잘 정비되어 있고, 들은 벼이삭이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는 중이고 노을이 아름다웠다. 가족 나들이 길이었다. 딸과 셋이 음식을 먹다가 할머니랑 같이 있다는 아들을 찾아가야겠다며 일어서다 꿈을 깨고 눈을 떴다.


 일상으로 돌아온 아침, 농부는 명상음악을 털어놓고 아침 준비를 한다. 농부는 내게 추나요법을 간단하게 해 주고 밥상 앞에 앉는다. 여럿이 먹을 때는 반찬그릇이 금세 비었지만 둘만 먹으니 조금 차려낸 반찬인데도 그릇이 비지 않는다. 군이 달아야 음식도 달다던 어머님을 생각한다. 요양원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구십 중반의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입맛이 없다. 입맛은 없어도 때가 되면 밥상을 차리고 밥을 먹는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음식을 앞에 두면 먹게 되는 것도 습관일까. ‘하루 세끼 다 먹으면 속이 불편할 텐데.’ 삼시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는 내 말에 육십 대 아주머니가 정색을 한다. 하루 두 끼만 먹어도 소화가 힘들단다. 날씬한 여인, 살이 좀 붙으면 보기 좋을 것 같은 몸매의 그녀는 날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갑자기 김치전 생각이 났다. 묵은지를 총총 썰고 돼지고기를 다져 넣었다. 농부는 자기가 구워야 맛있다며 불 앞에 선다. ‘그러시든가.’ 나는 흔쾌히 자리를 양보한다. 막상 굽고 보니 옛 맛이 안 난다. 예전에 어머님과 김치전을 부쳐 먹으면 어찌 그리도 고소하고 맛났던지.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았었다. ‘맛이 없네. 왜지?’ 내 말에 ‘맛만 좋구먼. 막걸리 한 잔 해야지.’ 부리나케 막걸리 병을 챙겨 와 사기그릇에 따른다. 김치전도 막걸리도 제 맛이 안 나는 나와 달리 농부는 ‘역시 이 맛이야.’ 누구 약 올리듯이 먹는다. 


 나이 들면 입맛도 변한다던가. 맛있는 것이 없다던 촌로의 말은 빈말이 아니다. 정초에 느낀 점이 있다. 우리 집은 남매가 오면 끼니마다 특별 식이 오르고 술판이 벌어진다. 군이 달아 모두 맛있다는데 나는 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입맛은 없는데도 한 끼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것도 습관일까. 배고픔을 느껴야 음식 맛도 댕길 텐데. 삼시세끼 어김없이 제 때 차려진다. ‘엄마, 난 집에 오면 일주일도 안 돼 살찌는 게 느껴져.’ 딸의 말에 ‘나도 너희들 오면 날마다 살찐다. 두 끼만 먹어 볼까?’ 말만 그랬다. 


 남매가 가고 나니 비로소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느낌이다. 노인들 말씀에 ‘애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더라.’ 그 말이 진담임을 알겠다. 예전에 어머님의 ‘아이고 명절 같은 거 없었으면 좋겠다.’며 한숨 쉬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식들 오는 것이 반가울 텐데. 왜 싫어하실까. 그때는 이해불가였지만 나도 나잇살 보태지니 그 마음을 알겠다. 늙어도 엄마는 엄마다. 하루 한 끼라도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을 최고로 치는 것이 자식들 입맛이다. 노인이 되어도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이 자식이다. 나이 들수록 엄마의 자리는 녹록지 않다. 


 김치전 부쳐 막걸리 마시다가 밥 한 그릇 퍼놓고 저녁까지 해결했다. 상차림 하는 것조차 번거로워지면서 ‘간단하게 먹자.’는 농부의 제안이었다. ‘아직 냉장고에 먹을 게 많은데 애들이 주문한 찬거리도 남았고. 생선도 육 고기도 많은데.’ 한숨을 쉰다. 먹는 것을 고역스러워한다면 벌 받지 싶다. 민심은 불안하다. 나라는 어수선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처럼 전쟁이 날 것 같은 불안심리가 깔려 있다. 비상식량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네는 사람도 는다. 전쟁을 격은 노인 세대는 더 심각한 것 같다. 

 

 나는 뉴스를 잘 안 본다. <방랑자>의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정치인을 사이코패스라고 했다. 한국의 정치계 흐름을 보면서 그 작가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제정신 가진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외눈박이 나라에 두눈박이가 가면 괴물취급을 받는다. 반대로 두눈박이 나라에 외눈박이가 나타나면 괴물이 된다. 다시 까뮈의 <이방인>을 편다. 몇 번을 읽어도 주인공 뫼르소의 권태를 내가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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