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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11. 2023

81. 뵐 때마다 아프다

  뵐 때마다 아프다.  

   

  늦잠꾸러기가 일찍 일어났다. 아침 설거지를 해 놓고 준비해 뒀던 재료를 몽땅 꺼냈다. 물에 담가둔 떡가래, 계란, 쇠고기, 생굴, 육수, 김, 브로콜리 등등. 계란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 얇게 지단을 부치고 김도 구워서 자잘하게 썰어 통에 담았다. 브로콜리는 살짝 삶아 자잘하게 썰어 깨소금, 참기름, 간장으로 무쳤다. 보온 통에도 뜨거운 물을 부어 데웠다. 수저도 챙기고 빵이랑 요구르트도 챙기고 간병인에게 줄 선물도 챙겼다. 


 면회 시간에 맞추어 떡국을 끓였다. 쇠고기를 잘게 다져 참기름에 볶고, 생굴도 듬뿍 넣었다. 육수 우려낸 것을 붓고 어제부터 불려둔 떡국을 넣었다. 시어머님께 드릴 음식이다. 매달 두세 번 면회를 간다. 점심시간 전에 간다. 한 끼라도 내가 만든 음식을 드시게 하고 싶어서 안달 낸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나게 드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 힘들던 마음이 덜어진다. 서른여섯 해를 모셨던 시어머님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시지 못하는 것이 여전히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짓는다. ‘엄니, 정초라서 떡국 끓여 왔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 엄니 좋아하는 굴도 많이 넣었는데.’ 어머님은 여전하시지만 음식 넘기는 것이 힘드신 것 같다. 떡국 한 숟가락 드시고 마른기침을 오래 한다. 끼니는 잘 드신다는데. 원래 입에 맞는 한두 가지 반찬으로만 밥을 드시던 어른이다. 떡국이 입에 맞지 않는지 금세 내친다. 반찬도 싫단다. 입에 안 맞는다는 뜻이다. ‘떡국 맛있는데. 조금만 더 드시지.’ 강요할 수도 없다. 비피더스만 마셨다. 차라리 삼계탕이나 전복죽을 끓여다 드릴 걸. 간병인을 불러 떡국이 입에 안 맞는 것 같다고 점심을 챙겨 달라 했다. 어머님은 요양원에서 나온 점심상도 내쳤다.


 아무리 권해도 어머님은 더 이상 떡국도 밥도 국물도 안 드시려고 한다. 어머님이 꿈에 보이면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아 불안하다. 날짜를 헤어 보면 겨우 한 주 혹은 열흘 정도 일 때가 많다. 면회를 자주 다니는 것도 요양원 눈치가 보인다. 참다가 열흘을 겨우 넘기고 면회를 다녀와야 하는 내가 문제다. 아직 나는 시어머님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산다는 뜻이다. 시아버님은 돌아가셨으니 놓아버릴 수 있었지만 시어머님은 지척에 계시니 놓아버릴 수 없다. 내가 만들어 간 음식을 맛나게 드시는 것을 보고 오면 편한데 오늘은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떡국을 몇 숟가락 안 받아 드시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속상해하자 농부는 ‘됐다 고마. 당신이 정성껏 끓여 간 떡국이잖아. 그럼 된 거다.’ 위로해 줬지만 어머니가 하루하루 작별을 준비하고 계신 것 같아 마음 아프다. 친정 엄마의 마지막 몇 달을 생각한다. 밥을 국에 말아 드시다가 죽으로, 죽도 못 드시고 미음으로, 미음도 못 드시다가, 묽은 물만 빨대로 한 모금 빨았지만 그것도 안 넘어간다 하셨다. 어머님도 음식을 넘기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먹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해도 고개를 흔든다. 다음에 전복죽이나 팥죽을 끓여 오겠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님을 뵈었지만 힘들다. 어머님이 떡국 한 그릇 비웠다면 내 마음도 밝았을 텐데. 면회를 할 때마다 조금씩 나빠지는 아흔넷 치매 어머님. 만날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오늘은 더 아픈 이 마음의 실체는 뭘까. ‘엄니와 함께 산 지 올해로 서른일곱 해가 됐네요.’ 어머님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말귀는 아직 다 알아듣는 것 같다. 끝까지 집에서 모시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모신 것이 늘 마음에 걸리는 내 마음도 아실까.  


 어머님을 뵙고 집으로 오는 길은 늘 말 없음 표다. 마침 이웃에 사는 동서가 점심 먹잔다. 애호박 농사를 짓는 부부는 상품 안 되는 애호박을 두 무더기나 싸다 준다. 어떤 때는 두어 박스를 챙겨 놨다 주는 바람에 어머님 계신 요양원에 갖다 준 적도 몇 번 있다. 노인들은 호박 나물이나 호박부침개를 좋아한다. 어제쯤 연락이 됐다면 오늘 요양원에 갖다 주고 왔을 텐데. 아쉬웠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신 수영장 지인께 나누어주고 우리 먹을 것만 챙겼다. 얻은 걸로 인심 썼지만 즐겁지 않다. 떡국 한 그릇 맛있게 못 드시던 시어머님이 자꾸 목에 걸린다. 


 늙은 부모를 요양원에 모신 자식이라면 누구나 겪을 마음고생이 아닐까. 뵐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자식으로서 어찌 편할 수 있겠나. 남은 나날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오늘은 참 마음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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